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사만 사천
본문
▶십사만 사천◀
신약성서에는 ‘인침’ 곧 ‘도장 찍음’이란 말이 여러 번 쓰였다. 특히 바울은 구원의 상징인 천국 ‘기업’(땅)의 ‘약속’(약정서)의 ‘보증’(선수금)과 ‘인침’(인감 찍음)으로써 성령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고 에베소서 1장 13-14절과 고린도후서 1장 21-22절에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인침’은 구원의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사야서 43장 1절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한 것처럼, ‘인침’은 하나님의 것,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계시록 7장 4절에 유대인 열두지파에서 인 맞은 자가 십사만 사천 명으로 나온다. 각 지파마다 일만 이 천 명씩 선별되었다. 이 숫자를 문자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상징적인 숫자로 볼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역사적으로 약간의 변동이 있어왔다. 요셉 지파는 므낫세 지파(민 13:11)로 불렸고, 레위 지파를 빼고 요셉의 두 번째 아들인 에브라임을 넣어 지파족장으로 삼기도 하였다. 계시록 7장에서는 레위와 요셉이 들어간 대신에 단과 에브라임이 빠졌다. 단 지파의 경우, 확실히 무슨 문제가 있었던 같다. 다른 지파들은 후손들이 생존해 있는 반면, 단 지파만큼은 지금도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단 지파가 단군의 조상일 것이란 억측도 있지만, 우스개로 하는 말이지 사실성은 희박하다.
‘십사만 사천’은 뒤에 나오는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동일 집단일 수도 있고, 다른 집단일 수도 있다. 만일 다른 집단이라면, ‘십사만 사천’은 열두 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뽑힌 유대인 집단일 것이고, ‘십사만 사천’이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같은 집단이라면, ‘십사만 사천’이 문자적인 숫자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숫자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144,000는 144x1000에서 나온 숫자인데, 계시록 21장 17절을 근거로 볼 때, 144는 새 예루살렘 성벽의 두께이고, 1,000은 ‘영원’을 뜻한다. 또 144는 12x12에서 만들어진 숫자이다.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를 의미할 수 있다. 또 12는 3(하나님)x4(세상/땅)에서 나온 숫자일 수 있다. 3은 성 삼위 하나님을, 4는 세상과 땅을 의미한다.
중요하고 명백한 것은 이스라엘에서 구원 받을 사람이 각 지파에서 공평하게 문자적인 12,000명씩 144,000명만 선택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숫자는 지나치게 운명적이고 획일적이며, 인간의 책임과 응답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신구약성서 메시지에 어긋난다. 그렇기 때문에 ‘십사만 사천’을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동일한 숫자로 볼 수밖에 없고, ‘십사만 사천’이란 숫자를 문자적인 숫자가 아닌 상징적인 숫자로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십사만 사천’은 9절에 언급된,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와 동일한 숫자이고,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흰 옷을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것입니다."(10절)고 외치며, 승리의 노래,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다(계15:2-3).
이들 ‘십사만 사천’은 14절의 말씀처럼, 큰 환란을 당하였지만, 춘향이처럼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킨 사람들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말이 어린 양의 피로 자기 옷을 희게 빨았다는 것이다.
신약성서에는 ‘인침’ 곧 ‘도장 찍음’이란 말이 여러 번 쓰였다. 특히 바울은 구원의 상징인 천국 ‘기업’(땅)의 ‘약속’(약정서)의 ‘보증’(선수금)과 ‘인침’(인감 찍음)으로써 성령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고 에베소서 1장 13-14절과 고린도후서 1장 21-22절에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인침’은 구원의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사야서 43장 1절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한 것처럼, ‘인침’은 하나님의 것,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계시록 7장 4절에 유대인 열두지파에서 인 맞은 자가 십사만 사천 명으로 나온다. 각 지파마다 일만 이 천 명씩 선별되었다. 이 숫자를 문자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상징적인 숫자로 볼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역사적으로 약간의 변동이 있어왔다. 요셉 지파는 므낫세 지파(민 13:11)로 불렸고, 레위 지파를 빼고 요셉의 두 번째 아들인 에브라임을 넣어 지파족장으로 삼기도 하였다. 계시록 7장에서는 레위와 요셉이 들어간 대신에 단과 에브라임이 빠졌다. 단 지파의 경우, 확실히 무슨 문제가 있었던 같다. 다른 지파들은 후손들이 생존해 있는 반면, 단 지파만큼은 지금도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단 지파가 단군의 조상일 것이란 억측도 있지만, 우스개로 하는 말이지 사실성은 희박하다.
‘십사만 사천’은 뒤에 나오는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동일 집단일 수도 있고, 다른 집단일 수도 있다. 만일 다른 집단이라면, ‘십사만 사천’은 열두 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뽑힌 유대인 집단일 것이고, ‘십사만 사천’이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같은 집단이라면, ‘십사만 사천’이 문자적인 숫자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숫자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144,000는 144x1000에서 나온 숫자인데, 계시록 21장 17절을 근거로 볼 때, 144는 새 예루살렘 성벽의 두께이고, 1,000은 ‘영원’을 뜻한다. 또 144는 12x12에서 만들어진 숫자이다.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를 의미할 수 있다. 또 12는 3(하나님)x4(세상/땅)에서 나온 숫자일 수 있다. 3은 성 삼위 하나님을, 4는 세상과 땅을 의미한다.
중요하고 명백한 것은 이스라엘에서 구원 받을 사람이 각 지파에서 공평하게 문자적인 12,000명씩 144,000명만 선택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숫자는 지나치게 운명적이고 획일적이며, 인간의 책임과 응답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신구약성서 메시지에 어긋난다. 그렇기 때문에 ‘십사만 사천’을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동일한 숫자로 볼 수밖에 없고, ‘십사만 사천’이란 숫자를 문자적인 숫자가 아닌 상징적인 숫자로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십사만 사천’은 9절에 언급된,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와 동일한 숫자이고,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흰 옷을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것입니다."(10절)고 외치며, 승리의 노래,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다(계15:2-3).
이들 ‘십사만 사천’은 14절의 말씀처럼, 큰 환란을 당하였지만, 춘향이처럼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킨 사람들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말이 어린 양의 피로 자기 옷을 희게 빨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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