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초기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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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초기 역사관◀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를 기록했던 사가들은 한 개인의 길흉화복뿐 아니라, 한 국가의 길흉화복의 원인이 죄와 회개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인간사의 길흉화복이 어떤 정해진 운명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는 죄로 인해서 화가 닥치고, 회개로 인해서 하나님의 자비로운 돌보심을 입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때에는 그분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앞세워 육지로 홍해와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고, 화살 하나 쏘지 않고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었으나 죄를 범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앞세워 적군에 맞설지라도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했다. 죄를 범한 후에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리 큰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외면을 당하게 되지만 아무리 큰 죄를 범한 사람일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관이다.
사무엘상을 보면, 이스라엘이 범죄 후 회개 없이 ‘에벤에셀’에서 블레셋과 전투를 펼쳤을 때 1차 싸움에서 4천 명 가량이 죽었고, 2차 싸움에서 3만 명의 보병이 죽었다. 그러나 20년 후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동일한 전투에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대승을 거두게 된다. 승리의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간 섬기던 우상들을 모두 제거한 후에 ‘에벤에셀’에서 멀지 아니한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블레셋 군이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스라엘을 급습했지만, 하나님이 회개한 이스라엘 편이셨기 때문에 블레셋 군이 대패를 당한 후에 추격을 받아 ‘벧갈’이란 곳까지 물러가게 되었다. 이곳에 사무엘이 돌을 세우고, 그곳 지명을 ‘에벤에셀이라 불렀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란 뜻이지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신앙을 담은 고백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가들은 자기 민족의 길흉화복을 신앙의 관점에서 성찰하였는데, 이 역사관이 소수에 불과한 이스라엘 민족을 수천 년의 시련의 용광로 속에서 순금으로 제련 되게 한 힘이다. 오늘 우리 자신들이 겪는 불행을 우연이나 남의 탓만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의 문제에서 찾는 지혜를 발견하기 바란다.
사무엘상 1-7장까지의 사건들은 대략 3천 년 전에 일어난 것들이다. 당대에는 민족과 민족이 싸울 때 자기 민족의 신의 명예를 걸고 싸웠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명예를 걸고 싸웠고, 블레셋은 ‘다곤’의 이름을 걸고 싸웠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중동에서는 신들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고, 아랍인들은 ‘알라’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다. 전쟁에 지는 것은 패배자의 신(神)이 진 것이나 다름없다. 3천 년 전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두 차례나 연이어 패한 후에 급기야 야훼의 상징인 법궤까지 빼앗긴 것은 야훼 신이 다곤 신에게 패하여 무릎을 굻게 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절망감은 더없이 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가는 이스라엘의 패배가 결코 그들의 야훼가 능력이 약하거나 지략이 부족한 때문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죄악 때문이라고 확신하였다. 그 점을 두 가지 사건들에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신전에 세워진 다곤 신상이 야훼의 법궤 앞에서 두 번이나 꺼꾸러져 산산 조각이 난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에 머문 7개월 동안 법궤를 둔 도시들에 예외 없이 죽음의 재앙이 덮쳤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독한 종양이 돋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를 기록했던 사가들은 한 개인의 길흉화복뿐 아니라, 한 국가의 길흉화복의 원인이 죄와 회개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인간사의 길흉화복이 어떤 정해진 운명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는 죄로 인해서 화가 닥치고, 회개로 인해서 하나님의 자비로운 돌보심을 입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때에는 그분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앞세워 육지로 홍해와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고, 화살 하나 쏘지 않고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었으나 죄를 범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앞세워 적군에 맞설지라도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했다. 죄를 범한 후에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리 큰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외면을 당하게 되지만 아무리 큰 죄를 범한 사람일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관이다.
사무엘상을 보면, 이스라엘이 범죄 후 회개 없이 ‘에벤에셀’에서 블레셋과 전투를 펼쳤을 때 1차 싸움에서 4천 명 가량이 죽었고, 2차 싸움에서 3만 명의 보병이 죽었다. 그러나 20년 후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동일한 전투에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대승을 거두게 된다. 승리의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간 섬기던 우상들을 모두 제거한 후에 ‘에벤에셀’에서 멀지 아니한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블레셋 군이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스라엘을 급습했지만, 하나님이 회개한 이스라엘 편이셨기 때문에 블레셋 군이 대패를 당한 후에 추격을 받아 ‘벧갈’이란 곳까지 물러가게 되었다. 이곳에 사무엘이 돌을 세우고, 그곳 지명을 ‘에벤에셀이라 불렀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란 뜻이지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신앙을 담은 고백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가들은 자기 민족의 길흉화복을 신앙의 관점에서 성찰하였는데, 이 역사관이 소수에 불과한 이스라엘 민족을 수천 년의 시련의 용광로 속에서 순금으로 제련 되게 한 힘이다. 오늘 우리 자신들이 겪는 불행을 우연이나 남의 탓만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의 문제에서 찾는 지혜를 발견하기 바란다.
사무엘상 1-7장까지의 사건들은 대략 3천 년 전에 일어난 것들이다. 당대에는 민족과 민족이 싸울 때 자기 민족의 신의 명예를 걸고 싸웠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명예를 걸고 싸웠고, 블레셋은 ‘다곤’의 이름을 걸고 싸웠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중동에서는 신들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고, 아랍인들은 ‘알라’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다. 전쟁에 지는 것은 패배자의 신(神)이 진 것이나 다름없다. 3천 년 전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두 차례나 연이어 패한 후에 급기야 야훼의 상징인 법궤까지 빼앗긴 것은 야훼 신이 다곤 신에게 패하여 무릎을 굻게 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절망감은 더없이 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가는 이스라엘의 패배가 결코 그들의 야훼가 능력이 약하거나 지략이 부족한 때문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죄악 때문이라고 확신하였다. 그 점을 두 가지 사건들에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신전에 세워진 다곤 신상이 야훼의 법궤 앞에서 두 번이나 꺼꾸러져 산산 조각이 난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에 머문 7개월 동안 법궤를 둔 도시들에 예외 없이 죽음의 재앙이 덮쳤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독한 종양이 돋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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