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헌신
본문
▶온전한 헌신◀
번제의 핵심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에 있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태워 향기로운 냄새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제사방식이다. 제물은 예배자의 생활형편에 따라서 수소, 숫염소, 숫양, 산비둘기 또는 집비둘기 가운데서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흠이 없어야 했고, 1년 된 것이어야 했다.
여기서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져야할 우리 자신이다. 제물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은사에 따라 소에, 염소에, 양에, 혹은 비둘기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물의 크고 작음이나 가치의 크고 작음에 차별을 두지 않고 형편에 따라 동일하게 받으신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능력과 지혜와 은사의 많고 적음에 차별을 두지 않고 각자의 가진 능력과 지혜와 은사에 따라 동일하게 받으신다. 다섯 달란트 가진 자는 다섯 달란트의 재능을 받으시고, 두 달란트 가진 자는 두 달란트의 재능을 받으시고, 한 달란트 가진 자는 한 달란트의 재능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재능의 많고 적음이나 결과의 좋고 나쁨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제물에 차별이 없다는 것은 인종차별, 신분차별, 학력차별, 남녀차별, 노소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구원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롬 3:22, 10:12)고 한 말씀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달란트를 최대치로 활용했느냐, 최선을 다했느냐, 작은 일에 충성했느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모두 태워 향기로운 냄새로 하늘로 올라가게 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평가는 거기서 이뤄진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느냐, 두 달란트를 받은 자가 두 달란트를 더 남겼느냐,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본전치기밖에 못했느냐 라는 결과에 따라 평가하지 않는다. 평가의 잣대는 자신의 능력을 모두 불태울 만큼 최선을 다했느냐, 충성을 다했느냐 라는 것이다.
번제에서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져야할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어떤 제물이 되어야하는가 라는 점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흠이 없어야 한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을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다. 이 말씀은 금과 은그릇이라서 귀히 쓰고, 나무와 질그릇이라서 천히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그릇이 될 것이란 뜻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를 흠 없이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둘째, 1년 된 새끼여야 한다. 처음처럼 늘 순수하고 순진해야 한다. 새끼들의 순수하고 순진한 모습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음란하고 악한 세대에 물들지 아니한 작지만 순수한 제물이 되어 처음처럼 깨끗하게 하나님의 일에 자신을 불태우는 온전한 헌신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한 제물이 되고, 아벨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번제의 핵심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에 있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태워 향기로운 냄새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제사방식이다. 제물은 예배자의 생활형편에 따라서 수소, 숫염소, 숫양, 산비둘기 또는 집비둘기 가운데서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흠이 없어야 했고, 1년 된 것이어야 했다.
여기서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져야할 우리 자신이다. 제물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은사에 따라 소에, 염소에, 양에, 혹은 비둘기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물의 크고 작음이나 가치의 크고 작음에 차별을 두지 않고 형편에 따라 동일하게 받으신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능력과 지혜와 은사의 많고 적음에 차별을 두지 않고 각자의 가진 능력과 지혜와 은사에 따라 동일하게 받으신다. 다섯 달란트 가진 자는 다섯 달란트의 재능을 받으시고, 두 달란트 가진 자는 두 달란트의 재능을 받으시고, 한 달란트 가진 자는 한 달란트의 재능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재능의 많고 적음이나 결과의 좋고 나쁨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제물에 차별이 없다는 것은 인종차별, 신분차별, 학력차별, 남녀차별, 노소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구원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롬 3:22, 10:12)고 한 말씀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달란트를 최대치로 활용했느냐, 최선을 다했느냐, 작은 일에 충성했느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모두 태워 향기로운 냄새로 하늘로 올라가게 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평가는 거기서 이뤄진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느냐, 두 달란트를 받은 자가 두 달란트를 더 남겼느냐,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본전치기밖에 못했느냐 라는 결과에 따라 평가하지 않는다. 평가의 잣대는 자신의 능력을 모두 불태울 만큼 최선을 다했느냐, 충성을 다했느냐 라는 것이다.
번제에서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져야할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어떤 제물이 되어야하는가 라는 점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흠이 없어야 한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을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다. 이 말씀은 금과 은그릇이라서 귀히 쓰고, 나무와 질그릇이라서 천히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그릇이 될 것이란 뜻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를 흠 없이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둘째, 1년 된 새끼여야 한다. 처음처럼 늘 순수하고 순진해야 한다. 새끼들의 순수하고 순진한 모습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음란하고 악한 세대에 물들지 아니한 작지만 순수한 제물이 되어 처음처럼 깨끗하게 하나님의 일에 자신을 불태우는 온전한 헌신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한 제물이 되고, 아벨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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