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과 ‘신약’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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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의 차이◀
신앙인들 가운데 ‘구약’과 ‘신약’이란 말이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지 모르겠다. 기독교인들 대다수가 ‘구약’이란 메시아 예언에 관한 것이고, ‘신약’이란 재림에 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옳은 답일까?
메시아에 관한 예언은 바벨론 포로기 때에 예언자들의 회복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약성서는 대부분 유대민족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언약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지켰는가에서 찾고 있다. 예언자들의 활동표준은 바로 이 언약에 대한 성실성에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예언서들의 내용은 언약에 대한 유대민족의 성실성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우리 민족이 이 엄청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가, 왜 우리 민족이 이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었는가를 묻고, 그 해답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지켰는가에서 찾았던 것이다. 결론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결론을 근거로 예언자들은 유대민족을 대상으로 회개운동을 펼쳤다. 회개운동 후에 예언자들이 펼친 또 다른 운동이 있었는데 그것이 회복운동이다. 회복운동이란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에 대한 예언으로써 그 중심에 메시아 도래에 관한 예언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메시아가 오시는 때가 이스라엘 국가가 회복되는 때인 것이다.
그러면 예언자들의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의 근거가 되었던 ‘언약’은 무엇인가? 성서에서 말하는 언약은 ‘약속’이나 ‘예언’이란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쌍방이 합의한 ‘계약’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옛 언약’이란 뜻의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내산 기슭에서 하나님과 짐승의 피로써 맺은 계약을 말한다. 이 계약에 의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민이 된 것이고, 그 내용이 바로 십계명과 율법이다. 따라서 십계명과 율법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합의한 계약인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십계명과 율법서를 ‘언약서’라 부른다. 이 언약서가 구약성서의 핵심이고, 이 언약과 관련된 유대인들을 신약성서에 기반을 둔 우리 기독교인들은 ‘옛 선민’이란 뜻의 ‘구약공동체’라 부른다. ‘옛 언약 공동체’란 유대인들이 옛 선민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이 흔히 쓰는 ‘구약’이란 옛 언약서를 말하고, 이 옛 언약서에 기초한 민족이 구약공동체요, 옛 선민이며, 이스라엘 민족인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이란 무엇인가? ‘신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맺은 ‘새 언약’을 말한다. ‘새 언약’은 신자들이 침례(세례)받을 때 하나님 앞과 증인들 앞에서 행한 신앙고백이며, 그 내용은 신약성서의 엑기스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의 모임인 ‘교회’가 ‘새 언약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은 새 언약 공동체요, 새 선민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짐승의 피로써 맺은 선민이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맺은 선민이다.
그러므로 ‘구약’이 무흠하고 더 좋은 ‘신약’의 모형과 그림자로써 낡아지고 쇠하고 없어져 간 것이라면, 신약은 무흠한 더 좋은 언약인 것이다(히 8:1-13).
신앙인들 가운데 ‘구약’과 ‘신약’이란 말이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지 모르겠다. 기독교인들 대다수가 ‘구약’이란 메시아 예언에 관한 것이고, ‘신약’이란 재림에 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옳은 답일까?
메시아에 관한 예언은 바벨론 포로기 때에 예언자들의 회복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약성서는 대부분 유대민족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언약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지켰는가에서 찾고 있다. 예언자들의 활동표준은 바로 이 언약에 대한 성실성에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예언서들의 내용은 언약에 대한 유대민족의 성실성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우리 민족이 이 엄청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가, 왜 우리 민족이 이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었는가를 묻고, 그 해답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지켰는가에서 찾았던 것이다. 결론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결론을 근거로 예언자들은 유대민족을 대상으로 회개운동을 펼쳤다. 회개운동 후에 예언자들이 펼친 또 다른 운동이 있었는데 그것이 회복운동이다. 회복운동이란 이스라엘 국가의 회복에 대한 예언으로써 그 중심에 메시아 도래에 관한 예언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메시아가 오시는 때가 이스라엘 국가가 회복되는 때인 것이다.
그러면 예언자들의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의 근거가 되었던 ‘언약’은 무엇인가? 성서에서 말하는 언약은 ‘약속’이나 ‘예언’이란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쌍방이 합의한 ‘계약’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옛 언약’이란 뜻의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내산 기슭에서 하나님과 짐승의 피로써 맺은 계약을 말한다. 이 계약에 의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민이 된 것이고, 그 내용이 바로 십계명과 율법이다. 따라서 십계명과 율법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합의한 계약인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십계명과 율법서를 ‘언약서’라 부른다. 이 언약서가 구약성서의 핵심이고, 이 언약과 관련된 유대인들을 신약성서에 기반을 둔 우리 기독교인들은 ‘옛 선민’이란 뜻의 ‘구약공동체’라 부른다. ‘옛 언약 공동체’란 유대인들이 옛 선민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이 흔히 쓰는 ‘구약’이란 옛 언약서를 말하고, 이 옛 언약서에 기초한 민족이 구약공동체요, 옛 선민이며, 이스라엘 민족인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이란 무엇인가? ‘신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맺은 ‘새 언약’을 말한다. ‘새 언약’은 신자들이 침례(세례)받을 때 하나님 앞과 증인들 앞에서 행한 신앙고백이며, 그 내용은 신약성서의 엑기스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의 모임인 ‘교회’가 ‘새 언약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은 새 언약 공동체요, 새 선민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짐승의 피로써 맺은 선민이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맺은 선민이다.
그러므로 ‘구약’이 무흠하고 더 좋은 ‘신약’의 모형과 그림자로써 낡아지고 쇠하고 없어져 간 것이라면, 신약은 무흠한 더 좋은 언약인 것이다(히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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