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클로델과 구상이 만난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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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클로델과 구상이 만난 하나님▣
몇 해 전 소천하신 시인 구상은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라는 제목의 신앙고백문을 남겼다. 고백은 이렇게 시작된다. “먼저, 내가 왜 크리스천인가라는 이야기를 소박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소위 모태신앙의 크리스천이올시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각(知覺)이 들기 이전, 크리스마스 밤에 산타클로스가 머리맡에다 선물을 가져온다는 설화를 그대로 믿었을 때 말고는, 철이 나면서부터는 가톨릭신자이기 때문에 평안 속에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많은 정신적인 고뇌 속에 있었다는 것이 정직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저는 동경으로 유학 가서도 종교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불교의 나라이기 때문에 종교학 커리큘럼 중 절반 이상이 불교경전에 대한 주석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고민은 신의 실재에 대한 것이었으며, 이와 아울러 신의 섭리라든가, 교리 자체 등에 대한 많은 회의를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평안보다는 고뇌에 싸여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난 저주받은 영혼이 아닌가하며 극단적인 생각으로까지 치닫곤 했습니다.”
참고로 시인 구상은 열다섯 살에 수도원 부설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3년 만에 환속했고 노동판 인부 등을 전전하다가 일본 도쿄(東京)로 밀항했다. 그곳에서 노동자와 연필공장 직공으로 연명하다가 도쿄 니혼(日本)대학 종교과에 입학하여 불교를 전공하였다.
시인 구상의 ‘정신적인 고뇌’는 신앙과 삶의 괴리 때문에 겪는 갈등이 아니라, 구원의 길에 대한 고민이었다. 한 때 사제가 되려고 신학공부를 했던 그로서 니혼 대학에서의 불교공부는 그를 줄곧 고민에 빠트리게 하였다. 불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시인 구상은 가부좌를 틀고 미소 짓고 있는 부처의 ‘평안’과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스러워하는 예수님의 ‘고뇌’ 사이를 오가며 자신을 “저주받은 영혼”으로 생각할 정도로 치열하게 갈등하였다.
그러던 중에 구상은 시인 폴 클로델을 통해서 기독교의 진수를 맛보기 시작하였다. 로댕의 제자 카미유 클로델의 남동생이었던, 폴 클로델(Paul Claudel, 1868-1955)은 외교관이자 시인이었다. 클로델은 신앙을 잃고 방황하던 젊은 시절에 랭보의 㰡일뤼미나시옹㰡과 㰡지옥의 계절㰡을 읽고서 신앙을 되찾았다. 특히 그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예배 중에 그의 가슴에 무언가가 접촉되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라는 것을 느꼈고, 전신이 공중부양되는 것 같은 체험을 통해서 믿음을 확실히 되찾았다. 이 믿음이 너무 강력해서 일생동안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클로델은 눈에 보이는 것 가운데 있으면서 보이지 않는 어떤 초자연적인 것을 깨닫는데 중점을 두고 살았다. 보이는 세계는 혼돈과 우연의 연속일 뿐이므로, 그것을 보이지 않는 참 세계로 받쳐줄 때 비로소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초자연의 실체는 하나님이시며, 이 하나님이 없는 세계는 불완전하고, 무의미하며, 허무할 뿐이라고 했다. 그런 클로델이 말하기를, “만일 그대들이 신을 참되게 알았을 때, 신은 그대들에게 동요와 불안을 줄 것이다”고 했다. ‘평안’이 아니라 ‘동요’와 ‘불안’을 주는 신(神), 그분이 시인 구상 선생께서 클로델을 통해서 알게 된 기독교의 하나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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