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책임 있는 총회 구성의 문제는 1849년 초봄에 수면에 떠올랐다.
1843년에 열린 캠벨-라이스 목사 토론대회 때에 켄터키 렉싱톤에서 개최된 한 모임과
1845년 D. S. 버넽(Burnet)이 발족한 미국 기독교 성경 공회(American Christian
Bible Society)의 구성이 문제를 압박하였다. 인디애나와 켄터키 같은 몇몇 주(州)들은
이미 발빠르게 지역 협의회들을 구성하였다. 캠벨은 결국 총회를 위한 신호를 보냈다.
다음의 글들은 칠 년간의 토의가 있고 난 후에 나온 것들이다. (From The
Millennial Harbinger, Series III, Vol. VI, No.
V, May, 1849, pp. 271-273 and Series III, Vol. VI, No. VIII, August, 1849, pp.
475-476).
교회조직-4번(1849년 5월)
우리는 기독교 믿음과 예배 그리고 훈련, 또는 우리가 믿음과
경건 그리고 도덕성의 큰 범주들 아래서 지정한 것들을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의
폭넓은 인침아래서 이미 제정되고 승인된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권위의 문제들로
간주하며, 어느 노회나 총회 또는 대집회 그 무엇도 그것들에 어느 것을 더하거나
그것들로부터 어느 것을 제하여서는 안 된다. 우리의 기호에 따라서, 우리는 동등하게
성경적이면서 좀더 생생한 큰 조목들 가운데 하나를 지정하여 수정동의를 할 것이며,
그것을 믿음과 경건과 인간성으로 읽을 것이다. 이것들은 교회적이든 정치적이든지
간에 지상의 법정들을 뛰어넘는 주제들이다.
침례교인 협의회들, 특정 지역들에 퍼져있는 기독교 공동체들의
장로들과 대표들의 기독교 회담들은, 다양한 형태들(modifications) 아래서, 우리
시대와 나라에 화합하였고,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채택되었다. 그것들 전체의 도덕적
혹은 교회적 권위는 순수하게 협정적이며, 해당 지방 교회들 사이에 엄숙히 합의되고
승인 받은 계약조항들에 좌우된다. 이들 계약들과 교회법들은, 물론, 그것들에 입문하는
교파들이나 교회들의 자발적인 합의 이상의 다른 권위를 갖지 아니하나, 다른 모든
계약들처럼, 그것들 각각의 조목들이나 합의조항들의 분명한 문구에 도덕적으로 묶여
있다.
중략
개정과 폐지는, 지금 필자에게 있어서, 이전처럼, 개정할
수 있거나 동일한 용어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변화하는 사회집단의 번영(fortune)과
지위(character)를 채택함에 있어서 편의성의 문제들에 관하여, 만약 언급되어 있지
않다면, 임시심의집회들이 열리기를 바란다.
중략
만약 우리가 그 임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다면, 그와 같은
모임들과 회담들에 앞서 합법적으로 유리하게 다가올지도 모를 모든 목적들을 상술하는
것이 편리한 것도 아니고 필요한 것도 아니다. 공공 출판사, . . . 작은 신앙책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번영과 세계, 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회심에 필요하고
유익한 모든 종류의 도덕적 기관들은 목적을 위해 또는 이들 지방 혹은 주(州) 협의회들의
연차 총회들에서 제기된 위원회들에 의해 총감독권을 유리하게 주장할 가능성이 높은
목적들이다.
중략
만약 우리들의 형제들이, 온건한 범위에서, 편지로 그들의
반대 의견들과 승인 또는 수정내용들을 보내온다면, 우리들은 신속하게 그 문제를
처리하겠고, 신시내티, 렉싱톤, 루이빌 또는 피츠버그에서 총회를 소집하는 일에
그들과 의견을 일치할 것이다.
알렉산더 캠벨(A.C.).
총회(1849년 8월)
필자는 그리스도의(Reformation) 교회들의 대집회 혹은 총회가
매우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필자는 그것이 개혁의 목적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 고 강조하려 한다. 필자는 신시내티가 그 같은 대집회를 열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또한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 같은 집회장소가 얻어질 것인가, 언제
그 집회가 열릴 것인가,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열 것인가 가 남아 있는 과제들이다.
필자는 기껏해야 이것들을 제기하거나 제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의
형제들에게 고려해 줄 것을 제안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집회가 큰 서적재단(concern)을
만들기 위한 출판인들이나 편집자들의 대집회이어서는 안되고, 가능하다면, 모든
교회마다 한 사람씩, 또는 불가능하다면, 한 지방에 한 사람, 또는 일정한 교회수마다
몇 사람씩 교회들에 의해서 선별되고 구성된 교회들의 대표자들의 대집회이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몇몇 개인 자격의 대표들이나 하나나 둘 또는 서너
지방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어서는 안되고, 총회이어야 한다. 필자는 지혜도 경건도
수의 많고 적음에 의해서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도 상담자들의
다수 속에는 몇몇 소수보다 더 많은 총체적 안전과 더 많은 확신이 있다.
그와 같은 우선적인 대집회의 목적은 더 효율적이고 성경적인
조직과 성경목적과 선교목적과 교육목적에서 더 총체적이고 효율적인 협력을 위한
총체적 요구에 의해서 이미 지적되었다.
알렉산더 캠벨(A.C.)
참고서적: McAllister, Lester G. Ed. An
Alexander Campbell Reader. St. Louis, Missouri:
CBP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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