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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신(神)의 기구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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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902 2009.07.0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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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신()의 기구한 운명

절대 신(神)에게 운명은 있는가? ‘절대’란 의미는 무엇인가? ‘전지전능’하시다. ‘무소부재’하시다. ‘유일무이’하시다는 뜻이다. 이러한 어휘들의 뜻은 무엇인가? 절대 신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모든 곳에 계시고, 안 계시신 곳이 없으며, 온 우주에 이런 능력을 가진 신은 단 한분뿐이라는 뜻이다.

이런 큰 능력을 가진 절대 신에게 무슨 제한이 있는가, 아니면 전혀 제한이 없는가? 하나님에게 아무런 제한이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에게도 몇 가지 제한이 있다. 성서에 소개된 하나님의 속성들이나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고백들을 보면,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의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기할 만큼 절대 신이신 하나님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나님은 ‘믿을 만하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다.’와 같은 말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정확하게 표현한 고백들이다. 그런데 이들 표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묶는 어떤 제한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절대 신에게는 아무런 제한도 속박도 없을 것 같은데, 절대 신이기 때문에 비켜갈 수 없는 어떤 속박과 제한이 있다. 그것은 마치 대통령이기 때문에 겪어야하는 제한과 속박, 연예인이기 때문에 겪어야하는 제한과 속박처럼 하나님께도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것을 ‘절대 신(神)의 기구한 운명’ 혹은 ‘하나님의 운명적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향하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을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의 사도로 부르신 분의 ‘노예’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노예’란 주인에게 속박된 자를 말한다. 노예에겐 자유가 없다. 바울 당대에 노예는 주인이 이유 없이 때리면 맞아야하고, 하지 못할 일도 시키면 순종해야하며, 다른 주인에게 팔면 팔려 가야하고,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동물로써 취급받았던 불쌍한 처지였다. 바울이 스스로 ‘그리스도의 노예’라 칭한 것을 두고 ‘바울의 운명적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기구한 운명, 비록 노예지만 주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 바울은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이 운명에 영웅적으로 충실했다. 그런 바울이 있었기에 오늘의 기독교가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도 이런 기구한 운명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운명에 충실하셨고, 지금도 충실하시고, 앞으로도 충실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구한 운명 또는 운명적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한번 아신 것을 번복하거나 다르게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은 한번 사랑하신 것을 미워하거나 싫어할 수가 없으시다. 만일 하나님이 한번 아셨던 것을 번복하거나 다르게 알게 된다면, 한번 사랑하셨던 것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시게 된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게 된다.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면, 더 이상 절대 신(神)일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절대 신이신 하나님은 번복이란 것이 있을 수 없고, 잘못 알거나 실수할 수가 없는 완전성에 묶여 존재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번 아신 것을 끝까지 아시고, 한번 사랑하신 것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한번 택하신 것을 끝까지 택하셔야 하는 운명에 묶여 존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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