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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한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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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105 2009.04.0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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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한 시각◀
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살인처럼 죄가 되는 악이 있고, 암처럼 죄가 되지 않는 악도 있다. 고통은 아픔이지 죄는 아니다. 죄는 결과가 항상 나쁘지만, 고통은 결과가 항상 나쁘지 않다. 예수님이 겪은 고통이 지난 2천년 동안 셀 수 없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주었듯이, 예수님이 겪은 고통의 결과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긍정의 효과를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고통들 가운데는 부정의 효과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 부분에서는 긍정의 효과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악과 고통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점은 고통이 주는 긍정의 효과에 초점을 맞추느냐, 고통이 주는 부정의 효과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있다. 불신자들은 평소에 하나님을 무시하다가 고통을 만나면 하나님을 찾는다. 그들은 평소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다가 고통에 직면하게 되면, 그 고통이 주는 부정의 효과만을 부각시키면서 서슴없이 신성을 모독한다. 불신자들의 문제점은 현실을 항상 부정적으로 보고 누리고 있는 복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데 있다. 그러나 신자들은 현실을 항상 긍정적으로 보고 누리고 있는 복에 대해서 감사한다. 사실 이 세상은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다. 좋은 것은 세어보지 않고, 왜 나쁜 것만 세어보는가? 장미꽃과 향기는 보지 않고, 왜 가시만 보는가? 장미의 가치는 꽃에 있지, 가시에 있지 않다. 죤 탈 머프리(Jon Tal Murphree)는 󰡔인생의 수수께끼와 해답󰡕(A Loving God & A Suffering World)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별들을 헤아려 보지도 않고 가시들을 세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전쟁보다도 평화가, 추함보다도 아름다움이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왜 우리는 미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사랑을 쳐다보기를 잊어버리며, 또한 슬픔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도 기쁨의 노래 소리에는 귀를 막아야 하는가? 세계에는 그림자가 있는 만큼 빛이 존재한다. 악덕이 있는 만큼 미덕이 존재한다. 우리들의 감각은 우리에게 고통보다도 기쁨을 더 느끼도록 기회를 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좋은 것을 위한 것이지 나쁜 것을 위한 것이 아니다. 눈은 보라고 있는 것이지, 맹인이 되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귀는 들으라고 있는 것이지, 귀머거리가 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람은 신선한 공기를 위해 있는 것이지, 태풍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햇빛은 동식물에 건강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일사병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보시기에 좋았듯이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지 나쁜 것이 아니다.
고통의 문제를 오해하는 시각은 신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공리주의, 실용주의, 실증주의의 시각 때문이다. 안락함은 선이고, 고난은 악이다. 부유함은 선이고, 가난함은 악이다. 건강함은 선이고 병듦은 악이다. 강함은 선이고, 약함은 악이다. 이런 잘못된 생각들이 고통 없는 삶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게 하고, 잘살고 성공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믿게 한다. 심지어 고통의 존재가 하나님의 무능함과 부재함을 증명한다고 말하게 한다.
그러나 고통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인간들의 반역을 치유하는 도구이다. 고통은 인간의 교만과 욕심을 치유한다. 고통은 속물인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을 바라보게 한다.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목마른 자,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핍박받는 자가 복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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