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필요성에 관하여(1853)
On the Necessity for Missions(1853)

조동호 목사 옮김


해설

1853년 10월, 캠벨은 창설이후 줄곧 대표로 있었던 미국 크리스천 선교사회(American Christian Missionary Society)의 총회에서 연설하였다. 선교사회는 창설이후 4년 동안에 한 명의 선교사, 제임스 T. 바클레이(James T. Barclay)를 예루살렘에 파송하고 있었다. 그의 연설은 선교사회의 사역의 범위를 넓히자는 호소에 집중되어있다. (From Popular Lectures and Address, pp. 518-530).

선교의 필요성에 관하여

기독교 선교에 헌신하는 사랑하는 형제여러분: 선교와 천사들은 메시지와 메신저가 서로 연관 있는 것만큼이나 동시대의 것입니다. 그 하나는 다른 것을 암시합니다. 메시지가 메신저를 암시하듯이, 두 가지 모두가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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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정신은 본질적으로 매우 전파가 쉽고 선교 지향적이어서, 그것의 모든 형태들은 그것의 제국을 확장하고, 모든 땅과 모든 백성사이에서 그것을 전파할 책임과 의무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카톨릭 교도들과 모든 이름의 신교도들은 국내외 선교를 제정하여 유지하여 왔고, 생명과 평강의 왕의 홀과 통치 아래로 그것을 가져오게 하는 세계 복음화에 그들이 힘쓰면서 상당부분의 재산과 삶을 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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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에 속한 무수한 사람들은 일시적인 명예들과 보상들을 보장받으려고 평생동안 몸과 혼과 영혼을 다해 힘쓸 것입니다. 그들은, 소유했을 때도, 강렬하고 죽지 않는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약간의 가상의 이익을 얻기 위해 인간의 마음에 소중한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릴 것입니다. 그러나, 명예와 축복과 그 자신의 퇴화하는 인종의 영광을 위해서, 가난과 비참함과 오명과 파멸로부터 영광과 명예와 불멸에로 그들을 일으켜 세우려고, 진실한 마음과 계몽된 열심과 지치지 않는 노동으로, 세계에서 가장 지혜롭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고결하고, 가장 고귀한 지배자를 섬기는 일에 종사하는 기독교 전령 또는 선교사는 지구가 제공할만 하고, 천사들이 이 편에서 하늘 예루살렘의 문들을 보았던 가장 고결한 장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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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크리스천 선교사회(Christian Missionary Society)는,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믿는 대로, 이와 같은 개념들에서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그분 자신의 교회와 이름과 장소에서, 그분의 마음에 우리의 이 타락하고 황당한 세계의 모든 부름들, 추구들과 사업들을 훨씬 능가하고 중한, 한 역할을 주심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롭게 하셨던 것을 체험했던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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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에게 주어진 대위임은 하나의 선교 사역지로써 전 세계를 포함하였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도는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성만큼 넓고, 시간만큼 영속적인, 혹은 아담의 모든 아들이 구원의 메시지를 듣기까지, 이 위임은 그것의 문자와 정신과 의무를 통해서 확장됩니다. 참으로 사도들은 그들의 저술들을 통해서 아직도 지상에 계십니다. 그들은 비록 죽었지만, 여전히 설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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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교사업은 하나님의 말씀과 시대의 웅장한 사역, 즉 19세기 교회의 장엄한 의무와 특권과 명예에 의한 것은 물론 우주적인 승인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로 우리를 위한 길을 여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들에게 살아있는 세계의 조건, 즉 이교도 국가들, 그들의 언어들, 관습들, 의식들, 그리고 관례들의 조건의 학습, 과학, 재산, 그리고 지식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들에게 지구와 함께 그것의 모든 바다들, 호수들, 강들, 그리고 항구들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시대의 예술과 개선들에서, 그리고 그분의 섭리 가운데서 우리가 주의를 끌었고 모든 이방 나라들과 모든 신조들과 모든 관례들을 존경하도록 명령한 우리의 무역과 상업으로 거리와 시간을 거의 소멸시켰습니다.

