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적 부활체험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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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적 부활체험의 내용◀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 부활사건, 오순절 성령임재사건을 차례로 겪으면서 현재적 부활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 부활체험이 그들로 하여금 이전과는 180도 다른 사람들로 변모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부활체험이 역으로 스승의 고귀한 죽음을 본받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체험한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첫째,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능력과 지혜가 크다는 깨달음이었다.
기독교를 적대하는 반기독교연합에서는 제자들의 영웅적 순교가 오히려 하나님이 없거나 있다 해도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서 자신들의 세속욕망을 채워줄 수 없는 무능함과 무지함을 본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죽음을 개죽음이라고 말한다. 한때는 제자들도 이들과 크게 다른바가 없었다. 그런데 스승의 죽음과 부활사건과 오순절 성령임재사건을 차례로 겪으면서 구원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아파하셨고, 함께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하나님이 동일하게 그들과 함께 그들의 고통 중에 계시고 그들이 아파할 때 그들과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다. 깨닫기 전에는 이 사랑을 현실의 고통에 무력하고 무능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표적을 구하던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싫어하고, 지혜를 찾던 헬라인들이 어리석게 생각했던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능하고 무지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있고난 후에는 그것이 영적이든 정신적이든 혹은 육체적이든 죽었던 사람을 부활시키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둘째, 엔도 슈사쿠는 그의 예수의 생애와 예수 지하철을 타다에서 제자들의 변모의 원인을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 동반자의식에서 찾고 있다.
엔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남긴 그 유명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괴로움을 호소한 것이 아니라, 성구 또는 기도문을 외우신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일상사였다. 운명직전에 남기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시편 22편 1절과 31편 5절의 내용으로써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시편을 중얼중얼 암송하시면서 그 엄청난 고통을 견디셨던 것이다. 그 가운데 몇 소절이 목격자들의 귀에 들렸던 것이다.
십자가에서 보인 예수님의 태도는 제자들에게 충격적이었다. 예수님은 배신자들과 박해자들을 원망하지 않고, 용서와 사랑으로 일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목격자들의 귀에 들린 이 기도는 상상을 초월한 무한 사랑이었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조차 배신자요 비겁자인 제자들을 필사적으로 사랑하셨다. 엔도는 이 스승의 사랑이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예수님은 죽었지만, 늘 자기들 곁에 계시다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감정이 제자들에게 생겨났을 것이고, 생전에 들려주시던 말씀을 지금도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동반자의식이라고 말한다. 이 동반자의식은 오순절 성령임재이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신앙의 발전에 기여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 부활사건, 오순절 성령임재사건을 차례로 겪으면서 현재적 부활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 부활체험이 그들로 하여금 이전과는 180도 다른 사람들로 변모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부활체험이 역으로 스승의 고귀한 죽음을 본받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체험한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첫째,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능력과 지혜가 크다는 깨달음이었다.
기독교를 적대하는 반기독교연합에서는 제자들의 영웅적 순교가 오히려 하나님이 없거나 있다 해도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서 자신들의 세속욕망을 채워줄 수 없는 무능함과 무지함을 본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죽음을 개죽음이라고 말한다. 한때는 제자들도 이들과 크게 다른바가 없었다. 그런데 스승의 죽음과 부활사건과 오순절 성령임재사건을 차례로 겪으면서 구원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아파하셨고, 함께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하나님이 동일하게 그들과 함께 그들의 고통 중에 계시고 그들이 아파할 때 그들과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다. 깨닫기 전에는 이 사랑을 현실의 고통에 무력하고 무능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표적을 구하던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싫어하고, 지혜를 찾던 헬라인들이 어리석게 생각했던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능하고 무지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있고난 후에는 그것이 영적이든 정신적이든 혹은 육체적이든 죽었던 사람을 부활시키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둘째, 엔도 슈사쿠는 그의 예수의 생애와 예수 지하철을 타다에서 제자들의 변모의 원인을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 동반자의식에서 찾고 있다.
엔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남긴 그 유명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괴로움을 호소한 것이 아니라, 성구 또는 기도문을 외우신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 일상사였다. 운명직전에 남기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시편 22편 1절과 31편 5절의 내용으로써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시편을 중얼중얼 암송하시면서 그 엄청난 고통을 견디셨던 것이다. 그 가운데 몇 소절이 목격자들의 귀에 들렸던 것이다.
십자가에서 보인 예수님의 태도는 제자들에게 충격적이었다. 예수님은 배신자들과 박해자들을 원망하지 않고, 용서와 사랑으로 일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목격자들의 귀에 들린 이 기도는 상상을 초월한 무한 사랑이었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조차 배신자요 비겁자인 제자들을 필사적으로 사랑하셨다. 엔도는 이 스승의 사랑이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예수님은 죽었지만, 늘 자기들 곁에 계시다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감정이 제자들에게 생겨났을 것이고, 생전에 들려주시던 말씀을 지금도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동반자의식이라고 말한다. 이 동반자의식은 오순절 성령임재이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신앙의 발전에 기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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