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Taberna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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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Tabernacle)◀
유대인들은 성막을 ‘미쉬칸’이라 부른다. 미쉬칸은 조립과 분리와 운반이 용이한 이동식 하나님의 집이었다. 이스라엘 회중이 주둔하는 중앙에 설치되었다.
성막은 하늘보좌방의 모형으로써 하나님의 임재와 만남과 치유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입구는 동쪽에 있었고, 휘장을 사이에 두고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었다. 서쪽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계명이 담긴 증거궤라 불리는 언약궤가 있었고, 언약의 하나님을 상징하였다. 언약궤의 뚜껑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였는데, ‘속죄소’ 또는 ‘시은소’라 불렸다.
속죄소 곧 언약궤의 뚜껑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였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 초막절 축일 5일전인 대속죄일(Yom Kippur, 추석명절 5일전)에 이 속죄소에 들어가서 백성의 속죄를 상징하는 염소의 피를 뿌렸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19-20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했던 것이다.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는 말씀은 히브리서 4장 16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지성소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로 나가는 길이 휘장으로 막혀있어서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차례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 휘장을 걷어냄으로써 이제는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에로, 은혜의 보좌인 시은소에로, 죄사함의 보좌인 속죄소에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 생명의 길, 빛의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휘장은 십자가상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의 예표이자, 모형이며, 그림자이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였다. 성막시대에는 하나님이 성막에 계신다는 표시로써 ‘쉐키나,’ 곧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성막 위에 머물렀다. 쉐키나가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일상을 중지하고 짐을 꾸린 후 쉐키나를 따라 길을 떠났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려고 길을 떠나시기 때문이었다.
성막을 ‘회막’(meeting tent)라고 불렸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만나시는 장소란 뜻이다. 따라서 성막은 하나님과 교제가 이뤄지는 곳이요, 만남의 광장이었으며, 예물을 바치는 곳이었다.
성막은 속죄와 치유의 장소였다. 죄와 제물을 함께 가져와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제물에 죄를 전가시켜 죽게 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고 삶을 치유 받게 했던 곳이었다.
성막을 대신하는 곳이 예배당이다. 개신교 정신은 장소보다는 성도들의 모임에 가치를 둔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있고, 언약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면, 아무리 비좁고 누추한 곳일지라도,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하나님과의 만남과 속죄와 치유가 이뤄지는 성소이다. 예배당이 하나님의 집이 되고 못되는 것,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고 없고는 예배당의 크고 작음이나 장엄하고 누추한 것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모이는 구성원들의 태도와 예배의 내용과 신실함에 달려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막을 ‘미쉬칸’이라 부른다. 미쉬칸은 조립과 분리와 운반이 용이한 이동식 하나님의 집이었다. 이스라엘 회중이 주둔하는 중앙에 설치되었다.
성막은 하늘보좌방의 모형으로써 하나님의 임재와 만남과 치유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입구는 동쪽에 있었고, 휘장을 사이에 두고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었다. 서쪽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계명이 담긴 증거궤라 불리는 언약궤가 있었고, 언약의 하나님을 상징하였다. 언약궤의 뚜껑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였는데, ‘속죄소’ 또는 ‘시은소’라 불렸다.
속죄소 곧 언약궤의 뚜껑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였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 초막절 축일 5일전인 대속죄일(Yom Kippur, 추석명절 5일전)에 이 속죄소에 들어가서 백성의 속죄를 상징하는 염소의 피를 뿌렸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19-20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했던 것이다.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는 말씀은 히브리서 4장 16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지성소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로 나가는 길이 휘장으로 막혀있어서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차례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 휘장을 걷어냄으로써 이제는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에로, 은혜의 보좌인 시은소에로, 죄사함의 보좌인 속죄소에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 생명의 길, 빛의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휘장은 십자가상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의 예표이자, 모형이며, 그림자이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였다. 성막시대에는 하나님이 성막에 계신다는 표시로써 ‘쉐키나,’ 곧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성막 위에 머물렀다. 쉐키나가 떠오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일상을 중지하고 짐을 꾸린 후 쉐키나를 따라 길을 떠났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려고 길을 떠나시기 때문이었다.
성막을 ‘회막’(meeting tent)라고 불렸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만나시는 장소란 뜻이다. 따라서 성막은 하나님과 교제가 이뤄지는 곳이요, 만남의 광장이었으며, 예물을 바치는 곳이었다.
성막은 속죄와 치유의 장소였다. 죄와 제물을 함께 가져와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제물에 죄를 전가시켜 죽게 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고 삶을 치유 받게 했던 곳이었다.
성막을 대신하는 곳이 예배당이다. 개신교 정신은 장소보다는 성도들의 모임에 가치를 둔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있고, 언약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면, 아무리 비좁고 누추한 곳일지라도,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하나님과의 만남과 속죄와 치유가 이뤄지는 성소이다. 예배당이 하나님의 집이 되고 못되는 것,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고 없고는 예배당의 크고 작음이나 장엄하고 누추한 것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모이는 구성원들의 태도와 예배의 내용과 신실함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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