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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식 삶과 '빼기'식의 삶[마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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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6,956 2002.09.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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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글에서 '더하기의 복음과 빼기의 율법'이란 제목으로 예수와 모세를 비교하면서 예수와 그분의 복음은 우리의 삶에 플러스가 되고, 모세와 그의 율법은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에 예수와 그분의 복음만이 '마이너스 1'의 존재인 우리 인간들에게 부족함을 채워 줄 수 있는 '더하기'가 된다고 말씀드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은 예수가 성경에 소개되고 있는 그 어떤 인물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난 분이시며, 심지어 천사나 성전보다도 훨씬 더 크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예수의 말씀에는 권위와 권세와 능력이 있었고, 율법사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교훈이었다.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의 교훈은 부정적이고 폐쇄적이고 보수적일 뿐 아니라, 지키기 힘든 것들이어서 사람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것들이었지만, 예수의 교훈은 긍정적이고 개방적이고 진취적일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쉼과 자유를 주는 것들이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앞글에서는 예수의 복음과 모세의 율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예수의 행동과 모세의 행동을 비교하면서 예수의 '더하기'식 삶과 모세의 '빼기'식 삶에 관해서 살펴보겠다.
마태복음 5-7장에는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긴 예수의 말씀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8-9장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10개의 기적이 소개되고 있다. 이들 말씀과 기적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해준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과 이집트에서 행한 10개의 기적에 비교가 된다. 예수의 산상수훈과 모세의 율법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예수의 산상수훈은 인간에게 더하기가 되고, 진정한 의미의 쉼과 자유를 주는 것이지만, 모세의 율법은 인간에게 빼기가 되고, 억누름과 고달픔이 된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예수의 8복과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모세의 십계명을 비교해 보면, 예수의 8복은 모두가 위로와 축복을 약속하는 긍정적인 말씀들로 되어있지만, 모세의 십계명은 모두가 "~하지 말라" 또는 "~하라"는 명령과 부정적인 금지의 말씀으로 되어있다. 예를 들면, 예수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 ." 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 . .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이 지키라. . . 네 부모를 공경하라. . .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8-9장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10개의 기적 또한 각종 질병과 귀신들림과 자연의 재해로부터 인간을 구출하고 살리는 것인 반면, 모세의 10가지 기적은 오히려 인간에게 각종 질병과 자연의 재해를 주고 인간을 죽이는 아주 무서운 것들이다. 그래서 예수의 기적은 인간에게 보탬이 되고 구원이 되지만, 모세의 기적은 인간에게 빼기가 되고 재앙이 된다. 이와 같이 예수의 말씀과 행동은 인간에게 플러스가 되지만, 모세의 말씀과 행동은 인간에게 마이너스가 된다.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릴 것이 있다.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오랜 종살이에서 해방시킨 능력 많고 겸손한 지도자이다. 또 모세가 전한 십계명과 율법은 당대의 어느 주변국들의 것들보다 뛰어난 것들이다. 율법이 나쁘거나 또 율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인간에게 있다. 인간에게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법이 인간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다.
모세의 말씀과 행동이 인간에게 마이너스가 된다는 뜻은, 첫째, 예수의 복음과 기적에 비교해서 열등하다는 뜻이오, 둘째,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능력에 있어서 예수의 복음과 예수의 행동보다 열등하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모세의 율법으로는 아무도 구원에 이를 자가 없다고 하였다. 율법이 인간의 윤리적인 생활에 다소의 보탬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은 인간에게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 인간을 죄와 불행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의 복음뿐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복음은 인간에게 유일한 플러스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보다도 더 극적으로 예수의 기적과 모세의 기적을 비교하고 있는 책이 요한복음이다. 마태는 8복, 8개의 천국비유, 8개의 종말비유와 같이 숫자 8을 즐겨 사용하였고, 8을 통해서 기독교 복음의 넉넉함, 충만함, 또는 넘침을 일깨워 주었지만, 요한은 숫자 7을 즐겨 사용하였다. 일곱 가지 축복들(2-3장), 일곱 교회(1:4,11), 일곱 영(1:4), 일곱 금 촛대(1:12), 일곱 별(1:16), 일곱 인(5:1), 일곱 뿔과 일곱 눈(5:6), 일곱 나팔(8:2), 일곱 우뢰(10:3), 일곱 표적(12:1,3; 13: 13-14; 15:1; 16:14; 19:20), 일곱 면류관(12:3), 일곱 재앙(15:6), 일곱 금 대접(15:7), 일곱 언덕(17:9), 일곱 왕(17:10) 등, 온통 완전수 혹은 거룩한 수 7로 계시록을 장식하고 있다. 요한은 7이란 숫자를 통해서 기독교인과 기독교 복음의 최후의 승리, 완전한 승리, 완벽한 축복을 말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복음에서도 예수의 기적을 7개만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7개의 기적들은 모세의 열 가지 기적들 가운데 파리, 이, 개구리 재앙을 제외한 나머지 7개의 기적들과 비교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은 숫자 7를 선호하였기 때문에 예수의 기적을 모세의 기적과 비교시키기 위해서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에도 불구하고 7개만 선별적으로 소개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할 당시에 모세가 행한 열 가지 기적들을 보면, 모두가 다 재앙을 초래한 부정적인 것들 즉 '빼기'인데 비해서, 요한복음에 실린 예수가 행한 기적들을 보면, 모두가 다 축복을 가져다 준 긍정적인 것들 즉 '더하기'였다. 여기서 예수와 모세의 차이, 또 기독교 복음과 유대교의 율법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모세는 물을 피로 바꿈으로써 고기가 죽고 물에서 악취가 나게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재앙을 불러왔지만,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바꿈으로써 파투날 뻔한 잔치분위기를 되살려 놓아 잔치에 참여한 자들과 주인에게 기쁨의 은혜를 가져다주었다. 이 두 개의 기적은 삶의 태도와 관련해서 비교되고 있다.
