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실상과 증거이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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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실상과 증거이신 예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는 말씀에서 ‘바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하티크바’(희망)를 말하고, 유대인들이 그토록 바랐고, 아직도 바라고 있는 ‘올람하바’(장차올 좋은 세상)를 말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연고로 얻지 못했고, 결국은 대다수가 이방인인 그리스도인들이 대신 받게 된 하나님의 약속을 말한다.
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에서 ‘실상’은 ‘실체,’ ‘확신,’ ‘보장,’ ‘기초’를 뜻한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바라는 것’을 이루는 보장이 되고, 실체가 되고, 실상이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믿는 이들에게 “장차올 것을 보장하는 보증금으로써”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그것들을 ‘갈망’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그들의 신분이 비록 천할지라도, ‘그들의 하나님으로’ 불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셨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모든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것을 이루는 보장이 되고 실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에서 ‘보지 못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며 ‘장차올 좋은 세상,’ ‘약속의 땅’을 전혀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진입한 것, ‘알리야’라 부르는 ‘오름’을 시행한 것을 말한다. 창세기를 보면, 유대인의 대표자로서 아브라함이 대가족을 이끌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것을 향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오른 것을 볼 수 있고,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 ‘오름’에서 가장 큰 특징은 ‘순례자의 길’이다. 신약성서는 이 ‘오름’이 ‘장차올 더 좋은 것’을 향한 십자가의 길, 그러나 끝내 이기고 예수님의 영광스런 보좌에 함께 앉는 영광의 길임을 말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는 것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 것은, 믿음의 조상들이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눈에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는 것을 향해서 오름의 행진을 펼친 후에 끝내는 이기고 그 약속의 증거로 바라고 소원했던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비록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르는 무모한 것일지라도, 끝내 이기고 약속의 증거를 손에 넣게 할 것이고, 바라던 것을 이루게 할 능력이고,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할 지혜이다. 신실한 믿음과 순종함으로 선배 신앙인들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신뢰함으로써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증거물로 얻었다는 것이 히브리서 11장 1-2절의 대 선언이다. 그리고 나머지 11장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었는데도,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순종함으로 나아갔을 때, 그 약속의 실체와 실상을 증거로 확보했던 증인들의 이름들을 열거한 것이다. 여기에 열거된 이름들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들이다. 우리의 이름들도 반드시 이 생명책에 등재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이름들은 ‘장차올 더 좋은 세상’에 세워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도 끝까지 견디고 이겨서 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는 말씀에서 ‘바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하티크바’(희망)를 말하고, 유대인들이 그토록 바랐고, 아직도 바라고 있는 ‘올람하바’(장차올 좋은 세상)를 말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연고로 얻지 못했고, 결국은 대다수가 이방인인 그리스도인들이 대신 받게 된 하나님의 약속을 말한다.
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에서 ‘실상’은 ‘실체,’ ‘확신,’ ‘보장,’ ‘기초’를 뜻한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바라는 것’을 이루는 보장이 되고, 실체가 되고, 실상이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믿는 이들에게 “장차올 것을 보장하는 보증금으로써”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그것들을 ‘갈망’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그들의 신분이 비록 천할지라도, ‘그들의 하나님으로’ 불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셨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모든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것을 이루는 보장이 되고 실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에서 ‘보지 못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며 ‘장차올 좋은 세상,’ ‘약속의 땅’을 전혀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진입한 것, ‘알리야’라 부르는 ‘오름’을 시행한 것을 말한다. 창세기를 보면, 유대인의 대표자로서 아브라함이 대가족을 이끌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것을 향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오른 것을 볼 수 있고,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 ‘오름’에서 가장 큰 특징은 ‘순례자의 길’이다. 신약성서는 이 ‘오름’이 ‘장차올 더 좋은 것’을 향한 십자가의 길, 그러나 끝내 이기고 예수님의 영광스런 보좌에 함께 앉는 영광의 길임을 말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는 것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 것은, 믿음의 조상들이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눈에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는 것을 향해서 오름의 행진을 펼친 후에 끝내는 이기고 그 약속의 증거로 바라고 소원했던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비록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르는 무모한 것일지라도, 끝내 이기고 약속의 증거를 손에 넣게 할 것이고, 바라던 것을 이루게 할 능력이고,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할 지혜이다. 신실한 믿음과 순종함으로 선배 신앙인들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신뢰함으로써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증거물로 얻었다는 것이 히브리서 11장 1-2절의 대 선언이다. 그리고 나머지 11장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었는데도,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순종함으로 나아갔을 때, 그 약속의 실체와 실상을 증거로 확보했던 증인들의 이름들을 열거한 것이다. 여기에 열거된 이름들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들이다. 우리의 이름들도 반드시 이 생명책에 등재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이름들은 ‘장차올 더 좋은 세상’에 세워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도 끝까지 견디고 이겨서 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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