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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그 신뢰와 신실함(히 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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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071 2002.08.09 00:37

본문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주제는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주관적인 믿음도 있고, 성경의 가르침에 동의하는 객관적인 지식의 믿음도 있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는 순종의 믿음도 있고, 신령한 은사의 믿음도 있고, 교리의 믿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장 포괄적으로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신뢰와 신실함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신뢰와 신실함에 초점을 맞춰서 믿음을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바를 이루어주실 어떤 분을 신뢰하는 것이고, 신뢰하는 분의 신실함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신뢰를 통해서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마치 보는 것처럼 분명한 그림을 그려나갈 때 신실함이 커지게 되고, 신실함이 커지면 믿음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믿음의 관계가 만들어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고 하였는데,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무엇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또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 혹시 개인적으로 꼭 이루지기를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바라는 것이 꼭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십니까? 만일에 확신하고 계시다면, 그 확신은 또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러나 만일에 확신하지 못하신다면,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라는 것이 꼭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하지 못하는 데는 누군가에 대한 신뢰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 누군가가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 뚜렷하면 그가 바라는 것들이 꼭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말은 바라는 것들을 꼭 이루어주실 어떤 분에 대한 신뢰를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혹시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이 성취될 가능성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아서 힘겨웠던 경험은 없습니까? 바라는 것들이 있는데, 전혀 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란 무엇입니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말이 바라는 것들을 꼭 이루어주실 어떤 분에 대한 신뢰라면,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는 자신이 믿는 분의 신실함을 믿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마치 보는 것처럼 분명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바를 이루어주실 어떤 분을 신뢰하는 것이고, 신뢰하는 분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믿을만하다', '약속한 것을 꼭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당장은 그 바라는 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약속 주신 이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킨다는 확신이 바로 믿음이라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유대인들은 그들이 간절히 소원하며 바라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나라를 세계에 우뚝 선 나라로 만들어줄 강력한 메시아 즉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절 상반 절은 유대인들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헬라인들은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 보이는 세계는 그림자에 불과할 뿐 참 세계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이데아 세계라고 믿고, 그 세계에 이르는 지혜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절 하반 절은 헬라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을 이렇게 정의 내린 배경에 대한 설명일 뿐이고, 정확한 뜻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있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 보이는 것처럼 분명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 믿음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것처럼 분명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라는 바를 반드시 이루어주실 분의 신실함, 즉 그분이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고,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고, 들리지 않는 가운데서도 자기의 바라는 바를 이루어 주실 분에 대해서 변함 없는 믿음으로 인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6절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라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이것이 꿈과 현실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바라는 바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살아갑니다. 보지 못한다는 이 심각한 문제, 이것이 바로 여러분과 나의 문제이자 당면한 현실의 문제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점에 대해서 매우 잘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먼저 믿음의 조상들이 다 그런 시련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조상들의 경험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우주창조를 믿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그 사실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처음부터 보지 못하는데서 출발되었습니다.

아벨과 에녹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배로 기쁘시게 하였고, 노아는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한 경고하심"을 받았으나 믿음으로 방주를 준비하였으며, 아브라함은 그가 바라는 바를 하나님으로부터 약속 받았으나 "믿음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사라도 나이 늙어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나 약속주신 분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이란 사실을 신뢰함으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이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조상들도 '바라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의 모순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알려진 것은 그들이 그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치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만일 신뢰하신다면, 왜 신뢰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신뢰하십니까?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는 것은 그분이 믿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약속을 지키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신실하시다"(신 7:9) 혹은 "하나님은 미쁘시다"(고전 1:9)라고 말합니다. 또 계시록 19장 11절에 보면, 예수를 "충신과 진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약속대로 다시 오시기 때문에 주어진 호칭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또 "하나님은 미쁘시다."는 이 말씀들은 하나님은 우리와의 약속을 충실하게 지키는 분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66권 거의 대부분이 성도들에게 신실한 믿음과 인내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성경이 기록된 근본적인 이유들 중의 한 가지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성도들에게 신실한 믿음과 인내를 강권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근거가 바로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분이시다 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는 분들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신실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하나님께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신실하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한 약속들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침례 받을 때에 하나님만을 믿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욥은 모든 가족과 모든 재산을 잃고서도, 또 자신의 몸에 난 악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집니다. 광야에 버려져 40년을 떠돌이 천막생활을 하면서도,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지 못하고, 고난을 당할 때에 인내하지 못하고, 믿음을 버리고 떠나는 성도들을 향해서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신앙인에게 닥치는 문제는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리고 바라는 바를 온몸으로 느끼지 못할 때에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바라던 바를 이루었고, 보지 못하는 던 것들을 보았는가 또 그들은 자기들이 바라던 바를 성취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 얼마나 엄청난 악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버리지 않았는가를 여러 사람들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2절 이하를 보면, ". . . .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뢰와 신실함은 꽃과 열매와 같습니다. 신뢰를 꽃에 비유한다면, 신실함은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영어로 'faith'라고 하는데, 신실함은 'faithfulness'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실함'이란 말은 '믿음이 많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믿음이 많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많다'는 말은 '신뢰가 크다' 또는 '약속을 충실하게 지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신실할 수가 없고,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꽃이 없으면 열매가 없고, 열매가 없으면 꽃도 피울 수 없는 것처럼, 믿음과 신실함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또하신뢰와 신실함은 바늘과 실과 같습니다. 실없는 바늘이 쓸모 없고, 바늘 없는 실이 쓸모 없듯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뢰와 신실함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꽃과 열매처럼, 바늘과 실처럼, 신뢰와 신실함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 둘이 함께 나타날 때, 믿음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아내를 혹은 아내가 남편을 신뢰할 때, 서로에게 신실할 수가 있고, 또 서로에게 신뢰와 신실함이 있을 때에, 둘 사이에 믿음이 생기듯이, 하나님과 신자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롬 5:1)고 말하기도 하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롬 6:16)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믿음은 신뢰를 말하고, 순종은 신실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장 10절에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신 말씀은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과의 신뢰와 신실함을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이런 신뢰와 신실함이 어찌 하나님과 신자사이에게만 필요하겠습니까? 부부사이에도 필요하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필요하고, 목사와 성도사이에도 필요하고, 성도와 성도 사이에도 이런 믿음의 관계가 필요합니다. 신뢰와 신실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관계입니다.

신뢰는 꽃이요, 신실함은 열매입니다. 신뢰는 바늘이요, 신실함은 실입니다. 신뢰는 믿음이요, 신실함은 순종입니다. 신뢰 없이 신실함 없고, 신실함 없이 신뢰가 없습니다. 신뢰 없는 신실함이란 있을 수 없고, 신실함이 없는 신뢰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믿음은 믿어주는 신뢰와 함께 서로의 약속을 충실하게 지켜 가는 신실함에 있습니다. 이 둘이 함께 갈 때, 하나님과 가정과 더 나아가서는 교회와 사회에 믿음의 관계를 쌓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믿음은 신뢰를 통해서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것처럼 분명한 그림을 그려나갈 때 신실함이 커지고, 신실함이 커지면 믿음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믿음의 관계가 만들어지면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이점을 잘 생각해 보시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시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큰복을 내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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