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는 구세군 사관 출신의 성낙소 목사가 1927년 1월 1일 충남 부여군 세도면 화수리에 '기독지교회'(基督之敎會)를 세우면서 자생적으로 발생되었고, 1930년에는 일본에서 사역하던 미국인 선교사 커닝함이 그곳 한국 유학생을 통해서 성낙소의  '기독지교회'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성낙소를 일년 반 동안 일본에 초청함으로써 처음으로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소속 선교사들인 커닝함과 채이스를 만나게 되었다. 채이스는 1936년 한국 최초의 선교사 제이 미챌 쉘리(J. Michael Shelley)의 추천으로 두 번째 선교사로 입국하여 크게 활동하였으나 1935년에 입국했던 최초의 선교사 제이 미챌 쉘리(J. Michael Shelley)는 이 땅에 적응하지 못하고 딸의 건강문제로 일년도 채우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다른 한편, 감리교회 목사들이었던 동석기(董錫祺)와 강명석은 미국에 유학하여 공부하던 중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접하게 되었고, 1930년과 1936년에 각각 귀국하여 '기독지교회' 운동에 합류함으로써 발전의 물결을 타게 되었다.


 

 

 

1.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엇을 주창하는가?
    
What does the Christian Church or the Church of Christ advocate?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회의 일치와 성서의 권위회복과 회중주의를 표방한다.

2. 그리스도의 교회는 또 하나의 다른 교파인가 혹은 어떤 운동인가?
    
Is the Christian Church or the Church of Christ an another denomination or a movement?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파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일에는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되기를 원하며(엡 4:1-6), 성경, 보다 구체적으로는 신약성경, 즉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에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신약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로의 환원을 외치고 있다. 이 외침을 환원운동이라 부른다.

3. 환원운동이란 무엇인가?
    
What is the Restoration Movement?

환원운동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순수성, 단순성, 본래성에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환원운동은 개혁이나 혁명, 또는 혁신과는 성격이 다른 원상복구운동이다. 이 운동은 첫째가 하나 되자는 운동이요, 둘째가 성경에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요, 셋째가 회중이 주체가 되는 민주교회를 하자는 운동이다.

4. 현재 이 운동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How big is this movement at present?

이 운동은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써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만 3개파에 2만 3천여 교회와 3백70만여 성도들이 이 운동에 소속되어 있다. 이 운동은 1920년대에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발생되어 '기독의 교회'라 불렀고, 1930년 중반부터 입국하기 시작한 미국 선교사들이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교회를 소개함으로써 피차 공통점이 있음을 알고 협력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한국에는 360여 교회가 이 운동에 소속되어 있고, 세 개(현재는 두 개)의 신학교를 거쳐간 타 교단의 많은 목회자들이 이 운동에 공감하고 있다.

5. 이 운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When did this movement begin?

교회 일치와 성경에로 돌아가려는 운동은 역사 속에서 자주 있어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마르틴 루터, 쯔빙글리, 죤 깔뱅, 마르틴 부쳐와 같은 이들에 의해서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운동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교회를 쪼개는 것이었기에 그 이후로도 개혁이라는 이름아래 개신교회들이 끝없이 분열을 거듭하였다. 이 분열의 아픔에서 시작된 것이 환원운동이다. 개혁가들은 분열의 아픔을 겪을 때마다 초대교회의 순수성, 단순성, 본래성에로 돌아가 일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자각이 기독교 역사 속에서 자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자각이 하나의 운동으로 일어난 것은 200여년 전 미국에서였다.

6. 미국에서 일어난 환원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How did the Restoration Movement begin in the United States?

16세기 종교개혁이후 개신교 안에 분열이 심각해지면서 성경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자각이 18세기 말엽 미국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작은 움직임을 본궤도에 오르게 한 시발점으로 켄터키(Kentucky)주(州) 부르본(Bourbon) 카운티(County) 케인리지(Caneridge)를 중심으로 일어난 발톤 스톤(Barton W. Stone)의 운동과 펜실베니아주 워싱톤군을 중심으로 일어난 토마스 캠벨(Thomas Campbell)의 운동이 특별히 거론된다. 이 두 운동은 문서의 낭독으로 시작되는데 다음과 같다.

1804년 6월 28일, 발톤 스톤과 동역자들은 오하이오 주와 켄터키 주 접경지역에 흩어져 있던 15개의 교회로 구성된 스프링필드 장로회를 해체하면서 {스프링필드 장로회의 유언서}(The Last Will and Testament of the Springfield Presbytery)라는 문서를 낭독하였다.

이 유언서 첫 조항에서 이들은 말하기를, "본 장로회는 죽고, 해체되어, 넓은 범위의 그리스도의 몸에로 연합하기 위하여 침몰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오직 한 몸, 한 성령만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의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기 때문이다"고 하였고, 이어지는 조항들에서는 "한 주(主)만이 계시므로 목사에 대한 높임 칭호인 Reverend를 쓰지 않겠다"고 하였고, "사람들은 성경으로 돌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채택할 것이기 때문에 교회를 치리할 법령이나 위임된 권위로 그들을 처벌할 권한을 영원히 멈춘다"고 하였다. 다른 조항에서는 말하기를, "복음사역을 위한 후보자들은 지금으로부터 열심있는 기도로 성서를 연구하며, 철학과 헛된 속임수와, 인간의 전통과 세상의 초보적인 지식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로부터 부으시는 성령으로서  단순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자격을 얻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이 유언서는 목회자의 선택이나 책임은 물론 교회행정과 치리에 있어서 회중적이고 개교회 중심적일 것을 선언하였다. 또한 성경 한 권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인도자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피차 관용의 정신을 키우고, 기도에 힘쓰며, 분쟁을 줄이고, 시대의 징조를 살펴 구속의 날을 고대할 것을 강조하였다.

