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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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1992년 6월 박 목사님과 함께 일본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석했다가 목사님의 안내로 교토시 고류지(廣隆寺)에 있는 일본의 국보1호 ‘목조반가사유상’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목조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의 국보3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많이 닮았다. 서기 600년대 초에 백제왕실이나 신라왕실에서 일본왕실에 보낸 미륵보살상이다. 독일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이 불상은 형언키 어려울 만큼 기막힌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모나리자의 미소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0년대 초 일본 교토대 예술학부 학생이 이 불상을 넋을 놓고 보고 있다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대좌(臺座)로 뛰어들어 불상을 끌어안았다가 불상의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부러뜨리는 소동을 빚기도 하였다. 그 때 부러진 조각을 정밀 조사했더니, 우리나라 봉화 영주에서 자라는 적송(赤松)인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 불상에 비교될 수 있는 서양의 작품이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작품은 로댕이 죽을 때까지 제작에 매달렸지만 미완성으로 남게 된 「지옥의 문」 상인방과 문틀 사이의 넓은 공간 중앙에 놓였던 조각품이다.
그런데 두 작품이 모두 오른쪽 무릎근처 허벅지에 오른쪽 팔꿈치를 대고 오른쪽 턱의 볼을 괴고 있거나 손가락을 댄 모습이다. 이 모습은 고뇌하는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런 포즈다. 반가사유상은 원래 석가모니가 태자 시절에 인생무상을 느껴 고뇌하는 명상자세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질 인간들의 운명과 타락한 문명을 생각하며 고뇌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장차 세상을 심판하실 그리스도를 표현했다는 설이 있다.
이들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불교와 기독교는 모두 인간의 고뇌에서 출발되었다. 그러나 두 종교가 인간의 고뇌로부터 구원을 표현한 방법은 상반된다. 불교에서는 부처를 묘사할 때,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모습으로 조각한다. 부처가 갖춰야 할 신체상의 특징으로 크게는 32가지, 작게는 80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32길상 80종호(三十二吉相 八十種好)라고 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부처가 32길상 같은 특수한 묘상을 갖게 된 것은 5백번의 전생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에 결국 황실의 태자로 태어날 수 있었고, 32길상 80종호의 모습(相)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는 인류의 죗값을 대신 받기 위해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고, 끝내는 극형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가톨릭에서는 가장 고통스런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모습의 구세주 미륵보살과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런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의 형상들, 이것이 불교와 기독교가 구세주를 표현하는 상반된 모습들이다. 불교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평화로운 구세주의 모습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고통스런 구세주의 모습에서 우리는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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