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아주기의 기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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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아주기의 기적 2◀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요한, 야고보, 다른 두 제자, 도합 7명의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려고 배에 올랐지만, 고깃배를 탄지가 삼년이 넘어서였을까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 보았지만 허탕만 쳤다. 제자들의 가슴은 텅 빈 배만큼이나 허전하고, 깊은 밤처럼 캄캄하였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은 법, 태양이 동쪽 산 위로 붉은 빛을 뿌리기 시작할 무렵에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오셨다. 해변에 모닥불을 피어놓고 제자들이 먹을 빵과 생선을 준비해 놓고 계셨다. 가장 절망하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그 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셨고, 그들의 손을 붙잡아주셨다. 지난날의 잘못을 꾸짖지도 책망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깊은 상처를 들춰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상한 마음을 감싸고 위로하는 말씀을 주셨다. 그들이 지난날의 배신과 비겁함을 떨쳐버리고 용기백배한 역군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셨다.
조반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앞장서야할 베드로에게 조용히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이 물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베드로는 ‘반석’이란 뜻이다. 이 이름을 부르기에는 베드로가 너무 여리고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적인 베드로의 본래 모습에 알맞게 “요한의 아들 시몬”이란 호칭을 쓰셨다. 부와 명예와 권세로 치장한 가식과 허식뿐인 그런 이름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나타내는 순수한 이름이었다. 베드로는 쓰리고 아픈 경험들을 겪었고, 이미 상하고 깨진 심령이었다. 더 이상 감출 것도 속일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였다.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반석이라 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부르셨다. 시편 51편 17절에서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구하신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런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새롭게 소명을 부여하셨다.
예수님은 세 번을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처음 두 번의 물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에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의 사랑 곧 희생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의 뜻으로 물으셨다. “네가 나를 조건 없이 희생적으로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했던 사람이다. 도저히 예수님의 물음에 합당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두 번 다 필레오의 사랑 곧 친구로써의 사랑으로 고백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헌신적으로 조건 없이 사랑하느냐”고 물었는데, 베드로는 “예, 당신을 정말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베드로는 한때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노라고 큰소리쳤던 사람이다.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노라고 장담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감히 어떻게 배신자였던 자기가 “예, 내가 주님을 다른 누구보다 더 사랑합니다.”고 대답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베드로의 심정을 충분히 아신 예수님은 세 번째 물음에서는 그러면 “네가 나를 좋아하느냐?”고 물으셨다. 그 때 베드로는 슬퍼하고 근심하면서 “예수님, 모든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말입니다.”고 대답하였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첫 번 대답 때에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셨고, 두 번째 대답 때에 “내 양을 치라.” 그리고 세 번째 대답 때에 “내 양을 먹이라.”고 소명을 주셨다.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찢기고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셨다. 그 순간이 바로 제자들에게 기적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요한, 야고보, 다른 두 제자, 도합 7명의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려고 배에 올랐지만, 고깃배를 탄지가 삼년이 넘어서였을까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 보았지만 허탕만 쳤다. 제자들의 가슴은 텅 빈 배만큼이나 허전하고, 깊은 밤처럼 캄캄하였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은 법, 태양이 동쪽 산 위로 붉은 빛을 뿌리기 시작할 무렵에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오셨다. 해변에 모닥불을 피어놓고 제자들이 먹을 빵과 생선을 준비해 놓고 계셨다. 가장 절망하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그 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셨고, 그들의 손을 붙잡아주셨다. 지난날의 잘못을 꾸짖지도 책망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깊은 상처를 들춰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상한 마음을 감싸고 위로하는 말씀을 주셨다. 그들이 지난날의 배신과 비겁함을 떨쳐버리고 용기백배한 역군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셨다.
조반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앞장서야할 베드로에게 조용히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이 물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베드로는 ‘반석’이란 뜻이다. 이 이름을 부르기에는 베드로가 너무 여리고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적인 베드로의 본래 모습에 알맞게 “요한의 아들 시몬”이란 호칭을 쓰셨다. 부와 명예와 권세로 치장한 가식과 허식뿐인 그런 이름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나타내는 순수한 이름이었다. 베드로는 쓰리고 아픈 경험들을 겪었고, 이미 상하고 깨진 심령이었다. 더 이상 감출 것도 속일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였다.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반석이라 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부르셨다. 시편 51편 17절에서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구하신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런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새롭게 소명을 부여하셨다.
예수님은 세 번을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처음 두 번의 물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에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의 사랑 곧 희생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의 뜻으로 물으셨다. “네가 나를 조건 없이 희생적으로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했던 사람이다. 도저히 예수님의 물음에 합당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두 번 다 필레오의 사랑 곧 친구로써의 사랑으로 고백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헌신적으로 조건 없이 사랑하느냐”고 물었는데, 베드로는 “예, 당신을 정말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베드로는 한때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노라고 큰소리쳤던 사람이다.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노라고 장담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감히 어떻게 배신자였던 자기가 “예, 내가 주님을 다른 누구보다 더 사랑합니다.”고 대답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베드로의 심정을 충분히 아신 예수님은 세 번째 물음에서는 그러면 “네가 나를 좋아하느냐?”고 물으셨다. 그 때 베드로는 슬퍼하고 근심하면서 “예수님, 모든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말입니다.”고 대답하였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첫 번 대답 때에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셨고, 두 번째 대답 때에 “내 양을 치라.” 그리고 세 번째 대답 때에 “내 양을 먹이라.”고 소명을 주셨다.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찢기고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셨다. 그 순간이 바로 제자들에게 기적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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