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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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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7,728 2008.03.06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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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 예수◀
1세기경 유대인 기독교인들(Messianic Jews)은 동족인 유대교공동체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심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기독교를 버리고 유대교로 복귀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히브리서 9장은 ‘옛 언약’인 구약을 ‘육체의 예법’(10절), ‘모형’(23절) 혹은 ‘그림자’(24절)로 표현하면서 신앙의 위기에 빠진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을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옛 언약의 예법에 따른 제사와 제물과 대제사장은 장차 올 더 좋은 예배와 제물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 비해서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히브리서 9장은 첫 언약의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막이 갖는 제한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곧 법궤 위 속죄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휘장으로 막혀 있었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 분명하지도 않았고, 좀처럼 쉽지도 않았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차례 대속죄일 때만 백성의 속죄를 위해서 짐승의 피를 가지고 법궤 위 속죄소로 나아간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한 성막과 예법이 장차 나타날 더 좋은 것의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였다는 점이다. 모세를 통해서 지시한 옛 것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성취와 실체는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한 더 좋은 것으로써 완전하고 항구적인 것이다.
셋째, ‘옛 언약’에 따른 성막 제단에 드려진 희생제물과 봉헌물은 인간의 양심까지 온전케 할 수 없는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얻어지는 구원은 법적인 속죄는 물론이고 양심까지 깨끗하고 온전하게 영구적으로 사하는 능력이 있다.
넷째, ‘옛 언약’에 따른 예법은 심령보다는 육적인 것에 강조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레위기 11장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서 발생한 부정을 씻는 일에 중점을 두었고, 민수기 19장은 죽은 자와 접촉하는 데서 발생한 부정을 씻는 일에 중점을 두었으며, 레위기 12-15장은 문둥병과 유출병과 같은 질병으로 발생한 부정을 씻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의 제도는 육체에 관해서는 철저했지만, 영혼에 관해서는 약점을 지닌 것이어서 반드시 ‘새 언약’에 따른 예법으로 개혁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10절에서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준 것이다”고 하였던 것이다.
구약성서시대의 히브리인들은 영적세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그들의 사고는 통합적이어서 사람을 육체와 영혼으로, 영적세계를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는 이원론적인 인식이 약했다. 영적세계에 대한 관심과 강조는 헬레니즘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님시대에는 이 헬레니즘의 이원론이 매우 두드러진 때였다. 육적인 것이 영적인 것의 모형이나 그림자 혹은 예표로 강조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구약성서가 육적이고, 신약성서가 영적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육적인 ‘옛 언약’(구약)에 따른 예법은 영적인 ‘새 언약’(신약)에 따른 예법으로 개혁되는 것이 당연하고 합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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