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자료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컨텐츠&자료공유 최근자료 KCCS Digital Archive

사랑의 하나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7,841 2009.03.27 07:47

본문

▶사랑의 하나님◀
침례 요한으로 대표되는 유대교 신(神)의 이미지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역시 노여움으로 벌을 주는 율법적인 이미지이다. 그것은 마치 메마른 사막에서 침례 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친 것처럼, 율법적이며, 준엄하고, 용서가 없는 엄부(嚴父)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신의 이미지는 어머니였다. 가난과 노동과 질병에 고통당하는 고단한 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사해 호수 언덕의 유대사막처럼 삭막함이 아니라, 갈릴리 호수 언덕의 푸름과 같은 것이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 언덕에서 삶에 지치고 상처 입은 민중에게 들려준 이 말씀은 인자한 어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와 같은 것이었다.
예수님이 사해 호수 언덕 유대사막에서 받은 세 가지 시험은 예수님께 바라는 유대인들의 세 가지 희망사항이었다.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은 유대인들이 메시아의 자격으로 내세운 첫 번째 조건이었다. 제2출애굽사건을 주도할 메시아는 모세가 제1출애굽사건에서 보여준 것처럼 민중에게 만나를 내려 먹게 할 수 있어야 했다. 예수님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한 것이나 바울이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한다고 말한 것이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말한 두 번째 시험은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헬라, 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6백여 년 동안 땅바닥에 실추된 유대민족의 명예를 회복시킬 메시아인가를 증명해 보이란 뜻이었다. 민중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왕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극히 높은 산에 데려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엎드려 경배하면, 이것들을 다 주겠다’고 말한 세 번째 시험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다윗왕국의 권세와 영광을 천하만국 위에 세울 수 있는 메시아의 능력을 말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유대인들이 꿈꿨던 다윗 왕가의 복원과 예루살렘 성전예배의 재건 그리고 유대교를 국교로 하는 세계통치를 실현하려는 세속적인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님은 알렉산더 대왕처럼 강력하고 권세 있는 세속적인 메시아가 되어 달라는 유대민중의 이 세 가지 유혹을 강하게 뿌리쳤다.
유대민중이 예수님께 크게 실망하고 환멸을 느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빌라도 앞에서 외친 것이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무력하고 쓸모없는 자로 여겨 팔아넘긴 것이 다 예수님께 걸었던 희망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기대했던 세속적이고 정치적이며 군사적인 메시아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들의 희망은 수많은 인명의 피를 흘린 후에야 겨우, 그것도 일시적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고, 궁극적이고 영원하며 영적인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빌라도 총독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 ‘네 말이 옳다. 하지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고 예수님이 대답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이 추구했던 것은 땅의 것, 유한한 것, 일시적인 것이었고, 예수님이 주고자 했던 것은 하늘의 것, 무한한 것, 영원한 것이었다. 예수님이 가르치려 했던 것은 노여움의 신이 아니라 사랑의 신(神)이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