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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부활과 봄날의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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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652 2009.04.1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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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부활과 봄날의 낙원◀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우리 인간이 꿈꾸고 상상하는 유토피아를 보다 확실한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게 한 역사적 사건이다. 죽음의 겨울을 끝내고 봄의 향연을 만끽하는 지구북반구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곤 했을 것이다. 인간들은 종종 영원한 봄을 꿈꿨다. 몇 가지 사례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기독교 이전의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낙원인 엘뤼시온의 들판(상젤리제)과 무한지옥인 타르타로스가 모두 다 음부(에레보스)인 지하세계에 있다고 믿었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서 혼령으로 가야하고, 비통과 시름과 타오르는 불과 망각의 강들을 건너야 한다. 음부의 봄은 지상과는 반대로 겨울처럼 삭막하고 냉랭하다. 음부를 지배하는 하데스가 부인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보내놓고 그녀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시름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지상에는 페르세포네의 부활로 대 자연이 봄기운을 한껏 받아 새싹을 내고 꽃을 피운다.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지상의 봄을 지하세계의 겨울로 이해했던 것 같다.
중국 사람들은 복사꽃이 활짝 핀 무릉도원의 봄을 가장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꿈꿨다. 물과 곡물이 풍부하고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이곳을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차단된 세계이다.
유럽 사람들은 황금시대를 지배한 농경의 신(神)인 사투르누스의 영원한 봄의 정원 아르카디아를 유토피아로 보았다. 아르카디아는 그리스 중부지방에 실존했던 초원지역이었으나 원래 힘겹고 고단한 삶을 운명처럼 알고 살아야했던 황량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 땅은 베르길리우스에 의해서 음악을 창조하는 목동들이 가득한 풍요의 땅이자 시와 노래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장소로 묘사된 이후, 오비디우스가 이렇게 노래했다. “군대의 도움이 없이도 사람들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유지한다. 비옥한 토지는 굳이 곡괭이질을 하지 않아도 풍부한 과일을 선사해준다. 사람들은 아무런 수고 없이도 만족할만한 수확물을 거두어들인다. 봄날은 영원하고 잔잔한 서풍이 종자 없이 태어난 꽃들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잠시 후면 대지는 쟁기질을 하지 않아도 풍성한 수확물들로 가득찰 것이며, 들판은 돌보지 않아도 고개 숙인 이삭으로 하얗게 덮일 것이다. 우유와 감로주가 강물처럼 흐르고 녹색 호랑가시나무에서 황금빛 꿀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이후 유럽의 화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통해서 아르카디아의 이상을 화폭에다 그려냈다.
영원한 봄을 꿈꾸는 인간들에게 그 꿈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 기독교가 제시하는 부활신앙이다. 기독교가 인생의 문제에 주는 해답은 부활이다. 인생의 문제란 죽음을 말한다. 죽음은 자연법칙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런 것이다. 그렇지만 죽음에는 고통이 따른다. 죽음의 포괄적인 의미 속에는 정신적인 죽음, 육체적인 죽음, 생태환경의 파괴, 각종 질병, 고통, 고난이 포함된다. 성서는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된 인간의 부활로 이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기독교이외에 그 어떤 종교에서도 부활과 부활의 축복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들도 부활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엘뤼시온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는 곳이고, 무릉도원과 아르카디아는 죽기 이전의 목가적인 삶을 말한다. 따라서 부활 없이 봄날이 영원히 지속되는 땅에서 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일장춘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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