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The Most Holy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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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The Most Holy Place)◀
유대인의 성막 혹은 성전은 하나님이 사람이 지은 건물에 갇힌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현존하신 곳을 성소 또는 지성소라는 특정 장소에 제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성소와 지성소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성소는 당번을 맡은 제사장이 매일,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차례만 접근할 수 있었다. 더욱이 돌로 지은 성전시대에는 성소를 둘러싼 뜰과 담이 접근을 겹겹이 제한하고 있었다. 성소가 들어선 뜰을 ‘제사장의 뜰’이라 하여 제사장들만 출입하였고, 그 바깥뜰을 ‘이스라엘의 뜰’이라 하여 ‘계명의 아들’(Bar Mitzvah)인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에게만 허용되었으며, 그 바깥뜰을 ‘여성의 뜰’이라 하여 유대인 여성들까지만 허용되었다. 이방인들은 여성의 뜰 바깥에 있는 넓은 ‘이방인의 뜰’만 허용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성소로부터 가장 가까운 영역에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제사장들이고, 그리고 성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이방인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성전의 뜰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일종의 차단막, 곧 휘장과 같은 것이었다. 그 차단막을 없애버린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 차단막이 없어야 할 곳이 교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안에는 목사와 성도 사이를 가로막는 휘장이 남아있고, 빈부귀천 남녀노소, 인종과 민족 사이를 가로막는 휘장들이 남아 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못 박혀 죽으신 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접근을 가로막는 휘장 곧 모든 차단막을 제거해버린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과연 하나님이 성소에만 계실까? 고대 세계에서 성소는 신들이 머무는 거처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나라가 붕괴되고 성전이 훼파되며,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면서부터 하나님의 현존장소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성막이나 성전 안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머무신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막, 성전, 성소, 예배당 등은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신다기보다는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백성과 함께 거하신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 되었다. 특히 성막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적인 개념이다. 성막은 거주의 개념이 아니라 이동하고 만나고 함께 걷는 동행의 개념이다. 성막은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이 만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다. 외경에는 하나님께서 성소를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 성소를 택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마카비2서 5: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믿었고, 성전에 있을 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주셨다. 장소에 상관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인 성전은 이제 예수님의 몸으로 대신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의 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바로 참된 성전이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성전이 참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모여 예배하는 그곳이 성전인 것이다.
유대인의 성막 혹은 성전은 하나님이 사람이 지은 건물에 갇힌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현존하신 곳을 성소 또는 지성소라는 특정 장소에 제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성소와 지성소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성소는 당번을 맡은 제사장이 매일,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차례만 접근할 수 있었다. 더욱이 돌로 지은 성전시대에는 성소를 둘러싼 뜰과 담이 접근을 겹겹이 제한하고 있었다. 성소가 들어선 뜰을 ‘제사장의 뜰’이라 하여 제사장들만 출입하였고, 그 바깥뜰을 ‘이스라엘의 뜰’이라 하여 ‘계명의 아들’(Bar Mitzvah)인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에게만 허용되었으며, 그 바깥뜰을 ‘여성의 뜰’이라 하여 유대인 여성들까지만 허용되었다. 이방인들은 여성의 뜰 바깥에 있는 넓은 ‘이방인의 뜰’만 허용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성소로부터 가장 가까운 영역에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제사장들이고, 그리고 성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이방인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성전의 뜰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일종의 차단막, 곧 휘장과 같은 것이었다. 그 차단막을 없애버린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 차단막이 없어야 할 곳이 교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안에는 목사와 성도 사이를 가로막는 휘장이 남아있고, 빈부귀천 남녀노소, 인종과 민족 사이를 가로막는 휘장들이 남아 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못 박혀 죽으신 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접근을 가로막는 휘장 곧 모든 차단막을 제거해버린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과연 하나님이 성소에만 계실까? 고대 세계에서 성소는 신들이 머무는 거처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나라가 붕괴되고 성전이 훼파되며,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면서부터 하나님의 현존장소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성막이나 성전 안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머무신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막, 성전, 성소, 예배당 등은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신다기보다는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백성과 함께 거하신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 되었다. 특히 성막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적인 개념이다. 성막은 거주의 개념이 아니라 이동하고 만나고 함께 걷는 동행의 개념이다. 성막은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이 만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다. 외경에는 하나님께서 성소를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 성소를 택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마카비2서 5: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믿었고, 성전에 있을 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주셨다. 장소에 상관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인 성전은 이제 예수님의 몸으로 대신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의 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바로 참된 성전이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성전이 참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모여 예배하는 그곳이 성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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