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와 타성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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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와 타성의 위험◀
홍익출판사에서 출판한 올리비아 끌렉의 계란, 병아리, 그리고 오믈렛을 읽어보면,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평안함에 안주하려는 생활태도와 타성과 관성에 길들여져 기계처럼 움직이는 삶이라고 적고 있다.
차가운 물이 가득 담긴 냄비 안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개구리는 물이 서서히 가열되면 미지근한 물에 편안함을 느끼면서 아주 태평스럽게 헤엄을 치며 평화로움을 만끽한다. 수온이 점차 올라가면, 열기 때문에 피곤을 느낀 개구리의 몸놀림은 둔해진다. 물이 뜨거워지면, 개구리는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도 개구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알맞은 수온이 될 때를 기다리며 버틴다. 개구리는 그렇게 수온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다가 결국 죽고 만다. 수온이 급격한 변화 없이 아주 서서히 상승했기 때문에 개구리는 냄비 밖으로 뛰쳐나가야 산다는 어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어떤 시도도,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결국 죽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미세하게 서서히 나빠지면, 우리는 이 상황의 심각성을 잘 감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황변화에 아무런 대응도 저항도 노력도 하지 않게 되고, 방치하거나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자기 몸이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방치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는 거나 다름없다.
긍정의 변화든 부정의 변화든, 신체의 변화든 정신의 변화든, 대신 또는 대인관계의 변화든, 가정과 교회와 직장의 변화든,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든, 어떤 상황의 변화든, 아무튼 변화에 대해서 우리는 예민함을 가져야 한다. 무신경증과 안일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몸이 병들고, 인간관계가 깨지고, 가정이 붕괴되고, 교회와 직장이 문을 닫게 되고,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읽어내고 상황을 파악해 내고 시대흐름을 꿰뚫어 보는 예민함과 상황개선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변화를 추구하는 몸부림과 성서에 바탕을 둔 평가기준과 이루고자하는 목표의식과 그것에 도달하고자하는 노력이다.
밀랍이 두껍고 매끈하게 입혀진 그릇에 뜨거운 물을 조금씩 떨어뜨리면, 물은 표면을 녹이면서 마치 눈 위를 지나간 스키어의 흔적처럼 아주 미세한 자취를 남긴다. 최초의 뜨거운 물은 밀랍의 표면 위 어디라도 흐를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뜨거운 물을 떨어뜨리면, 물은 앞서 생긴 흔적을 따라 흐르게 된다. 그리고 그 세 번째부터는 더 깊게 파인 앞서의 흔적이 물의 흐름을 완전히 조종하기에 이른다. 뜨거운 물을 떨어뜨리면 떨어뜨릴수록 홈은 더욱 깊어져 결국 물은 이미 파인 골을 따라 흐르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길로도 흐르지 않게 된다.
이것은 타성과 관성에 서서히 길들여져 기계처럼 움직이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수많은 일들이 깊은 통찰이나 지식에 바탕을 둔 의식적인 결과가 아니라 단순한 습관과 타성의 결과란 사실을 밝혀주는 것이다. 우리가 습관처럼 해온 일들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기 때문에 밀랍에 새겨진 흔적의 원리가 계속 작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일들을 관성에 끌리듯 하게 만드는 것이다. 버려두면 망가지는 것이 자연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이다. 잘못에 길들여진 기계적 타성과 관습과 관행은 우리가 변화하는 것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다.
홍익출판사에서 출판한 올리비아 끌렉의 계란, 병아리, 그리고 오믈렛을 읽어보면,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평안함에 안주하려는 생활태도와 타성과 관성에 길들여져 기계처럼 움직이는 삶이라고 적고 있다.
차가운 물이 가득 담긴 냄비 안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개구리는 물이 서서히 가열되면 미지근한 물에 편안함을 느끼면서 아주 태평스럽게 헤엄을 치며 평화로움을 만끽한다. 수온이 점차 올라가면, 열기 때문에 피곤을 느낀 개구리의 몸놀림은 둔해진다. 물이 뜨거워지면, 개구리는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도 개구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알맞은 수온이 될 때를 기다리며 버틴다. 개구리는 그렇게 수온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다가 결국 죽고 만다. 수온이 급격한 변화 없이 아주 서서히 상승했기 때문에 개구리는 냄비 밖으로 뛰쳐나가야 산다는 어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어떤 시도도,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결국 죽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미세하게 서서히 나빠지면, 우리는 이 상황의 심각성을 잘 감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황변화에 아무런 대응도 저항도 노력도 하지 않게 되고, 방치하거나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자기 몸이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방치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는 거나 다름없다.
긍정의 변화든 부정의 변화든, 신체의 변화든 정신의 변화든, 대신 또는 대인관계의 변화든, 가정과 교회와 직장의 변화든,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든, 어떤 상황의 변화든, 아무튼 변화에 대해서 우리는 예민함을 가져야 한다. 무신경증과 안일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몸이 병들고, 인간관계가 깨지고, 가정이 붕괴되고, 교회와 직장이 문을 닫게 되고,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읽어내고 상황을 파악해 내고 시대흐름을 꿰뚫어 보는 예민함과 상황개선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변화를 추구하는 몸부림과 성서에 바탕을 둔 평가기준과 이루고자하는 목표의식과 그것에 도달하고자하는 노력이다.
밀랍이 두껍고 매끈하게 입혀진 그릇에 뜨거운 물을 조금씩 떨어뜨리면, 물은 표면을 녹이면서 마치 눈 위를 지나간 스키어의 흔적처럼 아주 미세한 자취를 남긴다. 최초의 뜨거운 물은 밀랍의 표면 위 어디라도 흐를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뜨거운 물을 떨어뜨리면, 물은 앞서 생긴 흔적을 따라 흐르게 된다. 그리고 그 세 번째부터는 더 깊게 파인 앞서의 흔적이 물의 흐름을 완전히 조종하기에 이른다. 뜨거운 물을 떨어뜨리면 떨어뜨릴수록 홈은 더욱 깊어져 결국 물은 이미 파인 골을 따라 흐르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길로도 흐르지 않게 된다.
이것은 타성과 관성에 서서히 길들여져 기계처럼 움직이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수많은 일들이 깊은 통찰이나 지식에 바탕을 둔 의식적인 결과가 아니라 단순한 습관과 타성의 결과란 사실을 밝혀주는 것이다. 우리가 습관처럼 해온 일들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기 때문에 밀랍에 새겨진 흔적의 원리가 계속 작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일들을 관성에 끌리듯 하게 만드는 것이다. 버려두면 망가지는 것이 자연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이다. 잘못에 길들여진 기계적 타성과 관습과 관행은 우리가 변화하는 것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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