우리의 국기는 산들바람이 불 때마다 휘날립니다. 우리의 국가와 우리의 언어는 존경과 지상의 모든 나라들과 백성의 경의를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길, 즉 어떤 사람이나 국가도 닫을 수 없는 문을 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국민으로써, 그 사역, 그 위대한 사역, 곧 인간의 가장 위대한 사역, 곧 죽은, 불법과 범죄로 영적으로 죽은 세계에 영생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 우리들을 사용하시려고, 특별한 부름, 큰 소리의 부름, 하나님의 부름을 듣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그분의 부름에 냉랭하고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귀를 기울일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한 개의 선교센터, 즉 한 센터, 참으로, 다른 모든 것들 중에서 우리의 직업에 가장 잘 들어맞고, 위대한 왕의 옛 도시, 다윗의 도성, "거룩한 언덕"의 정상에 있는, 한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의 왕실 거주지, 즉 성스런 솔리마(Solyma), 곧 평화의 거처였던 곳에 한 센터를 갖고 있습니다. 그곳에 성막이 오랜 유랑생활을 끝내고 서있었습니다. 그곳에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 곧 황금 궁전이 서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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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모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평판과 감탄에서 볼 때, 모든 기독교계의 눈에 대단한 매력의 중심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오래도록 지속될 것입니다. 그곳을 방문하고, 머무르고, 흥미를 갖는 수많은 여행가들, 즉 유대인들, 터키인들, 무신론자들, 카톨릭교도들, 신교도들은 그곳에 최우선의 관심을 갖고, 거기에 신앙을 저버린 기독교계의 거짓 철학들과는 거리가 먼 최초의 복음과 사도전승의 전령을 주둔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노련한 선교사는, 심지어 사적인 생활산보에서조차, 낯선 사람들과 거주자들과의 그의 매일의 교제에서, 선교를 처음 시작하였고, 그것을 지속한 자들이 아브라함의 품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안식을 취하게 될 때, 많은 나라에서 솟아오르고, 하나님에게는 영광, 사람에게는 행복의 큰 수확을 가져올 값진 씨앗을 많은 심령에 뿌릴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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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루살렘은 우리의 열정과 능력과 너그러움의 배타적인 대상이 아닙니다. 예루살렘과 유대는 세계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우리의 예루살렘 선교는 우리의 선교 의무와 사업과 자선을 배타적으로 베풀어야할 모든 세계가 아닙니다. 국내외에서 멸시받고, 천대받고, 짓밟힌 아프리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간성과 동정심을 취할 부분이 없습니까?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한 어떤 의무도 갖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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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들은, 또 하나의 대륙에 위치한, 해외 선교사역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국내 선교센터들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아메리카 시온의 영역들을 넘어 갈아야 할 아무런 논밭들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해외 선교사역들뿐 아니라 국내 선교사역들을 갖고 있습니다. 또 이것들은 우리들에게 주장할 요구들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것들을 위한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거나 할 수 없습니까? 이것들은 우리의 심사숙고를 요청하는 질문들입니다. 그리고 선교사회로써가 아니면, 한 형제사이로써, 그들에게 약간의 관심을 주지 말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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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에 있는 형제들의 자비심을 통해서, 한 유색인 형제가 노예신분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듣기로, 그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복음 설교가이자 사역자이며, 그와 같은 사역지에 훌륭한 자격을 갖춘자 입니다. 모든 교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에브라임 A. 스미스(Ephraim A. Smith) 형제가 자진하여 자신의 비용을 들여 아프리카를 방문하고, 라이베리아에서 현지를 답사하고 돌아와 그곳의 상황들을 보고 하기로 자원하였습니다. 그는 재정원조의 형태로 이 선교사회에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또 이 경우에 특별히 알아야 할 바램을, 적어도 본인에게, 전혀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본인이 하고 있는 것만큼 매우 잘 그리고 오래동안 알고 있으므로, 앉기 전에, 다음의 결의, 이를테면, 에브라임 A. 스미스(Ephraim A. Smith) 형제에게 적당한 간격으로, 특별히 라이베리아와 일반적인 아프리카의 상황과 전망들에 관해서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특별히 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센터의 위치를 포함한 정보와 함께, 이 이사회의 연락비서에게 보고 하도록 요구할 것과 이 기관뿐 아니라, 모든 장소의 모든 형제들은 그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은혜의 보좌에 기도들을 올릴 것을, 제안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러운" 인간성은 하나님께는 영광을, 사람에게는 복됨의 부요한 수확을 거두게 할 것입니다.

참고서적: McAllister, Lester G. Ed. An Alexander Campbell Reader. St. Louis, Missouri: CBP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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