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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과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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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594 2009.08.16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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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과 건국

어제가 광복 64주년, 건국 6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들 역사적 사건들이 같은 날짜에 있었지만, 왜 그랬는지 우리는 8.15하면 광복만 생각했지, 건국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광복보다는 건국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과거지향에서 미래지향으로 바뀌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집트 대탈출을 앞둔 3월말 4월초 보름달이 뜬 밤에 먹었던 유월절 식사를 해마다 해방절로 지킨다. 온 민족이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이삿짐을 꾸려서,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떠날 채비를 갖춰놓고,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날 밤, 달빛이 있어서 어둡지 않았던 그 비밀스런 밤에 양을 잡아 굽고, 화덕에 빵을 구어 쓴 나물과 함께 먹고 수십만 혹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삿짐을 챙겨들고 일제히 길을 떠나는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모습이나 지축을 흔들며 추격하는 마병대를 뒤에 두고 갈라진 홍해를 숨 막히는 흥분과 긴박감 속에서 건넌 후에 홍해 해변에서 절정의 감격을 맛보았던 그 함성과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늘을 찌르는 노래가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의 광복절인 1945년 8월 15일에는 없었다. 능동적이었던 히브리인들의 영광의 탈출과는 달리 조선의 광복이 강대국들에 의해서 주어진 수동적인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광복에 비하면, 건국은, 비록 그것이 반쪽 나라의 행사였지만, 오히려 능동적인 사건이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케 한 사건이었다.

작가 강준식에 의하면, 조선총독부의 통치는 8월15일 이후에도 엄연히 지속되었다. 참고로 대만은 10월 25일을 광복절로 지키고 있고, 미국은 9월 2일, 구소련과 중국은 9월 3일에 대일전승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선언이 수락된 것은 8월 14일이었고, 일본군에 정전명령이 하달된 것은 8월 16일이었으며, 일본이 포츠담선언에 조인한 것은 9월 2일이었다. 그리고 일제가 조선총독부청사에서 항복조인식을 거행한 것은 9월 9일이었다. 8월 15일에는 전쟁을 끝낸다는 일왕의 발표가 두 차례에 걸쳐서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8월 15일은 일본의 종전기념일이다. 이날 일왕이 발표한 종전(終戰) 소식은 잡음이 심하였고, 내용파악이 어려운 문어체였으며, 발표내용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깨닫는 조선인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8월 15일 조선 땅은 일상처럼 조용한 하루였을 뿐, 거리에 만세소리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물결치지 못했다.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한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의 위력 때문이었다. 해방직후 대한민국은 38선을 경계로 국토와 민족과 사상이 둘로 갈라져 대립하였다.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정복이후 500여년 만에 맛보았던 남북분열의 아픔을 우리나라는 해방직후 곧바로 맛보았다. 해방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분열의 아픔부터 겪었다. 그리고 3년 후에 있었던 건국은 그나마 일제의 억압에 시달려온 민족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선물하였고, 공산독재로부터 백성을 보호한 사건이었다. 여기에 진정한 해방의 기쁨이 있고, 우리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경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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