둘째, 모세는 이집트인들이 기르는 가축에 심한 악질이 나게 하여 모든 가축을 죽게 하는 재앙을 가져다주었지만, 예수는 병으로 거의 죽게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심으로써 집안에 기쁨이 충만케 하셨다. 여기에서 가축은 주인이 기르는 짐승이란 점에서 왕의 신하가 기르는 아들과 비교되어지고 있다. 모세가 이집트인들이 기르는 가축을 병들어 죽게 했다면, 예수는 왕의 신하가 기르는 아들이 걸린 병을 고쳐주었다.
셋째, 모세는 이집트인들과 짐승들에게 독한 피부병이 나게 하여 몹시 괴롭게 하였지만, 예수는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서 물이 동하기만을 기다리던 삼십 팔 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다. 성경이 38년 된 병자의 병명을 알려주고 있지 않아서 그 사람의 병명을 알 수는 없지만, 요한은 그 사람을 피부병에 비교하였다. 아무튼지 이 두 개의 기적은 인간의 질병과 관련해서 비교되고 있다.
넷째, 모세는 이집트인들과 짐승과 채소밭에 뇌성과 불과 우박을 맹렬히 퍼붓게 하여 큰 피해를 주었지만, 예수는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몰고 가던 제자들이 큰 풍랑을 만나 목숨이 위태로울 때에 나타나 성난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죽음에 직면한 제자들을 구출해 주셨다. 이 두 개의 기적은 자연의 재해와 관련해서 비교되고 있다.
다섯째, 모세는 메뚜기 떼를 통해서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어치우게 함으로써 엄청난 재산 피해를 이집트인들에게 입혔지만, 예수는 메뚜기 떼처럼 많은 배고픈 민중에게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배불리 먹게 하였고, 먹고 남은 음식을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하였다. 이 두 개의 기적은 먹는 것과 관련해서 비교되고 있다.
여섯째, 모세는 이집트에 삼일간이나 흑암 재앙을 내려 사람들에게 고통을 받게 하였지만, 예수는 실로암 못 근처에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고쳐 광명을 찾게 하셨다. 이 두 개의 기적은 보는 것과 관련해서 비교되고 있다.
일곱째, 모세는 이집트인들에게 처음 난 것은 다 죽게 하는 엄청난 재난을 가져다줌으로써 큰 슬픔에 쌓이게 하였지만, 예수는 죽은지 사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냄으로써 큰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다 주었다. 이 두 개의 생명과 관련해서 비교되고 있다.
이렇게 예수의 행동은 파투날 뻔한 잔치분위기를 되살린 것이며, 질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을 고친 것이며,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한 것이며,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준 것이며, 죽은 자를 살린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는 우리에게 더하기가 되시는 분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 복음은 인간을 살리는 것이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자신과 남에게 이익을 주며 플러스가 되게 하는 것이다. 자신과 남에게 해를 끼치며 마이너스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뜻이 무엇인가? 예수를 믿는다는 말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한 가지는 예수를 우리의 구세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신뢰한다는 뜻이고, 다른 한 가지는 예수의 삶을 따라 산다는 뜻이다. 예수를 신뢰한다는 뜻은 예수를 믿음과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오, 예수의 삶을 따라 산다는 뜻은 예수를 따름과 실천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더하기가 되시는 예수를 신실하게 믿을 때, 우리의 삶이 예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 하나씩 둘씩 보태지기 시작한다. 다른 편으로는 예수의 '더하기'식 삶을 본받아 남에게 보탬이 되고, 더하기가 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런 더하기식 삶을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죠지 뮬러이다. 고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인 죠지 뮬러는 1805년 독일의 크로펜스타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는 허몬 프랑케의 생애를 읽고 크게 감동 받아 30세에 고아원을 시작했다. 그가 고아원을 처음 시작할 때 준비된 물품은 선물받은 접시 세개, 쟁반 스물 여덟 개, 대야 세 개, 물병 하나, 컵 한 개, 소금병 받침 세 개, 칼 네 개, 포크 네 개, 그리고 채소를 깎는 강판 한 개 뿐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62년 동안 조지 뮬러는 약 30억원 이상을 후원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뮬러는 한 번도 또 한 푼이라도 남에게 호소하거나 부탁해서 얻어 오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더하기가 되시는 예수를 철저히 믿고 기도했을 따름이다. 이렇게 받은 돈을 가지고 죠지 뮬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지 아니하고 오로지 고아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썼다. 죠지 뮬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는 그날 그날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면서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앞으로 많은 돈을 보내주었지만, 뮬러는 그 돈을 자신을 위해서 쓰지 않았다.
이렇게 뮬러는 예수를 믿고 예수를 통해서 넘치는 축복을 받았고, 예수의 더하기식 삶을 본받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구세주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 진정한 축복과 쉼을 얻는 것이오, 인류에게 더하기가 되신 예수의 삶을 본받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하기가 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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