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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궤를 운반한 암소들이 받은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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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281 2009.01.0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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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궤를 운반한 암소들이 받은 복◀
금년은 기축년 소의 해이다. 법궤를 운반한 암소들한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는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는 어미 소들이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멍에를 매어보지 않았던, 그러니까 일을 해본 경험이 없는 소들이었다는 점이며, 셋째는 그들이 끌었던 수레가 새로 제작된 것이었다는 점이고, 넷째는 이끌어주는 사람 없이 가야할 목적지를 향해 갔고, 정확하게 목적지에서 멈췄다는 점이다.
이 암소들에는 블레셋인들이 기대했던 자연스런 행동들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강제로 떨어져 어미 소를 찾는 새끼들 때문에 제 새끼들이 있는 집으로 가게 된다는 점이다. 미물에 지나지 않은 소라도 자신의 분신인 새끼와 생이별을 한다는 것은 아픔일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암소들은 찢어지는 아픔을 참아내며 울면서 그들이 가야할 길을 걸었다. 그들을 강제로 끄는 사람이 없는데도 새끼들을 찾아 집으로 향하지 않고, 태양의 집 벧세메스를 향해서 앞으로 나갔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블레셋인들이 새끼가진 암소 두 마리로 수레를 끌게 한 것은 어미를 찾는 송아지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하다못해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만이라도 발걸음을 옮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고서는 배고파 우는 새끼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암소들이 강제로 끄는 사람도 없는데 제 발로 벧세메스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암소가 울면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태양의 집 벧세메스로 올라간 것은 야훼가 참 신(神)이신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둘째는 이 두 암소들은 멍에를 매어본 일이 없고 일을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수레를 끌고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암소들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 인도되었던 것이다. 미숙하고 재능 없고 서툴기만 한 미물조차도 하나님의 능력에 이끌림을 받았을 때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었고, 수많은 인명을 살리는 큰일을 해낼 수 있었다.
셋째는 일 해본 경험이 전무(全無)한 이 암소들이 끈 수레는 길이 전혀 나지 아니한 새 것이었기 때문에 초자들이 끌기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암소들은 맡겨진 일을 잘 감당했다. 초자라도 하나님의 능력에 이끌림을 받는다면, 능히 맡겨진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문제는 항상 제 능력 제 수완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서 발생된다.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과 육체의 힘만으로 하는 일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과 자기 능력만을 의지하는 일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금년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아보자.
미물에 불과한 암소들이 두 민족의 인명을 건지는 큰일을 해냈다. 암소들이 깨닫지는 못했겠지만, 새끼와 떨어지는 아픔이 컸던 만큼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끄는 영광도 컸다. 소의 일생은 기껏해야 사람을 위해 일하다가 사람에게 잡아먹히는 것에 불과하다. 같은 값이면 하나님께 드려진 일생이 사람을 위해 수고하다가 사람에게 먹힌 것보다 훨씬 값진 생이 아니었을까? 이런 맥락에서 법궤를 나른 암소들은 귀하고 값진 영광을 누렸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3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칭송을 듣고 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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