1809년 9월 7일, 토마스 캠벨은 '선언,' '제언,' '부록' 그리고 '후기'로 구성된 56쪽의 {선언과 제언} (Declaration and Address)이란 문서를 낭독하였다. 이 가운데 제언에 나타난 13개의 명제(Thirteen Propositions)는 이 운동의 핵심헌장과 같은 것으로써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지상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의도적으로 구조적으로 하나이다.

    2)지상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지역적으로 여러 장소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지역 교회들간에 갈라져서는 안된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같은 법칙으로 보조를 맞추고, 같은 것을 말해야 한다.

    3)성서만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믿음과 실천의 유일한 규범이다.

    4)신구약성서 모두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지만, 특히 신약성서는 신약교회의 예배, 훈련 및 치리를 정한 완전한 헌법이며, 교회 구성원들의 의무를 정한 책이다.

    5)신약성서가 말하는 것 이외에, 어떠한 인위적인 권위도 교회에 새로운 명령이나 법령을 부과할 수 없다.

    6)성서해석학적으로 내려진 추론은 교리적으로 가치 있고 유용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얽어매는 일에 사용될 수 없다. 사람의 믿음은 인간의 지혜에 서지 아니 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진리 위에 서야 한다.

    7)성서해석학적으로 내려진 견해의 차이를 친교의 시금석(tests of fellowship)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8)교인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독특한 지식이나 특출한 이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가련한 상태에 대한 인식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에 대한 믿음과 말씀대로 모든 일에 그 분에게 순종할 것을 고백하는 것으로서 충분하다.

    9)이와 같이 신앙을 고백하고, 행실로서 믿음의 결과를 보인 사람들을 하나님의 귀한 성도로서 인정해야 하며, 형제자매로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

    10)기독교인들 사이에 갈라짐은 마땅히 멀리해야 할 비기독교인적이며, 비성서적이며, 비자연적인 것이다.

    11)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 대한 태만과 인위적인 견해를 수용함이 과거와 현재에 발생된 모든 부패와 분리의 원인이다.

    12)지상의 교회가 가장 완전하고 순수한 상태로 회복되는 길은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 분에 대한 순종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교인으로 받아 들어서는 안 된다. 둘째, 행실로서 믿음의 결과를 보이지 않은 사람은 교인으로 남을 수 없다. 셋째, 자격 있는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하게 표현된 것 이외는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목회자는 초대교회가 준수했던 모든 신성한 법령을 인간의 견해나 개조 없이 신약교회가 준수했던 방식 그대로 준수한다.

    13)성서가 침묵하고 상황이 요구하는 일의 결정은 필요에 따른 인간의 조치로서 보아져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결정에 따른 준행여부나 변경 또는 견해의 차이로 인해서 교회가 분란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이들 운동의 핵심내용은 교회연합과 성경의 권위회복 그리고 교회의 회중성이다. 특히 이들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모든 성도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한 개교회 중심의 회중정치를 표방하였으며, 성경만을 교회의 유일한 규범으로 삼았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것을 침묵하자는 정신이었다.

7. 이 운동을 가장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은 누구인가?
    
Who was the most leading person in the movement?

이 운동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행한 사람은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1788-1866)이었다. 알렉산더 캠벨은 19세기 초반에 활동한 훌륭한 신학자요, 교육가요, 저술가요, 사업가요, 변론가였으며, 환원운동을 주창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운 최초의 목사였다. 알렉산더 캠벨은 성서번역 사업에 관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글을 남긴 신학자요, 베다니 대학을 세우고 가르친 교육가요, 출판사와 농장을 경영한 사업가요, 양의 품종까지도 개량한 영농가였으며, 무신론자이며 협동조합의 창시자인 로버트 오웬과의 토론을 비롯해서 천주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의 유력인사들과 모두 다섯 차례나 공개토론회를 가졌던 변론가였다.

8. 한국에서 일어난 환원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How did the Restoration Movement begin in Korea?

한국에서의 환원운동은 구세군 사관 출신의 성낙소 목사가 1927년 1월 1일 충남 부여군 세도면 화수리에 '기독지교회'(基督之敎會)를 세우면서 자생적으로 발생되었고, 1930년에는 일본에서 사역하던 미국인 선교사 커닝함이 그곳 한국 유학생을 통해서 성낙소의  '기독지교회'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성낙소를 일년 반 동안 일본에 초청함으로써 처음으로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소속 선교사들인 커닝함과 채이스를 만나게 되었다. 채이스는 1936년 한국 최초의 선교사 제이 미챌 쉘리(J. Michael Shelley)의 추천으로 두 번째 선교사로 입국하여 크게 활동하였으나 1935년에 입국했던 최초의 선교사 제이 미챌 쉘리(J. Michael Shelley)는 이 땅에 적응하지 못하고 딸의 건강문제로 일년도 채우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다른 한편, 감리교회 목사들이었던 동석기(董錫祺)와 강명석은 미국에 유학하여 공부하던 중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접하게 되었고, 1930년과 1936년에 각각 귀국하여 '기독지교회' 운동에 합류함으로써 발전의 물결을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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