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의 연설(1830.7.4)
A Fourth of July Oration(1830)

조동호 목사 옮김


해설

1830년 7월 5일 월요일, 피츠버그(Pittsburgh)에 그리스도의 교회 성도 120명 이상이 국가의 민간정부설립을 축하하는 알렉산더 캠벨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 도시에서 2마일 정도 떨어진 작은 숲에서 모였다. 이 연설에서 캠벨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시민의 자유와 성령의 열매들을 자라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참으로 자유롭게 할 필요를 대조시킨다. (From Popular Lectures and Addresses, pp. 367-378).

독립기념일의 연설(1830.7.4)

그분의 통치에서 기본원칙은 사랑입니다. 그분은 성령의 검이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복종시키지 않습니다. 다른 왕들은 사람들의 개성들을 굴복시키며, 그들의 토지에 대해 주권을 행사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적들을 정복하는 것은 그분의 원대한 사업입니다. 종교뿐 아니라 철학은 우리들에게 적들을 정복하는 것이 총칼이나 무력의 힘에 의해 되지 않는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개선 퍼레이드 자동차에 많은 사람들을 묶지 않는 것이고, 성채들에 그들을 감금하지 않는 것이며, 월등한 용기와 용맹 또는 힘으로 그들을 굴복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적을 정복하는 것은 그를 친구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의 고귀하고, 자애롭고, 하늘을 품은 사업입니다. 영구한 사랑의 무기와 군수품을 제외하고는 이 모든 무기와 전쟁의 양태들은 무력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시면서 당신의 적들에게 접근하시며, 이 넘치는 사랑의 웅변으로 반역한 세계에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그분의 전쟁방식이며, 하늘에 장착된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수단처럼, 제시된 궁극의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완전하게 채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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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7월 4일(미국 독립 기념일)은 기념할만한 날이었고, 유대인의 유월절이 그렇듯이, 기억되어져야할 날이었으며, 모든 미국인들과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박애주의자들이 인정한 기쁨의 날이었습니다. 우리의 정치기관들에서 나온 빛은 유럽의 폭군들의 지하감옥들을 관통할 것입니다. 우리 정부의 정신(genius)이 보편적인 해방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부가 위대한 정치적 유익들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그러한 혜택을 베푸는 위대한 국가의 정치적 영향력에 아무 것도 저항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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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영광스러운 사역, 즉 미신의 족쇄에서 인간의 정신을 해방시키고, 하늘 통치의 충만한 결실에로 인간들을 끌어들이는 사역이, 1776년 혁명(독립전쟁)에 비교해서, 불멸이 현재의 인간수명(壽命)으로 한정되어 있는 것처럼, 더 위대한 순간의 사역은 금세기를 위해서 유보되어있습니다. 교파(敎派)의 폭정에서 사람들의 정신을 해방시키는 것, 즉 무자비한 체제의 우울한 노예신분에서 그들을 구출해 내는 것은 절대적이거나 제한적인 군주제 자리에 대표민주주의를 대체시키는 것보다 더 큰 축복들로 채워진 사역입니다. 이 혁명은, 그것의 모든 영향들을 볼 때, 사람들을 참으로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정치적 혁명은 사람들을 단지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 그들 자신들에 과중한 부담을 주고, 더 야만적인 지방의 소수 군주들이 그들의 더할 나위 없는 노예들에 부과한 봉사를 그들 자신들로부터 요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을 더 훌륭한 노예들로 만드는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옛 세계의 군주국들 아래서 사람들은 이 미국의 자유로운 정부 아래에서보다 그들 자신들로부터 더 자유로웠습니다. 그 이유는, 시민들이 그들의 모든 힘을 쏟을 그 정도에까지 그들의 상황들을 개선하고 향상시킬 기회와 자유를 갖는 이 자유로운 정부아래서는, 그들의 모든 능력을 끄집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자신들에게 그와 같은 임무를 부과하며, 동방의 군주국들 중 몇몇 나라들이 너무 잔인해서 그들의 국민들에게 가한 것과 같은 수고와 궁핍을 감수합니다. 여기 이 자유의 나라에서 우리들은 모든 사람들이 힘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나 더 많은 프로젝트의 성취는 그들의 노동이나 그들의 사업을 줄이지 않습니다. 그 반대로 더 많이 성공하면 할수록, 더 열심히 다시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자주, 정말 얼마나 자주, 우리들은, 죽음이 친절하게 찾아와 그들의 상처투성인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벗기고, 수의를 입히기 위해서 그들을 벌거벗길 때까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욕망의 언덕에로 혼신의 힘으로 마구를 끌어올리면서 그들 자신의 탐욕의 채찍 아래서 죽어 가는 것을 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유롭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자유! 그렇습니다. 자유는 그들을 노예로 삼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심장의 고동이 멈출 때까지 수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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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양심도 자유 함을 자랑하는 겁쟁이 대중을 노예로 삼습니다. 죽음의 두려움 아래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죽음의 결과들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들의 모든 생애를 속박 속에서 살게됩니다. 이 속박에서 벗어나는 일은 인간이 가장 위대한 투쟁을 벌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것의 영향력아래에 그들 자신들을 내맡긴 모든 자들에게 기독교가 베푸는 첫 번째 은혜입니다. 기독교는 영혼들에게 희년을 선포합니다. 기독교는 옥문들을 열고, 포로들을 풀어줍니다. 부패한 반 기독교 체제들이 이 두려움을 키우고 소중히 간직하려는 노력은 경탄할 정도이며, 사람들을 속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음을 껴안고, 그것에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완벽한 구원과 이 가혹한 영혼들의 속박에서 은혜로운 해방이 주어집니다.

참고서적: McAllister, Lester G. Ed. An Alexander Campbell Reader. St. Louis, Missouri: CBP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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