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이 주는 민족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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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 주는 민족사적 의미◀
금년은 광복 62주년이 되는 해이다. 환갑을 넘긴 셈이다. 일제침탈을 겪었던 세대는 물러나고 그와 무관한 세대가 주역으로 뛰고 있다. 이 시점에서 광복이 주는 민족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 이 시대를 냉철하게 바라보면, 반미, 반기독교, 친북 좌파 민족주의 세력이 사회 곳곳에 침투해서 국민과 종교의 분열을 책동하고 있다. 쇄국과 기독교탄압으로 일관했던 조선조말 상황과 비슷하다. 물론 기독교우월주의도 금물이다. 그 또한 종교간 분열을 책동하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이후 조선조의 집권층인 북인 벽파는 남인 시파를 중심으로 한 실학파들을 천주교를 믿는 사학죄인으로 몰아 모두 참형시키거나 귀양을 보냈다. 세종대왕이후 400년 만에 나타난 국가발전방안들이 이를 주도해야 할 집권층의 필사적인 방해로 무산되었던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천주학쟁이들에 대한 박해가 절정에 달했고, 동학을 일으킨 최제우와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 등이 참형 당하였다. 같은 시절 흥선대원군은 서양 강대국과의 수교를 철저히 막았다. 쇄국과 기독교탄압정책은 근대화의 기회를 놓치게 했고, 결국 쇠락의 길을 걸어 한일합병으로 이어지게 하고 말았다. 여기에 과거의 재앙이 주는 민족사적 경고와 심판의 의미가 있다.
한편 16세기 중반에 일본과 중국은 기독교 복음과 서양문물을 받아드려 국가를 발전시켰고, 그 힘으로 결국 조선을 지배하고 능욕하는 데 활용하였다.
일본은 1549년 7월 이후 기독교와 함께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결국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이룩하였고, 중국도 당나라 때에 이미 한차례 기독교(景敎)를 수용한 경험이 있고, 또 1583년 9월 이후 기독교와 함께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변화를 꾀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유럽의 각종 문물과 번역서들을 북경을 통해서 접하고서도 배척하기에 급급하였다. 오히려 천주교인들을 '사학죄인'으로 몰아 1만여 명이나 죽었는가하면, 쇄국정책을 펼쳐 서양학문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였고, 실학자들을 정치적으로 크게 탄압하였다.
기독교가 16세기 중반에 일본과 중국에 큰 발전을 가져다 준 것처럼 우리나라 근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일제 때부터 개신교 기독교인들은 민족운동과 애국운동을 일으켰고, 곳곳에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 민중계몽과 항일투쟁과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여기에 재앙이 주는 민족사적 구원의 의미가 있다. 기독교가 바로 서서 제 역할에 충실할 때 국가의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8.15직후 겪게 된 6.25전쟁은 민족분열을 책동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꾀한 좌파들에게 그 책임이 크다. 남북의 엄연한 현실 앞에서조차 오늘날 좌파들은 민족분열의 책임과 전쟁의 책임을 전적으로 우파와 미국에 돌리고 있다. 62번째 광복절을 맞은 우리는 20세기 초반과 비슷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제적으로는 한쪽에 치우치는 경향을 지양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국내적으로는 국력을 신장하고, 분열을 촉발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과거의 재앙이 주는 민족사적인 구원의 의미가 있다. 기독교인들의 꿈과 희망, 헌신과 봉사, 변화와 회개만이 기독교가 살고, 민족이 살길이다.
금년은 광복 62주년이 되는 해이다. 환갑을 넘긴 셈이다. 일제침탈을 겪었던 세대는 물러나고 그와 무관한 세대가 주역으로 뛰고 있다. 이 시점에서 광복이 주는 민족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 이 시대를 냉철하게 바라보면, 반미, 반기독교, 친북 좌파 민족주의 세력이 사회 곳곳에 침투해서 국민과 종교의 분열을 책동하고 있다. 쇄국과 기독교탄압으로 일관했던 조선조말 상황과 비슷하다. 물론 기독교우월주의도 금물이다. 그 또한 종교간 분열을 책동하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이후 조선조의 집권층인 북인 벽파는 남인 시파를 중심으로 한 실학파들을 천주교를 믿는 사학죄인으로 몰아 모두 참형시키거나 귀양을 보냈다. 세종대왕이후 400년 만에 나타난 국가발전방안들이 이를 주도해야 할 집권층의 필사적인 방해로 무산되었던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천주학쟁이들에 대한 박해가 절정에 달했고, 동학을 일으킨 최제우와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 등이 참형 당하였다. 같은 시절 흥선대원군은 서양 강대국과의 수교를 철저히 막았다. 쇄국과 기독교탄압정책은 근대화의 기회를 놓치게 했고, 결국 쇠락의 길을 걸어 한일합병으로 이어지게 하고 말았다. 여기에 과거의 재앙이 주는 민족사적 경고와 심판의 의미가 있다.
한편 16세기 중반에 일본과 중국은 기독교 복음과 서양문물을 받아드려 국가를 발전시켰고, 그 힘으로 결국 조선을 지배하고 능욕하는 데 활용하였다.
일본은 1549년 7월 이후 기독교와 함께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결국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이룩하였고, 중국도 당나라 때에 이미 한차례 기독교(景敎)를 수용한 경험이 있고, 또 1583년 9월 이후 기독교와 함께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변화를 꾀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유럽의 각종 문물과 번역서들을 북경을 통해서 접하고서도 배척하기에 급급하였다. 오히려 천주교인들을 '사학죄인'으로 몰아 1만여 명이나 죽었는가하면, 쇄국정책을 펼쳐 서양학문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였고, 실학자들을 정치적으로 크게 탄압하였다.
기독교가 16세기 중반에 일본과 중국에 큰 발전을 가져다 준 것처럼 우리나라 근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일제 때부터 개신교 기독교인들은 민족운동과 애국운동을 일으켰고, 곳곳에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워 민중계몽과 항일투쟁과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여기에 재앙이 주는 민족사적 구원의 의미가 있다. 기독교가 바로 서서 제 역할에 충실할 때 국가의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8.15직후 겪게 된 6.25전쟁은 민족분열을 책동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꾀한 좌파들에게 그 책임이 크다. 남북의 엄연한 현실 앞에서조차 오늘날 좌파들은 민족분열의 책임과 전쟁의 책임을 전적으로 우파와 미국에 돌리고 있다. 62번째 광복절을 맞은 우리는 20세기 초반과 비슷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제적으로는 한쪽에 치우치는 경향을 지양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국내적으로는 국력을 신장하고, 분열을 촉발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과거의 재앙이 주는 민족사적인 구원의 의미가 있다. 기독교인들의 꿈과 희망, 헌신과 봉사, 변화와 회개만이 기독교가 살고, 민족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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