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의 관유(sacred anointing o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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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관유(sacred anointing oil)◀
관유는 성령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구약시대에는 구별된 일군들에 한해서 기름부음을 받고, 머리에 발라 거룩히 구별되도록 하였다. 사울과 다윗의 경우에서 보듯이,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은 즉시 하나님의 신이 임하였다.
신약시대에는 침례가 기름부음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경우에서 보듯이, 침례 직후에 성령님이 임한 것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침례 직후에 견진례를 시행하였는데, 견진례란 관유를 이마에 발라 십자가 성호를 그어주는 것을 말한다. 바울이 말한 ‘성령의 인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식인 것이다.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었음을 ‘직인 찍어’ 확인하는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약시대에는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구원의 선물로, 구원의 보증으로, 구원의 인감 찍음으로, 성령님을 모든 성도들에게 물 붓듯이 부여주신다. 성령님이 성도들의 심령에 함께 하시는 축복이 구약시대에는 없던 신약시대만의 축복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성령시대’라 부른다.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말하고, 병을 고친다고 해서 성령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구약시대에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일들이다.
그러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의 임재가 특별히 구별된 사람들, 즉 제사장들, 예언자들, 왕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있었고, 하나님의 신, 곧 성령님의 능력의 역사만 있었으며, 하나님의 신이 친히 그들 마음속에는 계시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제한 없이 누구에게나 성령님이 그들 마음속에 항구적으로 임재하고 계시며, 그 대신 방언을 한다든지, 예언을 한다든지, 병을 고친다든지 하는 은사는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때에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그 같은 은사들이 우리에게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관유부음이 하나님이 뽑으셨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신약시대에도 주의 종들이 안수례를 통해서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들은 에베소서의 말씀대로,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은사 자들이다(4:12). 같은 맥락에서 성도들도 뽑힌 자들이다.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봉사의 일을 하는 은사 자들이다. 만인제사장 개념에서는 성도들도 모두 주의 일군들이다. 그러나 안수례를 받고 전임(專任)하는 일군들과는 책임과 직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성막에서 쓰인 성물들에서 배워야 할 점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거룩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성물들이 신자들의 믿음과 태도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성막의 도구들은 그 자체로 거룩했다기보다 관유가 발라짐으로써 비로소 성스러움을 갖게 되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디도서 3장 5절의 말씀대로, 본래 죄인이었던 우리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곧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늘 자신을 세상과 구별하고,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는 기쁘게 받으실만한 거룩하고 살아있는 제사로 마음을 모아 드려야 한다.
관유는 성령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구약시대에는 구별된 일군들에 한해서 기름부음을 받고, 머리에 발라 거룩히 구별되도록 하였다. 사울과 다윗의 경우에서 보듯이,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은 즉시 하나님의 신이 임하였다.
신약시대에는 침례가 기름부음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경우에서 보듯이, 침례 직후에 성령님이 임한 것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침례 직후에 견진례를 시행하였는데, 견진례란 관유를 이마에 발라 십자가 성호를 그어주는 것을 말한다. 바울이 말한 ‘성령의 인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식인 것이다.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었음을 ‘직인 찍어’ 확인하는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약시대에는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구원의 선물로, 구원의 보증으로, 구원의 인감 찍음으로, 성령님을 모든 성도들에게 물 붓듯이 부여주신다. 성령님이 성도들의 심령에 함께 하시는 축복이 구약시대에는 없던 신약시대만의 축복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성령시대’라 부른다.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말하고, 병을 고친다고 해서 성령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구약시대에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일들이다.
그러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의 임재가 특별히 구별된 사람들, 즉 제사장들, 예언자들, 왕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있었고, 하나님의 신, 곧 성령님의 능력의 역사만 있었으며, 하나님의 신이 친히 그들 마음속에는 계시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제한 없이 누구에게나 성령님이 그들 마음속에 항구적으로 임재하고 계시며, 그 대신 방언을 한다든지, 예언을 한다든지, 병을 고친다든지 하는 은사는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때에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그 같은 은사들이 우리에게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관유부음이 하나님이 뽑으셨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신약시대에도 주의 종들이 안수례를 통해서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들은 에베소서의 말씀대로,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은사 자들이다(4:12). 같은 맥락에서 성도들도 뽑힌 자들이다.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봉사의 일을 하는 은사 자들이다. 만인제사장 개념에서는 성도들도 모두 주의 일군들이다. 그러나 안수례를 받고 전임(專任)하는 일군들과는 책임과 직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성막에서 쓰인 성물들에서 배워야 할 점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거룩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성물들이 신자들의 믿음과 태도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성막의 도구들은 그 자체로 거룩했다기보다 관유가 발라짐으로써 비로소 성스러움을 갖게 되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디도서 3장 5절의 말씀대로, 본래 죄인이었던 우리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곧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늘 자신을 세상과 구별하고,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는 기쁘게 받으실만한 거룩하고 살아있는 제사로 마음을 모아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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