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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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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123 2009.03.2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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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싸움◀
예수님이 고뇌하며 갈등했던 싸움은 세속적인 욕망과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에서 이겨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예수님의 노력은 끊임없는 기도로 나타났다. 예수님은 민중이 끈질기게 자기를 찾고 요구하는 것이 세속적인 욕망 때문이란 것을 아셨고, 그들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세속적인 욕망 때문에 표적을 구하는 민중에게 사랑의 신을 깨우쳐 주려했지만, 민중은 그의 곁을 떠났다.
복음서는 민중이 예수님한테서 사랑의 중요성을 배우려하기보다는 표적만을 구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슬픔에 빠지게 했다고 전한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고 하셨고,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며 “마음속에 깊이 탄식하시며”(막 8:12)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사랑의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현실에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사랑은 대개의 경우 현실에 무력하고 직접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시대에도 가슴을 찢는 불의와 절망에 깊은 상처를 입은 민중은 현실에 쓸모 있는 것만을 원했다. 사랑보다는 현실적인 것만을 원했다. 병든 자들은 병 낫기만을 바랐고, 굶주린 자들은 먹을 것만을 바랐고, 억압에 눌린 자들은 해방만을 바랐다. 민중이 바란 것은 표적뿐이었다. 예수님이 많은 표적을 행하였다는 복음서 기록의 이면을 잘 살펴보면, 슬픔과 질병과 굶주림의 고통 속에 있는 민중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진심으로 위로하고 돌보신 반면, 기적과 이사와 표적을 구하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이들과는 대립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현실에 필요한 표적만을 구하지만, 정작 그들이 겪는 가장 큰 불행은 표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을 베풀자가 없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밝힌 것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지 표적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을 행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을 베푸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당하셨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셨으며, 최후에는 그들의 대속(代贖)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김남조 시인은 신앙에세이집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진실은 오히려 상처투성이일 때가 많다...부서지고 피 흘리면서 다가오는 진실, 일그러지고 반은 불에 타 버렸을 수도 있는 진실, 어차피 사람은 이것을 맞아 주어야 한다. 상처 나고 피 흘리는 진실을 사랑해야 한다. 슬픔에 대한 사랑, 고난에 대한 사랑, 이를 거쳐 가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며 어떤 생산과 창조에도 결코 다다를 수가 없다.”고 했다. 예수님은 금가고 일그러진 민중을 사랑하셨고, 상한 살을 헤집고 입 맞추기를 원하셨으며, 그런 하나님을 민중의 친구로 소개하려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한테서 사랑의 하나님을 배우려 하지 않았고, 표적을 행하는 하나님만을 원했다. 따라서 민중은 사랑의 신을 말하는 예수님한테서 그들의 기대가 깨지고 환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났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반과 도피 속에서 백성들의 비웃음과 돌팔매를 맞으며 십자가의 길을 홀로써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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