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예제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1845)
Our Position to American Slavery(1845)

조동호 목사 옮김


해설

노예제도의 문제는 기독교 공동체를 점증적으로 혼란시켰다. 1845년에는 침례교회들과 감리교회들이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는 분열을 보게 되었다. 캠벨은 그리스도의 교회들(Disciples)을 위해서 그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우려야할 필요를 느꼈다. 노예제도에 관한 14개나 되는 기사들이 그 해 한해동안 {밀렌니얼 하빈저}(The Millennial Harbinger)에 실렸다. 이 곳에 소개된 글들은 캠벨이 첫 번째와 열 번째 사설에 실었던 것들이다. 그것들은 이 논쟁의 무대에서 캠벨의 판단력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준다. (From The Millennial Harbinger, Third Series, Vol. II, No. 11, February, 1845, pp. 49-53 and Third Series, Vol. II, No. VI, June, 1845, pp. 257-264).

미국 노예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1845년 2월 사설)

어떠한 국가 혹은 국민이 자유롭기를 결정할 때, 그들이 어떠한 외국의 왕이나 권력자에게 바치는 모든 충성과 모든 정치적인 종속을 공개적으로 거부할 때, 그들은 의심스럽고 위험한 경향의 본보기를 만든다. 그들은 그들의 당면한 비전 외에 다른 많은 상세한 사항들에서 사회에 미치는 그것의 영향과 결과들을 계산해 낼 수 없다. 엄숙한 집회에서 소집된 국가의 대표자들이 높은 곳에 계신 신(High Heaven) 앞에서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하고 동등하다"고 단언할 때, 그들은, 그 특별한 때에 그들을 한 곳에 소집했던 특별한 대상들에 의해서 제한 받지 않기로 한 견해들과 결심들을 공표 한다. 한 국가가 단지 몇 가지 헌법상의 억제들과 제한들의 범위에서 모든 시민에게 "생각의 자유, 말의 자유, 그리고 행동의 자유"를 보장할 때, 그것은 선행의 능력들을 수여하는 것이며,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는 그것을 세우는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그것이 파괴하는 일을 할지도 모를 악행의 능력을 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또한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가지 매우 분명한 것은, 만일 국민들에게 지성과 도덕이 없다면, 그와 같은 공인된 권리들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슬기롭고 애국적인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문화를 마련하지 않은 채, 그와 같은 충분한 자유들을 허용해도 좋을지, 그 타당성을 의문시해 왔다. 매우 잘 규제된 공동체내에서의 참정권은, 그들의 의견을 피력함에 있어서, 언제나 도덕적인 자격에 따라 주어져야지, 결코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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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총명한 사람은 누구나 북부와 남부사이에 논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도 로마에 살면서 교황에 대항하여 싸울 수 없는 것만큼이나 또한 분명하게 모든 북부와 남부의 제도들은 전 미국의 가족 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참으로 우리 미국교회의 법정 안에 이미 들어섰으며, 우리 개신교 내에서 가장 훌륭한 공동체들 가운데 하나의 회의들을 분열시켰다. 이런 상태의 일들은 우리나라의 개신교 교파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만 배타적으로 거론되어진 것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다른 교파들도, 그들 협의회의 정치-종교적인 성격 때문에, 같은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문명화된 세계에 유일한 신앙 공동체이며, 우리의 원칙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버리지 않는 한) 그와 같은 불행한 곤경에서 우리들을 지킬 수 있다. 필자는 남부와 북부에 사는 모든 지적인 형제와 솔직한 시민의 완전한 만족을 보여줄 수 있는 이것을 느낀다. 필자에게 적절한 기회를 주고, 필자의 말에 귀를 기우려 준다면, 필자의 진술과 논의들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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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그 핵심 문제는, 성경이 이 주제에 관해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에 있지, 무슨 자연적인 이유나 자연적인 양심 또는 사람들의 견해들을 받아 쓰게 하거나 무슨 인간의 조심성과 편의를 허락하는가에 있지 않다.

알렉산더 캠벨(A.C.)

 

(1845년 6월 사설)

이 시간까지 노예제도와 관련된 우리의 입장은, 만약 매우 특별하지 않다면, 일반적인 정확성으로 확인되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도 우리가 의심스런 추론과 보장할 수 없는 위험에다 무엇인가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므로, 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결론들을 연역하고 매우 분명하고 명확한 말로 우리의 입장을 진술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우리들은 이미 설정한 전제들, 즉 좀더 긴 설명을 붙인 전제들로부터 얻은 추론들이나 결론들의 형태에서 시도할 것이다.

