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표,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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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표, 888◀
예수님은 기독교 초기부터 숫자 8로 인식되었다. 예수님의 헬라어 이름 ‘이에수스’(Jesus)를 숫자로 환산하면, 888이 된다. 8은 메시아 곧 구세주를 상징한다. 메시아의 예표인 다윗 왕이 8번째 아들이었고, 방주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8명이었으며, 유대인 남성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거룩한 공동체에 일원이 되었다. 외경 ‘시빌린 신탁’은 예수님을 8로 표기하였고, 150년경의 순교자 저스틴은 ‘주일’을 '제8일째 날'로 불렀으며, 중세교회는 침례탕을 팔각형으로 만들었다.
숫자 8은 기독교의 복음(7+1)의 성격을 설명하는 숫자이다. 숫자 8은 완전수 7보다 하나가 많다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숫자 8은 넉넉한 구원, 넘치는 복을 뜻하며, 살림과 구원, 즉 삶에 플러스를 주는 복음을 뜻한다.
구약성경 미가서 5장 5절에 "그는 그들의 평화가 될 것이다. 앗시리아 사람이 우리 땅을 침략하여 우리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올 때에, 우리는 일곱 목자, 여덟 장군들을 보내서, 침략군들과 싸우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에 쓰인 '일곱 목자'와 '여덟 장군' 즉 숫자 7과 8은 완전한 승리를 상징한다. 특히 숫자 8은 '넉넉히 이긴다. 혹은 이기고도 남는다.' 즉 '플러스 1'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 마태복음 5장에는 그 유명한 8복에 대한 말씀이 있고, 13장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과 성격을 설명하는 8개의 비유가 나오며, 22-25장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에 관련된 8개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다. 특히 마태복음 13장의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과 성격을 설명하는 비유들에서는 좋은 땅에 뿌려진 씨가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결실을 맺는 '씨앗 비유', 맨드라미 씨와 같이 아주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다는 '겨자씨 비유',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누룩에 관한 비유' 등이 소개되고 있다. 이들 성경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예수님을 숫자 8로 표기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부족을 채우시며, 우리를 풍성하고 넉넉하게 복 주실 '플러스 1'의 존재이시다. 또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되 후하게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하실 수 있는 '플러스 1'의 하나님이시다. 비록 우리 인간이 부족한 '마이너스 1'의 존재일지라도 예수님은 우리가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결실을 맺는데 필요한 '플러스 1'의 요인으로 작용하실 수 있다. 비록 우리가 겨자씨와 같이 아주 작은 존재일지라도 예수님은 우리가 큰 나무로 자라는데 필요한 '플러스 1'의 요인으로 작용하실 수 있다. 비록 우리가 밀가루 반죽에 불과할지라도 예수님은 우리가 여러 종류의 맛좋은 빵으로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누룩이 되실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십자가의 표시가 플러스 기호인 점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 같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하기'가 되신다. 기독교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더하기'가 된다.
666은 모든 거짓, 모든 실수, 모든 잘못, 모든 부족, 모든 악행의 상징이다.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고, 오히려 인간을 음부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모든 불행의 상징이다. 그의 운명은 패배요, 불과 유황과 연기로 타는 불 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해야할 분은 완전하신 777의 하나님과 넉넉하신 888의 그리스도뿐이시다.
예수님은 기독교 초기부터 숫자 8로 인식되었다. 예수님의 헬라어 이름 ‘이에수스’(Jesus)를 숫자로 환산하면, 888이 된다. 8은 메시아 곧 구세주를 상징한다. 메시아의 예표인 다윗 왕이 8번째 아들이었고, 방주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8명이었으며, 유대인 남성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거룩한 공동체에 일원이 되었다. 외경 ‘시빌린 신탁’은 예수님을 8로 표기하였고, 150년경의 순교자 저스틴은 ‘주일’을 '제8일째 날'로 불렀으며, 중세교회는 침례탕을 팔각형으로 만들었다.
숫자 8은 기독교의 복음(7+1)의 성격을 설명하는 숫자이다. 숫자 8은 완전수 7보다 하나가 많다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숫자 8은 넉넉한 구원, 넘치는 복을 뜻하며, 살림과 구원, 즉 삶에 플러스를 주는 복음을 뜻한다.
구약성경 미가서 5장 5절에 "그는 그들의 평화가 될 것이다. 앗시리아 사람이 우리 땅을 침략하여 우리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올 때에, 우리는 일곱 목자, 여덟 장군들을 보내서, 침략군들과 싸우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에 쓰인 '일곱 목자'와 '여덟 장군' 즉 숫자 7과 8은 완전한 승리를 상징한다. 특히 숫자 8은 '넉넉히 이긴다. 혹은 이기고도 남는다.' 즉 '플러스 1'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 마태복음 5장에는 그 유명한 8복에 대한 말씀이 있고, 13장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과 성격을 설명하는 8개의 비유가 나오며, 22-25장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에 관련된 8개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다. 특히 마태복음 13장의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과 성격을 설명하는 비유들에서는 좋은 땅에 뿌려진 씨가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결실을 맺는 '씨앗 비유', 맨드라미 씨와 같이 아주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다는 '겨자씨 비유',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누룩에 관한 비유' 등이 소개되고 있다. 이들 성경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예수님을 숫자 8로 표기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부족을 채우시며, 우리를 풍성하고 넉넉하게 복 주실 '플러스 1'의 존재이시다. 또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되 후하게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하실 수 있는 '플러스 1'의 하나님이시다. 비록 우리 인간이 부족한 '마이너스 1'의 존재일지라도 예수님은 우리가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결실을 맺는데 필요한 '플러스 1'의 요인으로 작용하실 수 있다. 비록 우리가 겨자씨와 같이 아주 작은 존재일지라도 예수님은 우리가 큰 나무로 자라는데 필요한 '플러스 1'의 요인으로 작용하실 수 있다. 비록 우리가 밀가루 반죽에 불과할지라도 예수님은 우리가 여러 종류의 맛좋은 빵으로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누룩이 되실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십자가의 표시가 플러스 기호인 점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 같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하기'가 되신다. 기독교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더하기'가 된다.
666은 모든 거짓, 모든 실수, 모든 잘못, 모든 부족, 모든 악행의 상징이다.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고, 오히려 인간을 음부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모든 불행의 상징이다. 그의 운명은 패배요, 불과 유황과 연기로 타는 불 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해야할 분은 완전하신 777의 하나님과 넉넉하신 888의 그리스도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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