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올 좋은 것의 배경(Reference of What Is to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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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올 좋은 것의 배경(Reference of What Is to Come)◀
‘장차올 좋은 일’은 구약성서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그것을 일컬어 신학에서는 ‘묵시문학사상’이라 부르고 있고, 유대교적 배경에서 보면, ‘올람 하바’에 대한 ‘하티크바’ 곧 ‘다가올 세상’에 대한 ‘희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유대교적 배경은 고대 페르시아제국시절에 활동했던 역대기 역사가들의 가나안신정국가이념에서 찾을 수 있다.
유대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테마가 안식이다. 유대인들은 오랜 유배생활에 지쳐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안식은 절대적이고, 신성하며, 지복의 상징이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의 원형(prototype)은 가나안 땅이다. 떠돌이 히브리인들의 후예인 유대인들은 너무 오랜 세월을 노예로서, 유배당한자로서 혹은 피억압자로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다. 그들은 그들의 눈을 가나안 땅 예루살렘 시온에로 향하고 산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이 안식개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신약성서의 시각이고, 그 잘못을 바르게 잡고 있는 것이 신약성서이다. 유대인들의 안식개념은 지나치게 민족적이고, 배타적이며, 영토 중심적이다. 그것은 또 지나치게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다. 이런 잘못된 안식개념을 우주적이고 탈 민족주의적인 개념으로 승화시킨 것이 신약성서이다. 유대인들의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안식개념을 내세적이고 영적인 개념으로 승화시킨 것이 신약성서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승천하신 예수님을 장차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로 확신하였고, 그분이 선포했던 ‘하나님의 나라’를 참되고 영원한 안식처로, ‘장차올 좋은 일’로, ‘장차올 세상’으로 인식하였다.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가 문자적 의미의 이스라엘 왕국이 아니라, 성령님이 예수님을 믿는 자 개개인들에게 임하신 후에 이뤄질 영적 의미의 이스라엘 나라이며, 민족과 신분과 남녀노소의 차별 없이, 공평하고 값없이 은혜로 열려있는 현재의 영적구원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궁극적으로 이뤄질 부활과 영원한 세계를 성령님을 통해서 약속하고 보장하고 인증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문자적인 세계이고, 아직 이뤄진 적이 없는 미래세계이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장차올 좋은 것’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우리 안에 상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 속에서 이미 우리 가운데서 이뤄졌고, 장래에 이뤄질 거룩하고 영화로운 몸의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영원한 안식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셨고, “그 약속을 보장하는 보증금과 인감으로써”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장차올 좋은 것들’을 ‘기업’으로 ‘상속’받게 될 ‘후계자들’이고, 이런 일을 미리 계획하고 실천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장차올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끝까지 견디는 신실한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앞서간 신앙인들은 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손에 넣기 위해서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믿고 순종하며 앞으로 나아갔다고 말씀한다.
‘장차올 좋은 일’은 구약성서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그것을 일컬어 신학에서는 ‘묵시문학사상’이라 부르고 있고, 유대교적 배경에서 보면, ‘올람 하바’에 대한 ‘하티크바’ 곧 ‘다가올 세상’에 대한 ‘희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유대교적 배경은 고대 페르시아제국시절에 활동했던 역대기 역사가들의 가나안신정국가이념에서 찾을 수 있다.
유대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테마가 안식이다. 유대인들은 오랜 유배생활에 지쳐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안식은 절대적이고, 신성하며, 지복의 상징이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의 원형(prototype)은 가나안 땅이다. 떠돌이 히브리인들의 후예인 유대인들은 너무 오랜 세월을 노예로서, 유배당한자로서 혹은 피억압자로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다. 그들은 그들의 눈을 가나안 땅 예루살렘 시온에로 향하고 산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이 안식개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신약성서의 시각이고, 그 잘못을 바르게 잡고 있는 것이 신약성서이다. 유대인들의 안식개념은 지나치게 민족적이고, 배타적이며, 영토 중심적이다. 그것은 또 지나치게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다. 이런 잘못된 안식개념을 우주적이고 탈 민족주의적인 개념으로 승화시킨 것이 신약성서이다. 유대인들의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안식개념을 내세적이고 영적인 개념으로 승화시킨 것이 신약성서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승천하신 예수님을 장차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로 확신하였고, 그분이 선포했던 ‘하나님의 나라’를 참되고 영원한 안식처로, ‘장차올 좋은 일’로, ‘장차올 세상’으로 인식하였다.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가 문자적 의미의 이스라엘 왕국이 아니라, 성령님이 예수님을 믿는 자 개개인들에게 임하신 후에 이뤄질 영적 의미의 이스라엘 나라이며, 민족과 신분과 남녀노소의 차별 없이, 공평하고 값없이 은혜로 열려있는 현재의 영적구원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궁극적으로 이뤄질 부활과 영원한 세계를 성령님을 통해서 약속하고 보장하고 인증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문자적인 세계이고, 아직 이뤄진 적이 없는 미래세계이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장차올 좋은 것’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우리 안에 상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 속에서 이미 우리 가운데서 이뤄졌고, 장래에 이뤄질 거룩하고 영화로운 몸의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영원한 안식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셨고, “그 약속을 보장하는 보증금과 인감으로써”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장차올 좋은 것들’을 ‘기업’으로 ‘상속’받게 될 ‘후계자들’이고, 이런 일을 미리 계획하고 실천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장차올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끝까지 견디는 신실한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앞서간 신앙인들은 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손에 넣기 위해서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믿고 순종하며 앞으로 나아갔다고 말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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