첫 번째로, 족장들과 유대인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율법과 법령들 그리고 관습법들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통해서 볼 때, 모세와 사도들의 저술들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수많은 법령들과 법규들에 의해서 재가 받은 대로, 우리는 주인과 종의 관계가 성경말씀에서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어느 곳에서도 단죄되고 있지 않다는 것과 어떤 사례들과 어떤 법규들 아래에서는 그것이 심지어 지금도 전혀 합법적이고 정당하다는 것을 결론짓는다

만약 그것이 필자의 독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 어떤 만족이 될 수 있다면, 필자는 비록 수년간 미국의 노예제도를 이 시대의 정신과 풍조에 조화되지 않으며, 미국 국민과 정치제도들의 독특한 풍조도 아닌 것으로 간주하였고, 그것에 반대하는 강한 편견을 가진 필자의 교육에 의해서, 여전히 지난 수년간 이 주제에 관해서 성경말씀들을 철저히 연구하면서, 그리고 이것들은 그 사이에서 짧지도 길지도 않았지만, 필자는 언제나 이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부언코자 한다.

그리고, 필자가 수년간 가장 신실하고 양심적으로 이들 견해들을 견지했고, 표명하는 한편, 악용과 악용될 소지들 때문에, 또한 이들 악용으로 인해서 사회에 미치는 풍기문란한 영향 때문에, 또 그것의 지속을 묵인하는 주(州)들과 공동체들의 운영들을 쇠퇴시키기 때문에, 필자는 미국의 노예제도를 매우 강하게 반대하였고, 그래서 필자는 필자의 정치적 관계들에서, 주인과 노예 모두가 그 날을 준비하고 있을 때인 어떤 궁극적인 날을 예정하면서. . . 점차적인 접근으로 주(州)헌법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고 담대하게 주창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두 번째로, 바울이 "모든 것들"에 대한 어떤 계급에 대해서 한번 단언했던 것과 같이 필자도 오늘날 노예제도에 대해서 단언하는 바이다. 그는 말하기를,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하였다. 그리고 필자가, 하나님의 섭리와 법에 의해서,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어떤 사례들과 조건들에서는 도덕적으로 옳다는 확신을 단언하는 한편, 필자는 또한 이 시대와 이 나라에서 그것이 유익하지 않다는 확신을 단언하는 바이다. 이 확신의 신실함에 대해서, 필자가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증거는, 그 후 수년 동안, 필자는 재산상속에 의해서 필자에게 속할 많은 노예들의 해방을 권하였고, 그 결과 그들이 노예신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필자는 어떤 방법으로 필자의 영향아래 왔거나 또는 필자의 소유였던 모든 사람을 노예신분에서 해방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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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또한, 우리들은 어떤 기독교 공동체가 훈련의 대상이나 친교의 말을 종교적으로 주인과 종의 단순한 관계로 만들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바꿔 말하면, 어떤 사람도 주인이 되기 위해서나 혹은 그를 낳아준 주(州)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섭리로 노예신분으로 태어난 속박상태에 있는 사람을 유지하기 위해서 단순히 비난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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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론을 보강시키는 것은 이 일련의 글들의 유일한 목적이다. 우리는, 처음에, 만약 우리들이 우리의 원칙에서 진실하였다면, 우리는 이 주제에 관한 어떤 의견의 차이에 대해서 두 파로 갈라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였다. 우리들은 지금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 확신을 갖는 것은, 우리가 이것 안에서, 다른 주제들에 관한 것으로써, 서로 견디며, 그리스도인의 평화의 연대 속에서 정신의 일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을 행함에 있어서, 우리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다. 북부에 사는 사람들은 남부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고, 남부에 사는 사람들은 북부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지역별 일탈과 편견들은 형제의 친절과 사랑의 마찰로 닳아 없어질 것이다

중략

우리들의 글에서 그것들을 수반하는 문서증거를 가진 이들 제안들을,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가장 애정이 넘치는 관심과 그들이 정신의 일치와 그리스도인의 평화와 사랑의 연대 속에서 거룩한 협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를 우리의 열렬한 열망을 가지고, 우리들이 우리 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의 평화와 번영을 사랑하는 모든 거룩한 형제들의 신앙적인 고려들과 검토에 붙이는 바이다.

알렉산더 캠벨(A.C.)

참고서적: McAllister, Lester G. Ed. An Alexander Campbell Reader. St. Louis, Missouri: CBP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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