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답답증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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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답답증의 원인◀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 신앙인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갈증들, 곧 여전히 타는 목마름이 그들의 삶을 답답하게 조이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답답증이 예수님을 만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없을까? 기독교인들에게도 답답증이 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성서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제자의 삶을 살면서도 삶의 활력을 잃고 타는 목마름을 호소하게 되는 데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세상에 대해서 완전히 죽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한 후에 세례나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병사의 삶을 시작했지만,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두고 입대한 군인처럼, 온전하게 주님의 병사로서 헌신하지 못하고,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데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바울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 믿는 이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의 “군사 된 자”(빌 2:25, 몬 1:2)라고 말했다. 디모데에게는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데 철저하게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삶의 활력을 잃게 되고, 삶의 답답증을 호소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신 성령님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기서 물은 성령님을 의미한다고 했다. 성령님을 받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는데, 왜 우리는 성령님을 받고도 갈증과 답답증을 호소하게 되는가? 바울 사도는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셨다”(고전 12:13)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성령님을 마시고도 갈증과 답답증을 호소하게 되는가?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권면하셨다. “성령님을 소멸치 말라.”(살전 5:19),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라.”(엡 4:30),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갈 5:16), “성령님으로 봉사하라.”(빌 3:3)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동생 유다도 “성령님으로 기도하라.”(유 1:20)고 권하셨다. 또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성령님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만일 우리가 성령님으로 살면 또한 성령님으로 행할지니”(갈 5:25),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님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님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고 하셨다.
끝없는 답답증이 성령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말씀들이다. 생수의 강이신 성령님이 우리 자신의 정욕에 눌려 근심케 되고, 소멸되어가고, 생수의 근원이 메마르듯 성령님이 메말라 가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들이 성령님을 좇아 행치 아니하고, 성령님으로 기도하지 아니하고, 성령님으로 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답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 신앙인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갈증들, 곧 여전히 타는 목마름이 그들의 삶을 답답하게 조이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답답증이 예수님을 만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없을까? 기독교인들에게도 답답증이 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성서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제자의 삶을 살면서도 삶의 활력을 잃고 타는 목마름을 호소하게 되는 데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세상에 대해서 완전히 죽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한 후에 세례나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병사의 삶을 시작했지만,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두고 입대한 군인처럼, 온전하게 주님의 병사로서 헌신하지 못하고,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데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바울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 믿는 이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의 “군사 된 자”(빌 2:25, 몬 1:2)라고 말했다. 디모데에게는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데 철저하게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삶의 활력을 잃게 되고, 삶의 답답증을 호소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신 성령님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기서 물은 성령님을 의미한다고 했다. 성령님을 받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는데, 왜 우리는 성령님을 받고도 갈증과 답답증을 호소하게 되는가? 바울 사도는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셨다”(고전 12:13)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성령님을 마시고도 갈증과 답답증을 호소하게 되는가?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권면하셨다. “성령님을 소멸치 말라.”(살전 5:19),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라.”(엡 4:30),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갈 5:16), “성령님으로 봉사하라.”(빌 3:3)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동생 유다도 “성령님으로 기도하라.”(유 1:20)고 권하셨다. 또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성령님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만일 우리가 성령님으로 살면 또한 성령님으로 행할지니”(갈 5:25),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님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님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고 하셨다.
끝없는 답답증이 성령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말씀들이다. 생수의 강이신 성령님이 우리 자신의 정욕에 눌려 근심케 되고, 소멸되어가고, 생수의 근원이 메마르듯 성령님이 메말라 가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들이 성령님을 좇아 행치 아니하고, 성령님으로 기도하지 아니하고, 성령님으로 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답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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