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석(1902.5.14음-1963.1.21양) 목사


사진제공: 김성철 목사
스캔수정: 조동호 목사

  • 본적: 황해도 평산군 평산면 당구리 (속칭 붉은 바위 마을)
  • 생념월일: 1902년 5월 14일생(음력)
  • 소천월일: 1963년 1월 21일(양력)
  • 소천장소: 충남 논산군 부적면 충곡 2구 최봉석 장로댁 (고 명달재 목사 장인)
  • 묘지: 충남 충곡 2구 공동묘지
  • 참고자료: 목포 그리스도의 교회 50년사

김은석(金銀石) 목사는 황해도 평산군 평산면 당구리 출생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며, 성경을 학문적으로 탐구했다기보다는 기도하는 가운데 다독하면서 성령의 영감을 통하여 체득하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활동하며 전도할 때에 어느 누구고 간에 예수를 믿고 싶은 마음이 아니 생겨 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크게 활약한 사람이었다.

김은석은 원래 장로교 출신으로 중국등지에서 전도하다가 신사참배로 어려운 난관에 부딪치자, 다시 한국에서 장로교 전도자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피해 왔다가 한국에서 더욱 압박이 가해지자, 증명없이 일본에 들어가 노동판을 전전하면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 때부터 복음이 발산되기 시작하였다.

증명없이 일본 땅을 밟았다는 이유로 늘 쫓겨 다니면서도 주일이 되면 교회나 교인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니며 예배를 인도하였는데, 이 때 김명석 전도사와 박점상 목사를 만났고, 산구현 도구야마시 가스가조 8032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교회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김명석이 25세 때에 일본에 건너가 탄광과 노동판을 전전하며 5년 동안 벌어 모은 돈으로 집을 한 채 사서 교회를 시작하였는데, 그 때 모인 숫자가 300명 가량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교회는 성장하는데, 일본 순사가 김은석 목사를 체포하여 경시청에 끌고 가서 묻기를 가미사마가 더 높으냐, 그리스도가 더 높으냐고 물었고, 김은석은 가미사마는 일본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지만, 그리스도는 온 세상에서 높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더 높다고 하여 무지한 고문을 당하였다.

김은석은 석방 후에도 항일 선동을 하며 전도를 하였고, 한번은 경시청으로부터 체포되기 직전에 교회순회를 나가버려 체포를 모면하였고, 또 한번은 1944년 초 고국에 계신 모친의 위독 소식을 듣고 귀국하는 바람에 체포를 모면하였다. 그후 해방이 되었고, 한일해협이 봉쇄되는 바람에 일본에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전도하다가 장로교 청주노회로부터 부강교회를 파송받아 부임하면서 100회 집회를 선언하고 시작하여 성령의 강한 역사를 일으키며 교회를 부흥시켰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노회로부터 자제하라는 명령이 시달되었다. 그러나 김은석은 자신의 부흥운동이 인간의 사역이 아니라, 성령이 하시는 사역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부흥운동을 지속하였고, 결국 노회로부터 제명처분을 받게 되었다.

제명이후 김은석과 성도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김규상 목사의 모친 구집사의 집 대청마루로 예배처를 옮겨 수 개월 모이다가 60평 규모의 예배당을 짓고 신약교회인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하였다.

김은석은 힐 요한 선교사가 서울 송월동에 세운 연경원(硏經院)이라 부른 '그리스도의 교회 신학교'에서 공부하였으나 성령론에 뜻이 맞지 않아 도중에 학업을 그만두고, 의견이 일치하는 신현창(申鉉昌) 장로와 협력하여 '신화신학 성경연구회'를 열어 뜻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이것이 그 원근의 교회에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고, 때로는 그 수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 그들이 가르치는 성경말씀은 영감적인 것이어서 배우는 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였고, 전도의 사명이 불붙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런 뜨거움을 체험한 사람들이 충청도 전라도지방에 나가 전도함으로써 충북 부강교회, 수리교회, 수룡교회 등 많은 개척교회가 생겼고, 타 교단에서 교회 전체가 환원운동에 참여하는 일도 많이 나타나 김은석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된 교회들이 무려 80여 개에 이른다. 이처럼 많은 활동을 하다가 1963년 1월에 충남 연산에서 가까운 부적면 충곡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1946-1955년초까지 신화신학 성경연구회에서 공부하였던 목회자들로는 정찬성, 장주열, 김명석, 김재순, 최요한, 김상호, 구광서, 심영진, 박점상, 김규상, 이원로, 김정만, 함창현, 김동렬 등이 있다. 이밖에 김교인 장로의 아들 김태수, 김철수, 김명석 전도사의 아들이자, 김은석 목사의 수양아들 김성철 등이 부강교회 출신 그리스도의 교회 목사들이며, 이신도 6.25때 광주에서 김은석 목사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다. 이처럼 많은 인재들이 김은석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하여 목회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박점상 목사의 대전 침례신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나서
(좌측부터 박점상 목사, 김은석 목사, 김완례 사모)
참고로 이 건물은 1957년 11월에 완공되었으며, 박점상 목사는 1956에 입학하여 1960년 초에 졸업하였다. [사진제공 장성우 목사, 출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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