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알렉산더 캠벨의 제자들은 그의 깊고 넓은 독서량에 끊임없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는 월간지 편집과 순회와 강연으로 스케줄이 빡빡함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우수한 문학작품들 가운데 상당수를 소화시키고 있었다. 다음의 글은 그의
해박한 지식에 대한 증거이다. (From The Millennial
Harbinger, Fourth Series, Vol. IV, No. V, May,
1854, pp. 241-254).
사무엘 테일러 콜레릿지에 관하여(1854)
필자는 최근에 쉐드(Shedd) 교수가 편집한 7권으로 된 {사무엘
테일러 콜레릿지 전집}(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853)을 서재에 사들였다.
물론 그것들 모두를 읽지 않았고, 그 7권의 책들 가운데 어느 것도 완독하지 않았다.
요즈음 우리는 소수의 책들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책 전체를 이해하는 경우는
몇 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불투명해서 뉴턴조차도 그의 모든 광학과 광굴절학
그리고 반사광학을 가지고서도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책들이 몇 권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것이 이 뛰어난 기독교 철학자요, 형이상학자요, 비평가요, 강연자요,
시인인 사무엘 콜레릿지가 쓴 책들의 특징은 아니다. 열거한 이들 전문직들 가운데
어느 것에서도 그에게 필적될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느 누구도 그보다 뛰어나지
못했다. 아마 어느 누구도 그것들 모두에서 그에게 필적되지 못했다.
확실히 그는 어떤 주인의 단언에 맹세하려는 중독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는 독자적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보통의 사람처럼 느꼈을 동안에도,
현자로써 생각하였다. 그의 전문직이 신학은 아니었지만, 영국의 모든 신학자들이
그의 천재성에 경의를 표시하였고, 어느 누구도 감히 일대일 논쟁에서 그와 맞서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성직계급제의 건전한 교리를 크게 지지하였고, 그것의 잘못들과
성직계급제의 자만들을 가차없이 뭉개 버렸다. 그는, 아브넬이 아사헬을 찌른 것
같이, 또는 에훗이 모압 왕 에글론을 찌른 것 같이, 제5번째 갈비뼈 아래로 유니테리안주의를
찔렀다.
그러나, 교파 신문에 의해서 우리가 비방을 받았으므로, 한
백성으로써 우리가 생각한 모든 두드러진 입장에 대해서, 그는 우리의 모든 주된
입장들을 지지할 뿐 아니라, 확증한다.
중략
서부 전역에 있는 우리의 감독들(Bishops), 다시 말하면,
학식이 더 많은, 우리 교회들의 장로들(elders 또는 presbyters)은, 정직하고, 충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인, 천국의 단체로,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가 그랬고, 요크(York)와
켄터베리 대주교들이 그런 것처럼, 각자와 집합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위 직원들이라는 사실이, 정직한 진리와 또한 그것, 즉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의 책에 있는 주교의 자비와 품위에 관한 최고의 이상을 대영제국과
그 나라의 주교들과 위엄 있는 고위 성직자들과 대주교들의 귀에다 쏟아 놓고 있는
매우 큰 목소리를 듣는 기쁨을 필자에게 준다. 이 단체는 대략 30년 전에 "캠벨주의"(Campbellism)로
불리곤 했으나 그것은 대영제국에서 콜레릿지주의(Coleridgism)이며, 그것은, 여전히
더 좋은, 바울주의(Paulism)이다. 아니,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단체이다. 교사로부터
감독 애스베리(Asbury)에 이르기까지, 조금 위대한 척하는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이나
국내외 개신교의 다른 어떤 고위 성직자들이 보기에 매우 불량하고 비난받을 만한
이 견해는 유일한 성서적 견해이다. 그것은 그렇고, 어떤 근거 위에 로마 카톨릭과
영국과 미국의 감독들이 서 있는가! 사람들이 어떠한 현자나 철학자 또는, 진실로,
앵글로색슨 피를 갖고 태어난 그밖에 다른 무엇도 그보다 더 뛰어나지 않다고 말하는
콜레릿지는, 우리가 바라기는, 그들 지성들의 일부를 열광시켰고, 개신교에 아직도
남아 있는 로마 카톨릭의 모든 잔재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러나, 계속하자면,
콜리지의 이 입장들과 동일한 입장의 다른 많은 것들이, {크리스천
뱁티스트}지가 발행되던 때인 30여 년 전에, 이 땅에서, 우리들의 이단들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장미는, 다른 어떤 이름아래서도, 달콤한 향기를 낼뿐이다. 그것들은 기독교의
근본 진리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만큼 확실히 기독교
사회에 널리 번질 것이다.
중략
필자는 성경과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다양한 양떼의 모든 교회들에
속한 훌륭한 인물들과 더 가까이 하면 할수록,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위대한 사역을
통해서, 필자의 영혼은 확대되고, 높아지며, 용기를 얻는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들을 굶주리게 함으로써, 그것들을 홀로 내버려둠으로써, 그리고 사복서들과
사도행전에서 전파하고 가르쳤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전하고 가르침으로써, 모든 거짓
철학들과 거짓 신학들의 파멸을 간청하는 모든 우리의 주된 요점들은 루터와 콜레릿지와
같은 사람들, 쉘로크(Sherlock)와 후커(Hooker), 훌러(Fuller)와 홀(Hall)과 번연(Bunyan)과
같은 사람들, 심지어 다소 열광적인 에드워드 어빙 (Edward Irving)과 조지 휫필드(George
Whitfield) 그리고 존 웨슬리(John Wesley)와 같은 사람들의 문서와 정신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승인을 받고, 그리고 칭찬을 듣는다. 진실로, 이들 가운데 어떤 두
세 사람들은 영으로 시작해서 육으로 마쳤다. 여전히, 그들은 교황들이 뒤죽박죽
된 감정들과 교란된 상상들로 우리의 주님을 장사지내어 안치했던 굴무덤의 돌문을
굴러내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들은 당분간 펜을 내려놓고, 다른 임무들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A.C.
참고서적: McAllister, Lester G. Ed. An
Alexander Campbell Reader. St. Louis, Missouri:
CBP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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