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 그리스도39: 천국백성의 짧은 환난(4)(계 11:5-19)
본문
승리자 그리스도39: 천국백성의 짧은 환난(4)(계 11:5-19)
두 증인(5)
예수님은 오실 자 제2모세 혹은 제2다윗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원했던
이스라엘의 추락한 명예와 빼앗긴 주권문제를 해결하시지 않았다. 대신에 인류를 하늘 가나안땅에로 인도하여 하나님나라의 시민과 하나님가족의 식구가
되게 할 목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기획하셨다. 예수님이 교회의 모퉁이돌과 머리 또 몸이 되시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이 직접 그리스도의 교회를
시작하신 것은 아니다. 교회를 시작한 사람들은 사도들이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모세, 다윗, 엘리야처럼 제자들과 이취임식을 가졌다. 그
장면이 요한복음 20장 19-23절에 나온다.
부활하신 날 밤에 가진 식(式)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고,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며, 하늘 가나안땅 정복을 위해서 성령의 능력을 덧입히셨다. 이것은, 스가랴 4장 6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된다”고 하신 말씀과 맥을 같이 한다. 또 모세가 지상 가나안땅 정복을 위해서,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해서, 엘리야가 야훼신앙복원을 위해서 후임자에게 능력을 덧입게 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기초자요 전임자였던 바울도 건축자요 후임자인 장로들을 성령님이 교회의 감독으로 삼은 자들이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필 목사로 삼은 자들이라고 칭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기초자와 건축자 혹은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와 물을 주는 자는 세상을 밝힐 기름공급을 위해서 이 땅에 뿌리를 박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편에 선 두 감람나무이다. 그들이 바로 모세와 여호수아, 다윗과 솔로몬, 엘리야와 엘리사,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예수님과 사도들, 바울과 장로목사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교회의 기초를 놓고 건축하고, 복음의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교회를 돌보고 감독하며, 교회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감람나무들이었다.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이 일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권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영으로만 될 것이다”(6절). “시작이 미약하다고 비웃는 자가 누구냐? 스룹바벨이 돌로 된 측량추를 손에 잡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기뻐할 것이다. 이 일곱 눈은 온 세상을 살피는 나 주의 눈이다”(10절). 또 “이들은 기름 부음을 받은 두 사람이니, 온 땅의 주님 앞에 서있는 자들이다”(14절).
두 증인(6)
5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는 말씀은 열왕기하 1장 10-12절의 말씀에서 평행구를 찾을 수 있고, 6절
상반절,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는 열왕기상 17-18장의 상황에서 평행구를 찾을
수 있다. 또 6절 하반절,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는 출애굽기
7-12장의 열 가지 재앙들에서 그 평행구를 찾을 수 있다. 이들 구약성서의 평행구들은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란 점을 분명히 밝힌다.
모세와 엘리야는 승천한 하나님의 종들로서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의 부활승천을 대표한다. 계시록 11장에서 두 증인은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 곧 사탄에게 죽임을 당한다. 사탄은 음부의 사자이다. 8절에서 증인들이 죽어 시체로 있던 곳을 영적으로 ‘소돔’ 혹은 ‘애급’이라 부른 예루살렘,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했다. 이 두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기 때문에 땅에 속한 자들이 싫어했다. 그래서 10절에서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고 하였다. 주의 종들과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배척당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시는 3년 6개월 동안 배척당하시고 기어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러나 무덤은 주님을 가둬 두지 못했고, 물고기가 요나를 해변에 토해낸 것처럼, 무덤은 삼일 만에 주님을 토해냈고, 주님은 부활하여 승천하셨다. 비슷한 맥락에서 모세와 엘리야도 승천하였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불 수레와 불 말들 사이에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했고(왕하 2:11), 모세는 죽어서 시체로 승천했다는 설이 있다. 신약성서 유다서 9절에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했다”는 기록이 있듯이, 고대의 유대인들은 모세의 시체가 땅에 묻혀 썩지 않고 승천했다는 ‘몽소승천’을 믿었다. 11-12절의 말씀이 이들의 승천을 반영한 글이다.
두 증인(7)
14절 이하는 일곱 번째 나팔에 관한 내용이다. 계시록 8장 13절에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다.”는 말씀이 있다.
9장에 이들 세 번의 ‘화’들 가운데 두 개가 나온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나팔재앙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리고 11장 14절에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는 선포가 있고, 15-19절에 세 번째 ‘화’인 일곱 번째 나팔이 나온다. 그러나 일곱 번째
나팔은 재앙이라기보다는 더 무서운 재앙, 나팔재앙보다 강도가 훨씬 더 강한 일곱 대접재앙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마치 일곱 번째 인의
침묵이 일곱 나팔재앙을 끌어드리기 위한 고요였던 것과 같다.
15절을 보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나서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것이다”라고 외친다. 일곱 번째 인을 떼었을 때 침묵이 흘렀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어서 16-17절에서는 24장로들이 하나님께서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하실 것을 노래하고 있고, 지금이 심판과 보상의 때임을 선포하고 있다. 심판은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 받을 몫이고, 보상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이 받을 몫이다. 그리고 19절 마지막 절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소리, 곧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을 했고,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는,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고 하였다. 바울의 이 고백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고백이요, 핵심 메시지이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기 때문에 자기 백성의 시련기간을 짧게 정하시고, 그 기간을 사랑의 수고와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로 잘 참고 끝까지 이긴 믿음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영광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시련은 짧고 영광은 영원한 것이다. 짧게 표현된 시련의 상황이 영원한 영광의 상황으로 반전(反轉)되고, 회복(回復)되며, 기도와 소망이 이뤄지고, 구원이 이뤄진다.
- 이전글 승리자 그리스도40: 천국백성의 짧은 환난(5)(계 12:1-4) 20.04.06
- 다음글 승리자 그리스도38: 천국백성의 짧은 환난(3)(계 11:3-4) 20.04.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