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캠벨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여러 여행들에 관해서 지속적으로 알리기를 원했다.
1827년 이른봄, 캠벨은 여행에서 돌아왔고, 독자들을 위해서 여행에서 받았던 인상을
장황하게 서술하였다. 그가 발톤 W. 스톤을 처음 만났던 것도 1824년에 있었던 유사한
여행에서였고, 발톤 W. 스톤의 그리스도인 운동(Christian movement)을 접하게 되었다.
(From The Christian Baptist, Vol. IV, No. 9, April 2, 1827, pp. 62-64).
여행에서 느낀 점
우리는 인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지키시는 관심과 도움의 손을 통하여, 4개월
동안에 걸쳐 오하이오(Ohio)주, 켄터키(Kentucky)주, 인디아나(Indiana)주, 그리고
테네시(Tennessee)주들을 순회하는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가하였다. 이 여행 중에
필자는 옛 친구들과 지인(知人)들을 방문하였을 뿐 아니라, 많은 수의 새로운 동지들을
얻는 기쁨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기쁨에도 불구하고, 이별의 아픔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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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들과 신앙에 관한 지식을 크게 늘렸고, 대중에게 덕을 끼칠
많은 자료들을 듬뿍 안고 귀가하였다. 이 자료들은 신앙세계의 실제적 상황에서 수집되었고,
그것들을 유익하게 사용하는데는 큰 재주가 필요치 않을 것이라 본다. . . . 필자는
너무 크게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 . . 그러나 필자는 이전부터 주의를 환기시켜왔던
주제들에 관해서 신앙세계에 더 잘 피력할 수 있게 된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필자는
수많은 주제들에 관해서 다양한 질문을 받았고, 신앙체험, 신앙에 관한 회의(懷疑),
회심과 타락의 역사들에 관해서 들었다. 가족신앙, 가족징계, 기독교회들, 평의회들,
회의들, 그리고 노회들, 토론과 투쟁들, 부흥과 쇠퇴들, 박해와 승리들, 종교전쟁과
소동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매우 평범하고 독특한 것까지 너무 많고 다양해서 지금
필자가 머리 속에 그려보는 신앙세계에 다양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작은 것 하나도
첨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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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종교)이라 불리고 있는 것을 가르치는 교사들에 관해서 우리는 매우 충분한
사례를 가지고 있어 왔다. 아가서의 모든 구절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관해서 설교하는 알레고리 해석가로부터 바울의 파선과 말타에서의 구사일생을 놓고
구원에 관한 모든 계획을 설명하려드는 신비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또 매일 꿈과 환상
그리고 황홀경과 계시들에 대해서 말하는 영감 받은 열광주의자로부터 헛소리 지껄이는
의역가(意譯家)와 말많고 지루한 주석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완전한 사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편으로 우리는 성서비평에 관해 아는 체하는 박사들, 율법과
증거에 관한 예리하고 설득력 있는 비평가들, 신학학문의 심오한 해석가들, 악덕과
부도덕에 대항해서 열변을 토하는 자들, 침착하고 냉담한 형이상학자, 경험이 풍부한
설교가, 그리고 박식한 감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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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단의 가장 일반적으로 참되고 정당한 보고는,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네 개의 회중 또는 교회들이 한 명의 목자의 목양 아래 있다.
그는 매월 네 번째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그 교회들을 방문한다. 교회의 능력에 따라
그들은 매월 한번 만난다. 그들은 토요일 12시 만난다. 기도로 모임을 개회하여 사회자를
임명한 후에, 업무처리에 들어간다. 만약 예정된 업무가 없으면, 게으름을 부리지
않기 위해서 일을 만들어내야 한다. 업무는 일반적으로 누군가의 발의로 침례 후보자들의
경험을 청문한다. 각 교인은 침례 후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에 배심원이
된다. 그리고 사례의 성격에 따라서 평결이 이루어진다. 만약 그 후보자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면, 그는 침례를 받아도 좋다는 지시를 받게 된다. 그러면 이 문제는 처리가
끝난 게 되고, 설교를 듣거나 어떤 징계의 사례에 대해서 마태복음 18장을 인용하기만
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일요일이라고 불리는 그 주간 첫날은 찬송가로
알려진 무언가의 몇 소절들을 노래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일반적으로 그것들은 곡을
붙인 교회의 신조들이다. 그 다음은 기도 또는 산문으로 바뀐 찬송이 이어지는데,
이것들은, 바꿔 말하자면, 기도의 모양으로 옷을 입힌 형제들의 견해들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설교가 이어진다. 그 설교가운데서 한 방울의 포도주가 3.8리터의 물에
떨어져 번지는 것이다. . . .그리고 그렇게 배불리고 나면, 형제들은 한 달 동안
집에 돌아가 이 마음의 양식을 반추하고 소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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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반적인 견해로 보아도 현 교회전통(present order
of things)을 지나치게 묘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아니한 수많은
개인과 몇몇 교회들이 있다는 알고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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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의견들은 선한 뜻에서 비롯된 것이며,
무법자들에 아첨하려한 것이 아니며, 무혐의자들을 유혹하려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수치를 숨기려는 것이 아니며, 의로운 자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며, 고집불통인
자들을 달래려는 것이 아니며, 자유주의자들을 지지하려는 것이 아니며, 정통파 사람에게
아첨하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마땅히 그래야 할 때에, 경고하고, 타이르고, 책망하고,
논박하고, 칭찬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인정된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 그분을 칭찬한 자이다.
편집자.
참고서적: McAllister, Lester G. Ed. An Alexander Campbell
Reader. St. Louis, Missouri: CBP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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