새 번역 성경에 대한 변명(1826)
An Apology for a New Translation(1826)

 조동호 목사 옮김


해설

다음의 글은 알렉산더 캠벨이 1826년 1월 말에 캠벨(Campbell), 맥나이트(MacKnight), 돋드릿지(Doddridge)가 번역한 신약성경을 수정판으로 출판하면서 쓴 총론 서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From The Sacred Writings of the Apostles and Evangelists Commonly Styled the New Testament, Bethany, Brooke Co., Va.: A. Campbell, 1826, pp. iii-xi).

새 번역에 대한 변명

살아있는 언어는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복장에서 유행들이나 관습들처럼, 한 때 최신으로 유행했던 어휘들과 어구들이 시간이 경과하면서 어색하게 되고, 잊혀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그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1-2세기 내에 한 때 그것들에 두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갖기에 이른다. 아니, 어떤 것들은 그것들이 가졌던 최초의 의미와 다를 뿐 아니라, 그것과 반대되는 개념들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만일, 죽은 언어를 세대를 거쳐 보존하고 있고, 과거시대의 어휘들과 문장들을 아버지 대에서 아들 대에로 전달하는, 책들과 양피지들이 없다면, 한 세대에서, 살아있는 언어는, 그것이 2-3백년 후인 지금 겪는 것만큼, 많은 변형을 겪게 될 것이고, 많은 쇄신을 허락할 것이 있을 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고 우아하다는 평을 듣는 스타일로 쓰여진 책들은 언어에 안정성을 기여한다. 그것들이 언어에 기여하는 바는 마치 성채들이나 요새들이 시골에 기여하는 바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부식시키는 시간의 손에서 부식되어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침략이나 혁명에 대항하여 방어하기를 그친다. 그리고 책들은, 아무리 살아있는 방언의 표준이라는 평을 듣고, 아무리 많이 읽히고 찬사를 받더라도, 변덕과 참신함에 대한 갈망, 즉 사람의 마음의 특성에 대항하여 오랫동안 논쟁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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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살아있는 언어에서 이 꾸준한 변화는 2-3백년마다 새로운 번역들, 혹은 기존 번역들의 수정들을 불가피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영어 방언이 지난 2백년 동안, 그것이 동일기간동안 전에 겪었던 변화보다는 덜 변했을지라도, 제임스 1세의 통치이후 일어났던 변화들은 새로운 번역을 정말 지금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비록 왕의 부름을 받은 번역가들이 당시 영국에서 쓰인 언어로 충실하고 정확하게 번역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할지라도, 이후 영어 언어에 지금까지 유입된 변화들은 많은 경우들에서 그 번역이 부정확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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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에도 불구하고, 킹 제임스 성경이 처음 출판될 때에는 원본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한 것으로 간주되어져 왔다. 그러나, 기독교의 어떤 교파에서는 이것을 수용하지 않는다. 모든 교파들이 종종 오류를 발견하고 있다. 아무도 모든 문장에서 기꺼이 그것 곁에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 제임스 성경은 신앙논쟁이 정점에 있을 때에 만들어졌고, 번역가들의 교리들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많은 경우에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교리들을 담고 있는 어휘들과 문장들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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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이나 파당에 이끌리지 않고, 그것을 시도하고 성취하는 개인들한테서 오는 충실하고 명쾌한 번역을 찾게 될 것이, 국가적 혹은 지역별 원인이 지원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제임스 왕과 왕실이 소집하고, 공공 재정에서 비용을 지불 받은 학자들한테서 오는 번역을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분명하다. 전국을 흩어지게 하고 진동시켰던 저들 불협 요소들의 한 부분으로부터 또한 소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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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새 번역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정확한 번역에 필요한 도구들이 킹 제임스 성경이 처음 나타날 당시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낫다는 사실에 기인된다. 원본에 대한 이해가 그 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낫다. 매우 많은 비평가들의 상충된 의견들이 상당히 건전한 비평적 지식을 만들어냈는데, 이것은 지난 세기 이전에 활동했던 어떤 번역가도 갖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주제는 매우 잘 다루어져 왔고, 또 뛰어난 저자들에 의해서 매우 자주 논의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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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적인 독자들에게는 이 개역성경에 들어있는 개선된 많은 내용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보일 것이지만, 좀더 깊이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가장 미미한 수정들 가운데 몇 개만으로도 많은 구절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빛과 광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개역에 대해서 모든 독자는 각자 자신의 척도에 따라 판단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덕 세움과 위안이 이 개역성경에 대한 세밀한 조사와 또 이 개역성경과 킹 제임스 성경과의 부지런한 비교에 의해서 크게 증진될 것이라고 우리는 다만 말하길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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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영감으로 된 말씀들에 대한 개역성경의 출판이 교파목적의 관점을 갖지 아니한 출판인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행한 모든 대중연설들과 우리가 신앙의 주제로 저술한 모든 글에서 공정했다는 것을 호소할 수 있고, 또 그와 같은 목적의 관점을 갖고 있지도 않다는 것을 입증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기쁘다. 우리는 하늘 아래 있는 어떤 인위적 조직, 신조, 혹은 예식서에 대한 모든 애착 혹은 편파성을 포기하였고, 또 다시 포기한다. 우리가 하는 노력의 모든 범위, 목적, 그리고 취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성적으로 깨닫고, 연합되고, 행복한 것을 보는 것이다. 모든 교파들은 사도의 길에서 벗어난 것이며, 모든 교파는 그 벗어난 길에서 돌아서야 한다는(왜냐하면, 기독교는 본질상 교파와 모든 교파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교파를 세우거나 인위적으로 첨가된 것들 속에 현존하는 그 어떤 것을 돕기 위해서 어떤 일도 감히 하지 않으며, 하지 않을 것이고, 할 수도 없다. 현존하는 교파에 대한 어떤 편애나 선호에 관한한, 우리는 그들이 사도들의 전통들을 갖고 있는 것 이상의 것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이 이것들을 신속하게 취하는 한, 우리도 취하고, 그들이 이것들을 버리는 곳에, 우리도 그것들을 버리고. . . . 우리는 그들을 대부분 반대하는데, 그들은 대부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성을 반대하고 있고, 또 그것에서 떠나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인간으로써 자기 감정들, 편파성, 명성 그리고 세상적인 이해를 생각하는 한, 만약 사도들의 저술들이 필자의 판단에서 그렇게 하도록 인정한다면, 오늘 해가 지기 전에, 필자는 장로교인, 감리교인, 퀘이커교도, 만인구원론자, 소시니아파인, 혹은 다른 어떤 교파교인이 될 것이며, 그리고 세상 어느 교파의 목적을 돕기 위해서 부사, 전치사, 혹은 감탄사의 의미에 한번의 눈길도 주지 않을 것을 가장 엄숙하게 선언한다. 모든 독자가 필자 자신을 그렇게 선언하도록 인정을 해 줄지는 필자는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자기 마음의 진실되고 변함 없는 느낌들을 표현하는 것이 시기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이 개역성경을 정직하게 검토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의 저자들을 인도하시고 페이지마다 영감하신 성령의 축복들을 풍성하게 나누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의 평화"가 있기를 기원한다.

참고서적: McAllister, Lester G. Ed. An Alexander Campbell Reader. St. Louis, Missouri: CBP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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