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알렉산더 캠벨은 {밀레니얼 하벤저}(Millennial Harbinger)
1839년 8월과 9월호 두 번의 사설에서 이름의 문제: 제자들(Disciples)-그리스도인들(Christians)-개혁가들(Reformers)-캠벨주의자들(Campbellites)?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름의 문제는 발톤 W. 스톤과는 물론 다른 이들과도 이미 1830년에
토의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증언할 수 있듯이, 그 문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From The Millennial Harbinger,
Vol. III, No. VIII, August, 1839, pp. 337-339 and Vol. III, No. IX, September,
1839, pp. 401-403).
우리들의 이름, 첫 번째 사설-1839년 8월호.
우리들은 무엇으로 불려야 할것인가?가 한 가지 질문이고,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가 또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들은 첫 번째 질문에
책임이 있고, 우리의 이웃들은 두 번째 질문에 책임이 있다. 미덕과 악덕, 도덕적인
선과 악이 양면에 다 있다. 만약 우리들이 우리 자신을 잘못 부르면, 그 죄는 우리들의
것이고, 만약 그들이 잘못 부르면, 그 죄는 그들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름에 힘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세계는 선과
악 모든 의미에서 이름에 의해서 다스려진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면, 우리가 형성하는
성격에 의해서 우리가 영향을 끼치듯이, 우리는 좋든 나쁘든 우리가 부르는 이름에
의해서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우리가 불려지는 것이 우리다 는 것이 중요하듯이,
우리가 무엇을 하는 사람들 인가로 불리어지는 것은 중요하다.
루터교도들, 칼뱅교도들, 아르미니우스파의 사람들이 그들의
표준에 따라서 우리들을 판가름하고, 그들의 평형저울로 우리들을 저울질하면서 우리들을
"캠벨주의자들"(Campbellites)로 잘못 불러왔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보다
월등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그들이 착용한 제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우리들을
그들 자신들처럼, 즉 오류에 빠지기 쉬운 속세의 지도자의 추종자들처럼 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우리가 그분에게나 우리들에게 경멸적이고 분열을 조장하는
그와 같은 어떤 호칭도 취하는 것을 금하고 계신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개혁가라는 말이 어떤 것에 대해 특정한
것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개혁가들로 부르기를 원한다. 개신교도라는 말처럼,
그 말은 원리나 실천 모두에 있어서 긍정적이거나 한정적인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성경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성경 그리스도인들"이란 이름을 좋아한다. . . .
나는, 다음의 어휘들이 본뜻 그대로 특정 교파에 상관없이
쓰인다면, 침례인(Baptist)이며, 장로제 수용자(Presbyterian)이며, 감독제 수용자(Episcopalian)이며,
조합교회주의자(Congregationalist)이며, 감리인(Methodist)이며, 천주인(Catholic)이다.
그러나, 그것들 중의 어느 것 하나도 그리스도의 한 제자로써 필자의 견해, 직업,
또는 실행을 표현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필자는 침수세례자이며, 모든 교회(회중)에
한 장로회와 장로직과 무리의 감독자들이 필요함을 믿는다. 필자는 모든 공동체를
그 공동체가 관심 하는바 내규들 속에서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간주한다.
필자는 교리와 도덕성과 복음의 경건 속에 머물면서, 배열들과 절차들에서 조직적(methdical)이며,
모든 구제들에 있어서 천주인(Catholic)이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이 필자의 종교적인
전문직을 충분히 그리고 완전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필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필자의 직업을 대표하는 것으로 선택한다면, 필자는 한 사람의
종교인으로써 속이는 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두 개의 성경적인 제목들, 즉 "제자들"(Disciples)과
"그리스도인들"(Christians)을 놓고 단지 선택해야만 한다. 이 두 단어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더 다루도록 하겠다.
우리들의 이름, 두 번째 사설-1839년 9월호.
무엇에로 또는 누구에게로 우리들은 침수세례를 받았는가?
칼뱅에게로, 루터에게로, 웨슬리에게로, 캠벨에게로, 또는 개혁에로 침수세례를 받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그와 같은 호칭들을 취하거나 선택할 때, 왜 우리들에게
별명을 붙이며,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에게 별명을 붙이는가?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불릴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릴 것인가? 우리들 자신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가? 우리가 그리스도이외에 또 다른 지도자를 갖기 때문에 안 된다.
그분은 우리들의 선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그분을 믿는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에로
침수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래서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상되었다.
뉴잉글랜드와 이 나라의 몇몇 다른 지역에서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그들이 유니테리언교도들인
것을 자랑하는 한 교파에 의해서 채택되고 사용된 하나의 이름이다. 그들은 죄 사함을
위한 침례를 믿지 않으며, 예수의 부활과 그 밖의 것들을 기념하는 만큼 자주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기를 거절한다. . . .
이 이유 때문에 우리들은 사용되지 아니한 하나의 이름을
더 선호하며, 그 이름은 진실로 더도 덜도 아닌 그리스도인과 성경적으로 동등한
것이다. 누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렸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인보다
더 오래된 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제자들이라고 불리었다. 누구의 제자들인가?
그리스도의.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제자들(Disciples of Christ)은, 그것이 전체적인
개념을 충분히 함축하면서도, 그리스도인보다 더 오래된 하나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란 이름만큼 신성하고, 권위가 있으며, 더 오래된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더 설명적이고, 아직 아무도 사용한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더 좋다. 우리가
그 이름을 선호해야할 이유는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그것은 더 역사가 깊다(It is more ancient). 둘째,
그것은 더 설명적이다(It is more descriptive). 셋째, 그것은 더 성경적이다(It
is more scriptural). 넷째, 그것은 더 참신하다(It is more unappropriated).
1. 우리들의 첫 번째 이유는 논박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었기 때문이다.
주후 30년 오순절 날로부터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와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알려졌던 자들이, 여러 해 후에,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렸다.
2. 그것은 더 설명적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나라나 정치지도자들, 때때는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을 따라 이름 붙여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이 지닌 이름의 인물의 생도들로 혹은 제자들로 불리는
것에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3. 그것은 더 성경적이다. 누가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대략
30년 후에 그의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다. 이제 적어도 초대교회의 30년 역사를 적고
있는 그의 저술을 보게되면,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단지 두 차례 나오는데, 안디옥
사람들과 아그립바 왕에 의해서 각각 한번씩 사용되었다. 그러나 어느 제자도, 누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 호칭아래서 자기 자신이나 형제들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30번 이상 그들은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라고 불린다. 누가와 다른 지식인들은
자주 그들을 "형제들"과 "제자들"로 부르나, 결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 . .
4. 그것은 현재까지 더 참신하다. 유니테리언교도들, 아리우스파의
사람들, 그리고 여러 다른 최근에 일어난 해외의 교파들은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사용을
매우 갈망하고 있다. 한편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란 이름을 공정하고 명백하게
사용하는 지상에서 유일한 백성이다.
이 네 가지 이유 때문에 필자는 제안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호칭을 더 좋아한다. 어느 누가 더 좋은 이름을 위해서 더 좋은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는가? A.C.
참고서적: McAllister, Lester G. Ed. An Alexander Campbell
Reader. St. Louis, Missouri: CBP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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