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의 불평들
만약 불평등과 불공정한 문제들을 보상할 아무 것도 무덤
저편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삶이 좋은 것이다라고 믿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 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한편, 다른 사람들은 끔찍한 관계와
환경에로 태어납니다. 만약 우리가 불평등한 고난의 몫을 상쇄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당하고 살았던 삶의 방식(욥 3:1-3)
때문에 그들이 출생한 날을 저주할 이유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신의 삶의
최악의 상태에서 기술하였던 솔로몬 왕의 다음과 같은 말에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전 4:1-3).
2. 아름다움과 균형
개인적인 불공정과 역경의 문제들에 상응하지 못한 삶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럽고 불공정한 모든 것에도 아름다움과 균형이 있습니다. 공포와 폭력의
순간들에도 조화와 평화의 때가 있습니다. 노쇠한 육체들이 고통과 약함에 굴복할
때도 아이들과 새끼 동물들은 태평스럽고 기쁘게 놉니다. 매우 찬란한 인간의 예술은
쾌활한 비행과 아침 노래를 부르는 새들에 일치합니다. 매일의 석양과 여명은 쉼과
소생을 필요로 하는 자연에게 해결책을 제공합니다. 어두운 밤과 차가운 겨울은 "이것도
역시 지나가게 될 것이다"는 인식 속에서 찾아옵니다. 만약 무덤 저편에 아무
것도 없다면, 자연의 패턴은 기절해버릴 만큼 불완전합니다.
3. 근접죽음의 경험
사후의 삶에 대한 임상증거는 주관적이고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육체를 빠져나온 경험"과 밝은 빛들, 긴 터널들, 또는 천사와 같은 안내자들과의
우연한 마주침의 중요성을 평가하기란 종종 어렵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에로 들어간
일시적인 근접죽음환상들에 관해서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응하는 방법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런 종류의 경험들이 그 주제에 관한 꽤 큰 도서관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증거의 실체는 사람들이 죽음에
접근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존재의 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4. 마음 속의 장소
인간의 마음은 이생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에 굶주려
있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솔로몬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 3:11)이라고
칭한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무엇을 의미했는가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 세상이 만족시킬 수 없는 무엇인가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갈망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솔로몬이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영혼의 공허감이었습니다. 그는
잠시동안 그의 내적 공허감을 일과 술과 웃음으로 채워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철학과
음악 그리고 성관계들로 그의 갈망들을 만족시켜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환멸은 커져만 갔습니다. 오직 그가 최후의 심판과 내세에 대한 확신을 되찾았을
때, 비로소 그는 그의 의미에 대한 갈망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전 12:14).
5. 보편적인 신념들
몇몇 사람들이 사후의 삶이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동안, 불멸을 믿는 믿음은 일종의 시간을 초월한 현상입니다. 이집트인들의
피라미드들로부터 뉴에이지 사상의 환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의 사람들과 역사상의
장소들은 인간의 영혼이 죽음이후에도 생존한다는 것을 믿어왔습니다. 만약 무덤
저편에 무의식이나 웃음 혹은 후회가 전혀 없다면, 삶은 이집트의 파라오들로부터
나사렛 예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람을 우롱한 것이 됩니다.
6. 영원하신 하나님
성경은 불멸의 근원으로써 하나님을 거명합니다. 성경은 그분의
특징을 영원한 것으로 기술합니다. 동일한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우리들을 창조하셨고, 그분의 계획은 그분의 자녀들을 그분의 영원한 집으로
결국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말씀은 또한 하나님께서 인류 최초의 조상들이
어두운 금지구역을 침입하였을 때(창 3:1-19) 인간들에게 죽음을 경험하도록 하셨다고
가르칩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류를 반역적인 상태에서 영원토록 살도록 허락하셨다면,
우리들이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짐승으로 진전시킬 끝없는 기회를 갖게되었으리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도록 선택된 모든 이들의
영원한 귀향으로 종결될(시 90:1; 요 14:1-3) 계획을 펼치기 시작하셨습니다.
7. 구약 예언들
몇몇 사람들은 불멸이 신약성경의 사상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 예언자 다니엘은 지상의 티끌 속에서 잠자는 자들이, 어떤 이들은
생명에로, 다른 이들은 영원한 부끄러움에로 부활하게될 한 날(단 12:1-3)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시편의 저자도 또한 사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시편 73장에서
아삽이라 불리는 어떤 사람은 그가 어떻게 해서 악한 사람들은 잘되고, 경건한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는가를 생각하다가, 그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거의 잃을
뻔하였는가를 기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예배의 전망에서 그는 사악한 사람들이 그들의 죽을 운명의 미끄러운 땅에 서있는
것을 갑자기 보았습니다. 새로운 통찰로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4-26).
8. 그리스도의 인용들
예수를 사악한 사람 또는 거짓교사로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무신론자들이나 비기독교 종교인들조차도 언제나 예수를 경의와
존경심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후 지속되는 개인의 존재현실에 대해서 애매
모호하거나 불확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예수는 그분의 곁에서 죽어 가는 회개한 도적에게
낙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집스런
자들을 기다리는 곳의 한 상징으로 예루살렘의 지저분한 쓰레기장인 힌놈골짜기를
언급하셨습니다. 예수의 말씀에 따르면, 사후생명의 현실에 직면하는 것은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그분은 만약 눈이 너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면, 너희는 그 눈을 없애 버려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7).
9. 그리스도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보다 사후생명의 존재에 대한 더 큰
증거는 없습니다. 구약성경은 그분의 백성을 위해서 죄와 죽음을 극복하실 메시아에
대해서 예언하였습니다(사 53; 단 9:26). 예수의 추종자들의 증언은 그분이 그것을
그대로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사형 집행인들의 손에 자발적으로 죽으셨고,
빌린 무덤에 안치되었으며, 그리고 나서 삼일 후에 그 무덤은 빈 채로 남겨졌습니다.
증인들은 그들이 빈 무덤을 보았을 뿐 아니라,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진술하였습니다(행 1:1-11; 고전
15:1-8).
10. 실제적인 영향
사후 생명에 대한 믿음은 개인적인 안전과 낙천주의 그리고
영적 발전의 자원입니다(요일 3:2). 아무 것도 영원한 삶을 준비하려고 현재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더 좋은 삶이 있다는 확신보다 더 큰 용기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제한
없는 영원함의 기회들에 대한 신념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 자신의 삶을 궁극적으로 희생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도 사후의 삶에 대한 그분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 아우카(Auca) 인디언들에게 1956년에 살해된
기독교 순교자 제임스 엘리오트(Jim Elliot)를 고무시켰던 것도 동일한 진리입니다.
이를테면, "그는 빼앗길 수 없는 것을 얻으려고, 지킬 수 없는 것을 주는 아주
영리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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