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에 관하여(1838)
On Science and Religion(1838)

조동호 목사 옮김


해설

아래의 글은 1838년 뉴 아테네 대학에서(현재 오하이오 대학교) 학생들에게 행한 "문학, 과학,  기술에 관한 연설"(Address on Literature, Science and Art)로 제목이 붙여진 긴 강연에서 선별된 것이다. 이 강연이 행하여진 때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되기 10-12전쯤이었다. 그러나 다윈의 책이 제기할 몇 가지 문제들을 예기하고 있고, 진리에 대한 이들 두 가지 측면, 즉 과학과 신앙사이에서 일치를 유지할 것을 고집한다. (From Popular Addresses and Lectures, pp. 136-141).

과학과 신앙에 관하여

우리들의 계획, 즉 과학(혹은 학문), 모든 참된 과학을 신앙과 연결하는 일을 성취하려는 단 한 가지 점만이 남아있습니다. 혹자는 그것을 만든 분에 대한 어떠한 지식 없이 우주과학의 어떠한 부분을 이해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의 원인에 대한 어떠한 지식 없이 효과를 알아내려고 합리적으로 노력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들은 세계 속의 모든 과학의 근거입니다. 그러나 우주가 하나님 없이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이 당신의 우주 없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과학도 물리이든 윤리이든 하나님의 계시된 지식 없이는 완벽하게 알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업적과 말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또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신 것의 매개체를 통하여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에 관하여 깊이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역들은 태초에 하나님 당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신(보이신)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역들을 읽고 배우는 능력을 잃지 않았다면, 그분을 알고, 그분과 교통하는데 있어서, 이 놀랍고 변화무쌍한 대자연이외에 다른 어떤 매개체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지적인 그리스도인은 자연과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서, 때로는 자연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또 다른 때에는 성경을 통해서 자연을 해설하는 식으로, 그 둘을 피차에 도움이 되게 함으로써 가장 큰 진보를 이룹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는 두 가지 음성들, 즉 하나님의 실존성과 완전성의 두 가지 증언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다른 것 없이는 인간상황의 다양한 모든 요구를 채우기에 충분히 적절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위대한 모든 과학자들이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었고, 성경이 영감 하는 희망들을 귀히 여겼던, 확고부동한 사실이외에 과학과 성경사이의 근접한 관계에 어떤 더 뚜렷한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귀납적 철학의 창설자인 베이컨, 위대한 정신과 도덕의 철학자인 로크, 그리고 자연의 신비들의 통역관이자 계시자인 뉴턴은 과학세계에서는 물론 신앙세계에서도 성경을 믿는 신앙인들이요, 성경의 교리, 교훈들, 형태들, 그리고 약속들의 해설자들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자연 연구에 바친 헌신에 대해서만큼 성경에 바친 경의에서도 뛰어났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철학과 기독교는 모순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창조, 섭리, 구속에 관한 책들의 모든 페이지마다 명백하고 대담하게 기록된 유일하고 동일한 최고 지성의 변경할 수 없고 흉내낼 수 없는 자국들과 특성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별과 모든 꽃 속에서 속삭이는 세미한 음성이 율법과 복음의 모든 교훈들과 약속들 속에서 권위와 사랑의 언어 속에서 크게 말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분들은 오늘날의 지배적인 철학과 과학의 위대한 창설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단지 최고의 지성들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빛들의 아버지께서 당신의 존재와 완전성들을 인정했던 사람들에게는 모든 유용한 과학들(학문들)과 발견들과 예술들을 허락하셨던 반면, 그 밖의 다른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으셨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성경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미래의 삶의 희망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어떠한 과학의 창설자나 어떠한 유용한 기술의 발명가나 인간사상의 어느 부문에서 어떤 위대한 큰 진리를 발견한 자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 즉 하나님의 섭리적인 이 모습이, 만일 보편적이 아니라면, 매우 일반적인 것입니다.

중략

과학과 인간지식의 적절한 분류에 있어서 주요한 난관들 중의 한 가지가 모든 과학들이 피차 교감하며, 경계 설정의 분명하고 두드러진 선들에 의해서보다는 차라리 단계적 변화들에 의해서 분리되어진다는 사실에서 발견되어진다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자, 만약 이것이 물리학과 윤리학에서 사실이라면, 그것은 신앙과 그것들의 관련성과 근접성에 있어서도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입니다. 자연과학들에서 우리들은 적응과 고안의 인식 없이는 단 일보도 전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체 태양계는 우리의 지구를 위해서, 우리의 지구는 그것의 식물과 동물의 생산을 위해서, 그리고 다시 이것들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구는 우주가 그것에 적응되는 것처럼 우주에 적응되어지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 . . 그래서 전체 우주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 사이에서, 참된 철학자에게 한 개의 위대한 제일 원인과 한 개의 웅대한 궁극의 목적을 제안하면서, 그것의 일반적인 법칙들과 특별한 배열들 모두에서, 목적과 수단의 한 거대한 조직입니다.

중략

본인에게는 어느 누가 어떻게 자연에 연회를 베풀 수 있으며, 과학이 계시하는 비밀의 높은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가 - 어느 누가 어떻게 피조물의 천상과 지상의 경이들을 황홀과 환희 속에서 깊이 생각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그 자신이 그들보다 무한히 더 놀랍고 영광스런 하나님의 특성과 의지에 무관심할 수 있는가 - 어느 누가 어떻게 창조주의 개발들을 경탄할 수 있으며, 숭배하기를 마다할 수 있는가가 언제나 역설과 신비였습니다. 이 문제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으며, 어떤 최상의 모순과 잘못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일에서 기뻐하고, 일군을 소홀히 하거나 경멸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교육이 인간의 헌법에 채택되고, 인간의 지위와 품위를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실시되어질 때, 그러면 과학과 신앙의 연관성, 자연과 하나님의 연관성이, 이따금 하는 강의의 주제로뿐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는 최고 지성에 관한 한 가지 논평에 불과할 것이며, 전능하신 아버지의 존재와 완전성과 섭리와 의지는 언제나 본문이 될 것이며, 모든 과학은,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는 그분과 존재 속에서 우리가 즐기고 이길 수 있도록, 이 고귀한 재능들과 능력들을 우리에게 부여하신 그분에 대한 우리의 책임들과 의무들에 관한 한 가지 실제적 관점에 불과할 것입니다.

한편. . . . 본인은 여러분에게 그것으로부터 샘솟는 한 가지 과학과 한 가지 기술이 있다는 것을 기억나게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들 넓은 하늘아래 존재하는 모든 학교들에서 교수되는 모든 과학들(학문들)과 모든 교양과목들(arts)의 으뜸입니다. 그 과학은, 위대한 교사가 정의한 대로, 그가 위임하였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입니다. 그분에 말에 의하면, 이것은 영원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샘솟는 그 기술은 우주에서 가장 고상하고 훌륭한 것이며, 정당하게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고, 우리의 하나님과 함께 겸손하게 걷는 기술입니다.

참고서적: McAllister, Lester G. Ed. An Alexander Campbell Reader. St. Louis, Missouri: CBP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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