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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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마음에
행복에 대한 견해를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행복은 이생뿐이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인생의 가치를 장수, 건강, 재물, 자손에 두게 만든다. 죽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사는 동안 잘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사람을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을 쫓아내고 불행을 불러들인다. 그 이유는 더 나은 세상,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기대가 없고,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세상은 생지옥이 될 수도 있다.
둘째, 행복은 내생뿐이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인생의 가치를 내세에 두게 만든다. 이 견해는 현세에 좌절했거나 희망을 잃은 사람들, 혹은 이생에서 궁극적인 가치를 찾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많다. 이런 사람들은 이생에서 행복하기를 포기하였기 때문에 원하는 행복을 내세에서 보상받기를 원한다. 말세론에 빠진 사람들 대부분이 이 범주에 속한다.
셋째, 행복은 이생과 내생모두에 있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인생의 가치를 현세와 내세 모두에 두게 한다. 내세를 지복의 장소로 보게 하면서도 현세의 복을 포기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만든다.
기독교인들은 ‘이미’와 ‘아직’이란 두 종말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현세를 포기하고 내세를 기대하는 말세를 살지 않고, 바라는 내세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미’ 나의 삶 속에 앞당겨지고, 맛보아지며, 체험되어지고 있고, 성령님의 인도로 ‘아직’ 이뤄지지 아니한 내세를 향해서 힘차게 달려간다. 이것을 일컬어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한다. 내세의 행복을 현세에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맛보고 누리면서 종말에 주어질 지복들을 경험한다. 또 내생이 있기 때문에 이생에 집착하지 않고, 내생이 있기 때문에 이생을 훨씬 소박하고 건강하게 이웃과 더불어 살아간다.
행복은 마음에 있다는 말이 있다. 행복을 멀리서 찾으면 어리석은 것이다.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들 중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불교에서도 부처님은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부처님이 열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인간 곁에 계시다고 말한다. 또 이런 말도 한다. “석공이 돌부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돌 속에 계신 부처님을 모셔오는 것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아름다운 불상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느 기특한 돌쪼시가 돌 속의 부처님을 참 곱게도 모셔내었구나.” 석공이 돌 속의 부처님을 곱게 모셔냈다는 뜻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형상을 곱게 모셔낼 수도 있고, 반대로 우리 안에 있는 사단의 형상을 무섭게 드러낼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 인간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마음속에 있다. 어떤 사람은 권세와 명예와 재물로 이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행복은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가 없다. 비매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은 원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무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극은, 그것이 공짜인데도, 대다수의 사람이 갖고 있지 못하다는데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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