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적그리스도)의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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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적그리스도)의 권세◀
계시록 13장 2절의 ‘짐승의 모양이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다’에서 표범은 헬라, 곰은 메데 파사, 사자는 바벨론을 상징한다. 그런데 사단인 용은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적그리스도에게 주고 있고,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권세를 위임받고 있다. 성서적으로 인간조직의 권위와 권력은 하나님의 위임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의 권위와 권세도 하나님의 위임에 의한 것이라 해야 옳겠지만, 계시록에서는 그의 권세를 하나님의 위임에 의한 것이라 말하지 않고, 사단이 위임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대항하는 권위와 권세는 사단의 위임에 의한 권세이지, 하나님의 위임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해 진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정의를 위해서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세상권세에 복종하라는 바울과 베드로의 정치 윤리적 권면은 이 점에 있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시록은 오히려 인내와 믿음으로써 성도들이 끝까지 거짓 진리에 대항하여 맞설 것을 권면하고 있다.
3-4절,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겠느냐? 하더라.”에서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다가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것’은 어린양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모방과 표절이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적그리스도를 따른다.’라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무지몽매함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 됨을 의미한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인 적그리스도는 미가엘 천사장의 적수로 묘사되었다. 이 짐승은 두 가지를 표절하고 있다. 이 짐승이 “죽게 되었던 상처”로부터 나은 자로 기술되었고,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겠느냐?”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죽게 되었던 상처”로부터 나았다는 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 그리스도의 모방과 표절이다. 설사 짐승에게 그 같은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사람을 살리고 복주는 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을 괴롭게 하고 죽이는 것이다. 따라서 그를 따르는 자들은 모두 불행하게 되고, 재앙과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겠느냐?”라는 것은 대천사 미가엘의 뜻인 “누가 하나님과 같겠는가?”와 “누가 그와 겨루어 싸우겠는가?”를 모방하고 표절한 것이다. 이들 모방과 표절은 모두 다 사람들을 속여서 지옥에 끌고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적그리스도는 자기가 마치 추종자들에게 빛과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처럼 꾸미고 있고, 큰 권능을 소유한 것처럼 속이고 있기 때문에 그의 기만술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계시록의 메시지이다. 용과 짐승은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생을 줄 수 없고, 그것을 줄 수 있는 분들은 오직 ‘보좌에 앉으신 이’와 그의 곁에 계신 속죄양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편에 설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구원의 해변에 서서 승리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 모세의 노래, 구원의 노래를 목 놓아 부르라는 것이 계시록의 메시지이다.
계시록 13장 2절의 ‘짐승의 모양이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다’에서 표범은 헬라, 곰은 메데 파사, 사자는 바벨론을 상징한다. 그런데 사단인 용은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적그리스도에게 주고 있고,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권세를 위임받고 있다. 성서적으로 인간조직의 권위와 권력은 하나님의 위임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의 권위와 권세도 하나님의 위임에 의한 것이라 해야 옳겠지만, 계시록에서는 그의 권세를 하나님의 위임에 의한 것이라 말하지 않고, 사단이 위임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대항하는 권위와 권세는 사단의 위임에 의한 권세이지, 하나님의 위임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해 진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정의를 위해서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세상권세에 복종하라는 바울과 베드로의 정치 윤리적 권면은 이 점에 있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시록은 오히려 인내와 믿음으로써 성도들이 끝까지 거짓 진리에 대항하여 맞설 것을 권면하고 있다.
3-4절,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겠느냐? 하더라.”에서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다가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것’은 어린양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모방과 표절이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적그리스도를 따른다.’라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무지몽매함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 됨을 의미한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인 적그리스도는 미가엘 천사장의 적수로 묘사되었다. 이 짐승은 두 가지를 표절하고 있다. 이 짐승이 “죽게 되었던 상처”로부터 나은 자로 기술되었고,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겠느냐?”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죽게 되었던 상처”로부터 나았다는 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 그리스도의 모방과 표절이다. 설사 짐승에게 그 같은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사람을 살리고 복주는 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을 괴롭게 하고 죽이는 것이다. 따라서 그를 따르는 자들은 모두 불행하게 되고, 재앙과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겠느냐?”라는 것은 대천사 미가엘의 뜻인 “누가 하나님과 같겠는가?”와 “누가 그와 겨루어 싸우겠는가?”를 모방하고 표절한 것이다. 이들 모방과 표절은 모두 다 사람들을 속여서 지옥에 끌고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적그리스도는 자기가 마치 추종자들에게 빛과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처럼 꾸미고 있고, 큰 권능을 소유한 것처럼 속이고 있기 때문에 그의 기만술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계시록의 메시지이다. 용과 짐승은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생을 줄 수 없고, 그것을 줄 수 있는 분들은 오직 ‘보좌에 앉으신 이’와 그의 곁에 계신 속죄양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편에 설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구원의 해변에 서서 승리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 모세의 노래, 구원의 노래를 목 놓아 부르라는 것이 계시록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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