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 혹은 성패 배후에 계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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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 혹은 성패 배후에 계신 하나님◀
지금 중동의 화약고인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3천 년 전에 벌어졌던 똑 같은 전쟁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가자지구는 3천 년 전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던 지역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혔고 그들과 이스라엘의 전쟁도 끝이 없었다. 그러니까 오늘의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은 이미 3천 년 전부터 시작된 끝없는 전쟁의 연속인 셈이다(삼상 1-7장).
3천 년 전의 전투나 오늘의 매스컴에 보도되는 전시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때에는 가자지구의 블레셋이 이스라엘보다 강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의 전력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들의 전력보다 월등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사무엘상 1-7장의 기록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북서쪽으로 사방 40킬로미터, 즉 100리쯤 거리이내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00리쯤에 법궤를 놓는 하나님의 집이 있었던 ‘실로’가 있었고, 실로에서 지중해 방향인 서쪽으로 100리쯤에 블레셋 군과 전투를 펼쳐서 대패했던 ‘에벤에셀’이 있었으며, 에벤에셀에서 남쪽으로 100리, 곧 예루살렘에서 지중해 방향 서쪽으로 100리쯤에 ‘벧세메스’가 있었다. 이 지역이 바로 분쟁이 끊이지 않는 가자지구 접경지역이다. 3천 년도 훨씬 전에 시작된 분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궤를 놓는 하나님의 집이 있었던 실로는 ‘보낸다’는 뜻을 갖고 있다. 불리한 전세를 바꿔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전쟁터에 법궤를 보냈지만, ‘도움의 돌’을 뜻하는 에벤에셀에서 1-2차에 걸려 무려 3만4천명이 죽는 대패를 당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상징이었던 법궤도 도움의 상징인 에벤에셀에서 빼앗겼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뜻하는 에벤에셀에서조차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는 치욕을 맛봐야했다. 하나님의 법궤의 뚜껑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을 빼앗긴 거나 다름없는 치욕이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엘리 제사장이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원인은 회개치 아니한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었다. 그러나 7개월여 만에 하나님의 법궤는 스스로 ‘태양의 집’이란 뜻을 가진 ‘벧세메스’로 돌아왔다. 이곳은 이스라엘 진영으로써 본래 태양신 숭배가 성행했던 곳이지만, 인류의 진정한 태양은 하나님뿐이시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법궤가 벧세메스로 돌아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로써 이스라엘인들이나 불레셋인들 모두가 야훼 신의 살아계심과 활동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오늘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활동하고 계심을 보는 것이다. 이런 예민함을 일컬어 영성이라고 부른다. 금년은 우리 모두에게 영성이 풍부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사람이 겪는 모든 불행이 모두 다 당사자의 죄 때문에 빚어진 것은 아니란 점이다. 사람이 겪는 고난의 원인에는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의인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갖고 계신 선한 계획 때문이며, 하나님만이 아시는 이유 때문이다. 승패 혹은 성패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지금 중동의 화약고인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3천 년 전에 벌어졌던 똑 같은 전쟁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가자지구는 3천 년 전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던 지역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혔고 그들과 이스라엘의 전쟁도 끝이 없었다. 그러니까 오늘의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은 이미 3천 년 전부터 시작된 끝없는 전쟁의 연속인 셈이다(삼상 1-7장).
3천 년 전의 전투나 오늘의 매스컴에 보도되는 전시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때에는 가자지구의 블레셋이 이스라엘보다 강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의 전력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들의 전력보다 월등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사무엘상 1-7장의 기록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북서쪽으로 사방 40킬로미터, 즉 100리쯤 거리이내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00리쯤에 법궤를 놓는 하나님의 집이 있었던 ‘실로’가 있었고, 실로에서 지중해 방향인 서쪽으로 100리쯤에 블레셋 군과 전투를 펼쳐서 대패했던 ‘에벤에셀’이 있었으며, 에벤에셀에서 남쪽으로 100리, 곧 예루살렘에서 지중해 방향 서쪽으로 100리쯤에 ‘벧세메스’가 있었다. 이 지역이 바로 분쟁이 끊이지 않는 가자지구 접경지역이다. 3천 년도 훨씬 전에 시작된 분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궤를 놓는 하나님의 집이 있었던 실로는 ‘보낸다’는 뜻을 갖고 있다. 불리한 전세를 바꿔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전쟁터에 법궤를 보냈지만, ‘도움의 돌’을 뜻하는 에벤에셀에서 1-2차에 걸려 무려 3만4천명이 죽는 대패를 당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상징이었던 법궤도 도움의 상징인 에벤에셀에서 빼앗겼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뜻하는 에벤에셀에서조차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는 치욕을 맛봐야했다. 하나님의 법궤의 뚜껑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을 빼앗긴 거나 다름없는 치욕이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엘리 제사장이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원인은 회개치 아니한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었다. 그러나 7개월여 만에 하나님의 법궤는 스스로 ‘태양의 집’이란 뜻을 가진 ‘벧세메스’로 돌아왔다. 이곳은 이스라엘 진영으로써 본래 태양신 숭배가 성행했던 곳이지만, 인류의 진정한 태양은 하나님뿐이시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법궤가 벧세메스로 돌아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로써 이스라엘인들이나 불레셋인들 모두가 야훼 신의 살아계심과 활동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오늘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활동하고 계심을 보는 것이다. 이런 예민함을 일컬어 영성이라고 부른다. 금년은 우리 모두에게 영성이 풍부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사람이 겪는 모든 불행이 모두 다 당사자의 죄 때문에 빚어진 것은 아니란 점이다. 사람이 겪는 고난의 원인에는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의인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갖고 계신 선한 계획 때문이며, 하나님만이 아시는 이유 때문이다. 승패 혹은 성패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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