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마법을 푼 출애굽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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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마법을 푼 출애굽사건
권력은 신성(神性)을 참칭(僭稱)한다. 권력이 황제의 것처럼 정치 군사적이든, 대제사장의 것처럼 종교적이든, 사장, 총장, 가부장의 것처럼 크고 작은 집단의 것이든 모든 권력은 신(神)의 위임으로 주어졌다고 믿어졌다.
고대의 황제들은 대부분 신(神)이나 신의 아들들로 숭배되었다. 권력은 신성한 것이었고, 신의 권력을 위임받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권력에 순복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도리였다. 나이 20세에 세계정복에 나선 알렉산드로스는 올림퍼스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아들로 숭배받기를 원했고, 그의 모친도 어린시절 그에게 제우스의 아들임을 꾸준히 주입시켰다. 로제제국의 초대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재임 시에 예수님이 출생하셨고, 제국의 황제들이 신성을 주장하며 숭배를 강요함으로써 초대교회에 박해의 풍랑이 일었다. 계시록 13장 5절에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라고 쓴 것은 ‘주(主)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에게 분향하도록 강요한 뻔뻔스럽고 가증한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염두에 둔 말이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일본의 왕이 ‘가미사마’ 또는 ‘천황’이라 부르며 신성(神性)을 주장하면서 ‘황거요배’ 또는 ‘동방요배’(東方遙拜)를 강요한 사실이 있다. 정오 사이렌 소리가 나면 예배 중이라도 일제히 일어서서 동쪽을 향해 절을 해야 했다. 일제 강점기 말엽 신사참배가 심하던 때에는 예배당에 일본에서 가장 높은 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을 벽에다 걸어놓고 절을 하게 했고,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게 하였다. 예배당 안에는 ‘천조대신’뿐 아니라, ‘가미사마’ 곧 신(神)으로 신격화된 일왕의 사진을 강단 뒤 벽에 걸게 하였고, '가미나다'라 불리는 이동식 신사(神社)를 예배당 안 동편에 놓게 하였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이들을 향해서 먼저 예의를 갖춘 다음에 하나님께 예배할 수가 있었다. 초대교회가 강요받았던 황제숭배와 유사한 강요를 일제 강점기 때에 조선인들도 받았던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독재 권력에 불복종한 대가로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였으며, 목숨을 빼앗겼다. 이 의로운 항거와 순교가 권력의 마법을 푼 사건들이었다. 예배의 대상은 오로지 한분 야훼 하나님뿐임을 죽음으로써 천명하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히브리인들의 이집트탈출의 영광은 권력의 마법을 푼 해독제였다. 출애굽사건은 합법화된 군주, 곧 태양신의 아들로서 정치적 주권을 확립시킨 바로에 대항한 반란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사건은 베드로가 가진 음부의 권세뿐 아니라 황제의 검을 휘두르고 싶어 했던 가톨릭 교황들의 신성의 찬탈(簒奪), 곧 우상숭배에 대항한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반국가적이거나 반권력적인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는 정치권력을 조건부로 수락하였다. 기독교인들은 황제를 위해서 기도할 뜻을 분명히 갖고 있었고, 실제로 기도하였다. 그러나 황제를 위한 제단에 향을 피우지는 않았다. 제단에 향을 피우고 제사하기를 거절한 것은 황제숭배를 거부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 기독교는 끝내 이겼다. 여기서부터 민주주의 꽃이 활짝 피게 된 것이다. 신성을 주장하는 권력의 마법에서 인간을 해방시킨 출애굽사건과 같은 우상숭배를 거부한 사건들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였고, 신성을 참칭(僭稱)하는 모든 거짓 신들의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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