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안식을 주시는 예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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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안식을 주시는 예수(2)◀
유대사상 가운데 중요한 테마가 안식이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은 특별한 개념이다. 그들이 그토록 안식일을 엄하게 지킨 이유, 상황에 따라서는 수백 가지가 넘는 상식을 초월한 안식일 법들을 만들어서 지킨 이유가 그들의 오랜 유배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사람, 그 어떤 민족보다도 더 절실하게 안식이 필요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의 원형(prototype)은 가나안 땅이다. 아브라함이 오랜 유랑 끝에 안식의 상징인 가나안 땅에 진입한다. 야곱의 후손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다가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다. 홍해를 건넌 후 사막에서 40년을 살다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진입한다. 기나긴 세월의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얻게 되는 가나안 땅, 나라 없이 떠돌던 서러움을 한 순간에 씻어버린 가나안 땅의 진입이었다. 따라서 가나안 땅의 진입은 오랜 고난과 시련에 종지부를 찍고 얻는 안식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 흩여져 사는 유대인들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이방인들의 눈으로 볼 때, 불모지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유대인들이 볼 때는 젖과 꿀이 흐를 수 있는 희망(하티크바)의 땅이요, 하나님이 점지하신 땅이요, 약속의 땅이요, 거룩한 땅이요, 영원한 안식처이다. 이 가나안 땅에 오름, 이것은 분명 유대인들의 집단무의식이자 원형이며, 끈질긴 집념이면서 절대 신앙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이 원형에, 그들의 집단 무의식에, 그들의 끈질긴 집념에, 그들의 절대 신앙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 기독교이다. 유대인들의 안식개념은 지나치게 민족적이고, 배타적이며, 땅 중심적이었다. 그것은 또 지나치게 현세적이고 물질적이었다. 유대인들의 민족적이고, 배타적이며, 영토중심적인 안식개념을 우주적이고 탈민족적인 포용개념으로 승화시킨 것이 기독교이다. 유대인들의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안식개념을 내세적이고 영적인 개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유대인들의 이집트 탈출, 홍해도하, 광야생활, 요단강도하, 가나안정복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고, 배타적이며, 영토 중심적이고, 지나치게 현세적이며 물질적인 반면, 기독교에서는 이집트 탈출을 죄악과 사단의 억압에서의 탈출로, 홍해도하를 침례 받음으로, 광야생활을 지상에서의 교회생활로, 요단강도하를 육체의 죽음으로, 가나안 땅의 진입을 천국에 들어감으로 내세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승화시켜 안식개념을 우주적이고 탈민족적인 포용개념으로 발전시켰다. 기독교는 육체노동을 마치고 잠시 쉬는 일시적인 유대교적 안식개념을 버리고, 무덤(흑암, 혼돈, 죽음)의 상황을 박차고 일어나는 부활정신, 부활신앙, 부활의 삶을 안식의 개념으로 취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노동으로부터의 쉼을 강조하는 제칠 안식일 즉 토요일을 지키지 않고, 예수님께서 무덤을 박차고 나오신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에 지키고 있는 것이다. 제칠 안식일 즉 토요일 안식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 안식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그런 진정한 쉼을 주는 참 안식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안식은 '일하지 않는다.'는 육체의 쉼보다는 '참 평안을 누린다.' '해방을 만끽한다.' '자유를 누린다.'와 같은 마음과 정신과 영혼의 쉼을 의미한다.
유대사상 가운데 중요한 테마가 안식이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은 특별한 개념이다. 그들이 그토록 안식일을 엄하게 지킨 이유, 상황에 따라서는 수백 가지가 넘는 상식을 초월한 안식일 법들을 만들어서 지킨 이유가 그들의 오랜 유배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사람, 그 어떤 민족보다도 더 절실하게 안식이 필요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의 원형(prototype)은 가나안 땅이다. 아브라함이 오랜 유랑 끝에 안식의 상징인 가나안 땅에 진입한다. 야곱의 후손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다가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다. 홍해를 건넌 후 사막에서 40년을 살다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진입한다. 기나긴 세월의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얻게 되는 가나안 땅, 나라 없이 떠돌던 서러움을 한 순간에 씻어버린 가나안 땅의 진입이었다. 따라서 가나안 땅의 진입은 오랜 고난과 시련에 종지부를 찍고 얻는 안식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 흩여져 사는 유대인들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이방인들의 눈으로 볼 때, 불모지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유대인들이 볼 때는 젖과 꿀이 흐를 수 있는 희망(하티크바)의 땅이요, 하나님이 점지하신 땅이요, 약속의 땅이요, 거룩한 땅이요, 영원한 안식처이다. 이 가나안 땅에 오름, 이것은 분명 유대인들의 집단무의식이자 원형이며, 끈질긴 집념이면서 절대 신앙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이 원형에, 그들의 집단 무의식에, 그들의 끈질긴 집념에, 그들의 절대 신앙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 기독교이다. 유대인들의 안식개념은 지나치게 민족적이고, 배타적이며, 땅 중심적이었다. 그것은 또 지나치게 현세적이고 물질적이었다. 유대인들의 민족적이고, 배타적이며, 영토중심적인 안식개념을 우주적이고 탈민족적인 포용개념으로 승화시킨 것이 기독교이다. 유대인들의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안식개념을 내세적이고 영적인 개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유대인들의 이집트 탈출, 홍해도하, 광야생활, 요단강도하, 가나안정복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고, 배타적이며, 영토 중심적이고, 지나치게 현세적이며 물질적인 반면, 기독교에서는 이집트 탈출을 죄악과 사단의 억압에서의 탈출로, 홍해도하를 침례 받음으로, 광야생활을 지상에서의 교회생활로, 요단강도하를 육체의 죽음으로, 가나안 땅의 진입을 천국에 들어감으로 내세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승화시켜 안식개념을 우주적이고 탈민족적인 포용개념으로 발전시켰다. 기독교는 육체노동을 마치고 잠시 쉬는 일시적인 유대교적 안식개념을 버리고, 무덤(흑암, 혼돈, 죽음)의 상황을 박차고 일어나는 부활정신, 부활신앙, 부활의 삶을 안식의 개념으로 취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노동으로부터의 쉼을 강조하는 제칠 안식일 즉 토요일을 지키지 않고, 예수님께서 무덤을 박차고 나오신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에 지키고 있는 것이다. 제칠 안식일 즉 토요일 안식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 안식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그런 진정한 쉼을 주는 참 안식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안식은 '일하지 않는다.'는 육체의 쉼보다는 '참 평안을 누린다.' '해방을 만끽한다.' '자유를 누린다.'와 같은 마음과 정신과 영혼의 쉼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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