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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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 인간◀
하나님이 만드신 것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은 사람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최악의 작품일수도 있다. 인면수심이란 말이 있듯이, 어쩌면 사람은 머리는 한 개뿐이지만, 얼굴은 두 개를 가지고 사는지도 모른다. 한쪽 면은 천사의 모습이고, 다른 쪽 면은 마귀인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사는지도 모른다.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예수님을 그릴 때 모델로 삼았던 청년을 몇 년 후 가룟 유다를 그릴 때에도 모델로 삼았다는 일화는 우리의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동일인이 환경이나 교양에 따라서는 예수님처럼 될 수도 있고, 가룟 유다처럼도 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에스겔서 1장에 보면, 머리는 하나이지만, 얼굴이 네 개씩인 네 생물이 나온다. 이들은 각각 사람의 얼굴, 사자의 얼굴, 소의 얼굴, 그리고 독수리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룹 곧 천사들이지만, 인간에게도 인격자다운 면이 있는가하면 짐승과 같은 면도 있다. 사자처럼 포악하고 군림하려는 면(정치와 군사)이 있고, 소처럼 미련하리만치 근면한 면(노동과 생산)이 있으며, 독수리처럼 간사하고 야비한 면(사기와 폭력)도 있다. 어쩌면 이런 모든 면 때문에 사람은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사람을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으로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고 인성과 영성을 갖는데서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될 수 있다.
둘째, 특별한 호기심과 강한 본능을 갖는데서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될 수 있다. 비록 이 본능이 아담 타락이후부터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선보다는 악한 쪽으로 많이 기우러져 있긴 하지만, 이 본능을 어떻게 통제하고 조절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되게 한다. 사람의 본능은 이성과 교육 그리고 수양을 통해서 상당부분 통제와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고,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동물의 본능은 생존과 종족번식의 중립적 틀에서만 이해될 수 있지만, 인간의 본능은 생존과 종족번식의 동물적인 요소뿐 아니라, 선악을 구별하고 천사처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하면, 마귀처럼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또한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이외에도 심리적 욕구와 강한 자아실현욕구까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되게 한다.
창세기 3장 6절은 선악과를 묘사하기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런” 열매라 하였다. “먹음직도 하고”란 말은 먹거리 종류의 유혹을 말한다. 의식주와 같이 인간의 기본적이고 생리적인 욕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보암직도 하고”란 말은 볼거리 종류의 유혹을 말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적이고 심리적인 욕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말은 두뇌를 통해서 나오는 유혹거리를 말한다. 부와 명예와 권세를 추구하는 자아실현과 성취 욕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남을 짓밟고 일어서기 위한 사악한 두뇌플레이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런 다양한 유혹들에 아담과 이브가 무너졌다. 이스라엘 민족이 넘어졌다. 때때로 아니 매우 자주 우리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은 사람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최악의 작품일수도 있다. 인면수심이란 말이 있듯이, 어쩌면 사람은 머리는 한 개뿐이지만, 얼굴은 두 개를 가지고 사는지도 모른다. 한쪽 면은 천사의 모습이고, 다른 쪽 면은 마귀인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사는지도 모른다.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예수님을 그릴 때 모델로 삼았던 청년을 몇 년 후 가룟 유다를 그릴 때에도 모델로 삼았다는 일화는 우리의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동일인이 환경이나 교양에 따라서는 예수님처럼 될 수도 있고, 가룟 유다처럼도 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에스겔서 1장에 보면, 머리는 하나이지만, 얼굴이 네 개씩인 네 생물이 나온다. 이들은 각각 사람의 얼굴, 사자의 얼굴, 소의 얼굴, 그리고 독수리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룹 곧 천사들이지만, 인간에게도 인격자다운 면이 있는가하면 짐승과 같은 면도 있다. 사자처럼 포악하고 군림하려는 면(정치와 군사)이 있고, 소처럼 미련하리만치 근면한 면(노동과 생산)이 있으며, 독수리처럼 간사하고 야비한 면(사기와 폭력)도 있다. 어쩌면 이런 모든 면 때문에 사람은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사람을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으로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고 인성과 영성을 갖는데서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될 수 있다.
둘째, 특별한 호기심과 강한 본능을 갖는데서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될 수 있다. 비록 이 본능이 아담 타락이후부터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선보다는 악한 쪽으로 많이 기우러져 있긴 하지만, 이 본능을 어떻게 통제하고 조절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되게 한다. 사람의 본능은 이성과 교육 그리고 수양을 통해서 상당부분 통제와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고,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동물의 본능은 생존과 종족번식의 중립적 틀에서만 이해될 수 있지만, 인간의 본능은 생존과 종족번식의 동물적인 요소뿐 아니라, 선악을 구별하고 천사처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하면, 마귀처럼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또한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이외에도 심리적 욕구와 강한 자아실현욕구까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되게 한다.
창세기 3장 6절은 선악과를 묘사하기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런” 열매라 하였다. “먹음직도 하고”란 말은 먹거리 종류의 유혹을 말한다. 의식주와 같이 인간의 기본적이고 생리적인 욕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보암직도 하고”란 말은 볼거리 종류의 유혹을 말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적이고 심리적인 욕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말은 두뇌를 통해서 나오는 유혹거리를 말한다. 부와 명예와 권세를 추구하는 자아실현과 성취 욕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남을 짓밟고 일어서기 위한 사악한 두뇌플레이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런 다양한 유혹들에 아담과 이브가 무너졌다. 이스라엘 민족이 넘어졌다. 때때로 아니 매우 자주 우리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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