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부 도쿠가와 이에미쯔의 기독교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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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 도쿠가와 이에미쯔의 기독교박해◀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본부 유물전시관에는 다 닳은 성모상이 새겨진 작은 성화판(聖畵板) 하나가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일본인 엔도 슈사쿠가 침묵을 쓰게 된 것도 1960년대 초 나가사키에서 그와 같은 성화판을 보고난 다음이었다.
1637년 일본 큐슈우 시마바라(島原)에서 농민들이 과중한 세금과 기독교금지에 반항하여, 16세의 소년 아마쿠사 시로오(天草四郞)를 대장으로 삼아 난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이때는 3대 막부인 도쿠가와 이에미쯔 시대였는데, 시마바라 난이 일어난 1637년부터 1644년까지 기독교를 그 뿌리까지 썩게 만들어 박멸시키려는 무서운 박해가 있었고, 이때에 기독교인들을 색출할 목적으로 성모상이나 예수 십자가상을 동판이나 목판에 새겨 사람들로 하여금 발로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색출된 기독교인들은 갯벌에 세운 말뚝에 묶어 놓아 서서히 죽게 하는 수형, 산채로 묶어서 거적에 말아 먼 바다에 버리는 수장, 뜨거운 온천수를 서서히 부어 고통을 가하는 열탕고문, 그리고 양쪽 귓바퀴에 구멍을 뚫어 피가 한 방울씩 흐르게 한 다음 묶은 채로 거적에 말아 좁은 구멍 속에 거꾸로 매다는 일명 ‘구멍 매달기’ 방법 등으로 공포감을 자아내는 전시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이 가운데서도 ‘구멍 매달기’는 가장 악명 높은 고문방법으로써 믿음이 좋은 신부들을 배교시킬 때 사용되었다.
일본인 관리들은 뛰어난 믿음을 소유한 신부들을 배교시키기 위해서 이미 몇 번씩이나 주님을 저주하고 성화를 밟고 배교한 농민들을 놓아주지 않고 그들을 묶은 채로 거적에 말아서 좁은 구멍에 거꾸로 매단다. 그렇게 두면 금방 죽기 때문에 양쪽 귓바퀴에 구멍을 뚫어 한 방울씩 피가 흐르게 한다. 그러면 입과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심하게 코고는 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고통 중에 죽어가게 된다. 그리고 신부에게 저 불쌍한 농민 신도들의 고통을 면해 주고 싶으면 어서 빨리 배교하라고 권한다. 저 불쌍한 농민 신도들이 죽느냐 사느냐는 신부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당신이 진정한 신부라면 저 신도들을 불쌍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고 말한다. “당신의 이기적인 신앙 때문에 저 불쌍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아느냐?”고 힐문한다. 이러한 힐문과 회유에 신앙의 열정과 헌신에 있어서 유달리 뛰어난 신부들조차 자기들 때문에 무고하게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출하려고 성화판을 밟고 지나간다. 이토록 극심한 상황에서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며, 고통의 순간에 숨어 계신가를 묻는 책이 침묵이다.
인간은 여러 가지 형태의 전쟁이나 박해의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그것이 비록 실제의 전투상황이나 박해상황은 아닐지라도 우리 인간들은 다양한 돌연변이 형태의 전투상황이나 박해상황에 내몰려 있고 그 현장에서 고투하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배교에 직면하게 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분의 존재를 의심하게도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의 수난과 순교자들의 삶을 회고해 보곤 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약함을 위로하고, 용기를 준다. 그것은 마치 시편의 저자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뼈를 찌르는 칼 같은 대적의 비방을 받고 좌절감에 빠졌다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11절)라고 굳게 다짐하는 것과 같다.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본부 유물전시관에는 다 닳은 성모상이 새겨진 작은 성화판(聖畵板) 하나가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일본인 엔도 슈사쿠가 침묵을 쓰게 된 것도 1960년대 초 나가사키에서 그와 같은 성화판을 보고난 다음이었다.
1637년 일본 큐슈우 시마바라(島原)에서 농민들이 과중한 세금과 기독교금지에 반항하여, 16세의 소년 아마쿠사 시로오(天草四郞)를 대장으로 삼아 난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이때는 3대 막부인 도쿠가와 이에미쯔 시대였는데, 시마바라 난이 일어난 1637년부터 1644년까지 기독교를 그 뿌리까지 썩게 만들어 박멸시키려는 무서운 박해가 있었고, 이때에 기독교인들을 색출할 목적으로 성모상이나 예수 십자가상을 동판이나 목판에 새겨 사람들로 하여금 발로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색출된 기독교인들은 갯벌에 세운 말뚝에 묶어 놓아 서서히 죽게 하는 수형, 산채로 묶어서 거적에 말아 먼 바다에 버리는 수장, 뜨거운 온천수를 서서히 부어 고통을 가하는 열탕고문, 그리고 양쪽 귓바퀴에 구멍을 뚫어 피가 한 방울씩 흐르게 한 다음 묶은 채로 거적에 말아 좁은 구멍 속에 거꾸로 매다는 일명 ‘구멍 매달기’ 방법 등으로 공포감을 자아내는 전시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이 가운데서도 ‘구멍 매달기’는 가장 악명 높은 고문방법으로써 믿음이 좋은 신부들을 배교시킬 때 사용되었다.
일본인 관리들은 뛰어난 믿음을 소유한 신부들을 배교시키기 위해서 이미 몇 번씩이나 주님을 저주하고 성화를 밟고 배교한 농민들을 놓아주지 않고 그들을 묶은 채로 거적에 말아서 좁은 구멍에 거꾸로 매단다. 그렇게 두면 금방 죽기 때문에 양쪽 귓바퀴에 구멍을 뚫어 한 방울씩 피가 흐르게 한다. 그러면 입과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심하게 코고는 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고통 중에 죽어가게 된다. 그리고 신부에게 저 불쌍한 농민 신도들의 고통을 면해 주고 싶으면 어서 빨리 배교하라고 권한다. 저 불쌍한 농민 신도들이 죽느냐 사느냐는 신부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당신이 진정한 신부라면 저 신도들을 불쌍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고 말한다. “당신의 이기적인 신앙 때문에 저 불쌍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아느냐?”고 힐문한다. 이러한 힐문과 회유에 신앙의 열정과 헌신에 있어서 유달리 뛰어난 신부들조차 자기들 때문에 무고하게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출하려고 성화판을 밟고 지나간다. 이토록 극심한 상황에서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며, 고통의 순간에 숨어 계신가를 묻는 책이 침묵이다.
인간은 여러 가지 형태의 전쟁이나 박해의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그것이 비록 실제의 전투상황이나 박해상황은 아닐지라도 우리 인간들은 다양한 돌연변이 형태의 전투상황이나 박해상황에 내몰려 있고 그 현장에서 고투하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배교에 직면하게 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분의 존재를 의심하게도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의 수난과 순교자들의 삶을 회고해 보곤 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약함을 위로하고, 용기를 준다. 그것은 마치 시편의 저자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뼈를 찌르는 칼 같은 대적의 비방을 받고 좌절감에 빠졌다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11절)라고 굳게 다짐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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