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내가 본 김동열 목사님
2. 내가 아는 김동열 목사님
3. 내가 들은 김동열 목사님
40∼50년 전 추억을 더듬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귀 목사님에게 잘못된 말로 누가 되지 안을까 조심스럽다. 그러나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 건전한 뿌리를 찾고 밝히고자 하는 좋은 목사님들이 많이 계시다는 점에서
볼 때 경의와 함께 협조하겠다는 생각에서 펜을 들었다. (다만 반세기 이전의 일들을
기억에 의존하여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에 정확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점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1. 내가 본 김동열 목사님
내가 본 김동열 목사님을 지금도 존경한다
단단한 체격에 키는 166∼67m 정도이고 얼굴은 네모형으로 옆으로 어금니를 하고
아주 약고 깜직한 형이다.
내가 처음 목사님을 뵌 곳은 부강 역전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2번 정도였고, 그 다음은
내가 처음 전도사로 부임했던 전남 무안군 현경면 평산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뵈었는데
그 때가 1957년도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 떼받이등이라고 하는 청학동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뵈었고, 그리고 한참 후에 괴산군 소수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뵙고는 지금까지
못 뵈었다. 이 분의 신앙과 성격은 다분히 사도 바울처럼 사도적이었다.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되지 않은 신앙은 모두가 마귀였다. 바로 회개하지 않고 거듭나지
않은 자에게는 인사도 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고, 동참하지도 말라. 부모라
할지라도 예수 믿지 않으면 마귀다고 하셨다. 그러니 가지도 말고 절도하지 말라
라고 할정도로 칼날처럼 아주 예리하고 무섭고 엄하셨다. 그리고 이 분의 강의는
육가원칙에 따라 논리적이었고 질서 정연하였다. 어느 누구도 이 분의 원칙논리를
꺽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 분에게 밀린 사람들은 할말이 없으니까 괴변가라고도 하였다.
괴변가라는 말 속에는 말을 잘하는 말쟁이라는 뜻이 담겨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래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초창기 때 내가 아는 김은석, 김재순, 정창석, 장주열,
김상호, 최요한, 최요열, 김주일(이상 목사), 이한성 장로, 김장로 등 많은 분들과
조화되지 못하고, 모이고 만나면 교리문제를 놓고 토론하며 다투고 논쟁하다 헤어지면,
김재순 목사님은 이곳 저곳을 오가며 눈물로 화해를 시키려고 애쓰셨다. 말이 났으니,
고 김재순 목사님은 지금의 김태수, 김철수(미국에서 목회)목사님의 친 형님이시다.
이 분이 나의 약혼식 주례를 하셨고, 고 김은석 목사님은 1957년도 가을에 나의 결혼식
주례를 해주신 분들로 참으로 존경하는 분들이시다.
2. 내가 아는 김동열 목사님
김동열 목사님의 부친은 순교를 하셨는데,
김용환 목사님이시다. 김용환 목사님은 일제말엽 때 목사로서 복음을 전하시다가
신사참배 거부 문제로 투옥을 당하셨고, 많은 고문과 고통을 받던 중에 해방을 맞이하여
출감하셨는데, 오갈 때가 없어서 부강 그리스도의 교회 사택에서 간호를 받으시면서
기거를 하실 때에 내가 딱 한번 뵌 기억이 난다. 연세는 어떻게 되셨는지는 모르고
후리후리한 키에 깡마른 얼굴과 움푹 들어간 눈, 뾰족한 턱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기운이 없어서 사람들이 옆에서 부축하여야만 걷고 일어설 수가 있었는데, 그 분의
설교하시는 목소리는 장정이 힘있게 말하는 것처럼 낭낭하였고 우렁찬 목소리였다.
그 당시 내가 들은 설교는 신천신지를 말하는 천국론이었다 그 당시 나는 어려서
몰랐는데 들은 사람들은 꼭 천국에 온 것처럼 기뻤다고 한다. 그 당시 내가 듣기로는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아주 귀하고 유명한 목사님이시었다. 또 들은바로는 김동열
목사님이 저렇게 성경을 잘 알고 그 어느 학자보다도 유명한 것은 그의 부친이신
고 김용환 목사님이 연구해서 기록한 노트를 보고 깨닫고 안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또 성경 주석가인 박윤선 목사나 박클레이 목사의 주석 학문보다 한 단계 더 앞선다고
한다고도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귀하신 그의 부친이 부강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순교를
하셨다는 소식을 소문으로 알았다. 그래서 우리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산실은 부강교회가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부강교회에서 김용환 목사님이 순교하신 것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고 김은석 목사님과 부강교회 집회들에
관한 회고>
해방 이후에 고 김은석 목사님을 중심해서 부강에 자리를 잡고 전국에 있는 교회에
열심 있는 성도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어떤 법도 규칙도 머리도 꼬리도 없이 그냥
모여서 그냥 듣고 보고 배우고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거리에 나가거나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고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와보라고 할 때에 큰 기적이
일어났다. 각종 병자가 모이고 미친 사람들이 와서 예수 이름 듣고 놀래서 단숨에
도망을 치다가 신탄진 강에 빠져 죽은 사람도 있었고, 거품을 흘리며 뒹굴며 은혜
받고 춤추다가 옷이 벗어진 사람도 있었다. 이곳을 가칭 부강 역전 임마누엘 성서신학교라고
한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이혜순, 나연찬, 김태수, 김철수, 심영진,
박병우, 김정만, 박점상, 김은성, 김은영, 모갑경 등등이었다.
당시 부강에서 성경공부를 하려고 모인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가난했다. 나도 그랬지만,
대략 모인 사람들이 100-150명 이상이었는데, 항상 있는 사람은 7-8명 정도로써 대략
식량을 가져오는데 1-2말 가져오고 반찬도 제각기 가져오고 그래서 부족한 식량을
채우기 위해서 부강 근처 들녘으로 가서 버려진 배추잎 무쓰래기 고구마줄기 같은
것 그리고 장날이면 장터가에 버려진 먹을만한 것들을 주어다가 충당을 하고 없으면
금식하고 그러다가 힘들면 집으로 돌아갔다. 마치 전기충전소와 같이 은혜와 말씀이
그리우면 또 약간의 양식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러면서도 불만이 없고 그저 형제자매
모매님 하면서 걱정해주고 위로하였다. 환자가 많이 왔는데, 함께 간호하고 기도하며
누가 무엇을 시키지도 않고 무엇을 하라는 감독도 없었다.
전남 지방에서 많은 성도들이 왔고, 주로 청주와 대전근방에서 왔다. 충주에서 이종석,
이갑수, 정석기, 이원로, 조춘식, 김정만, 지철희, 이안식, 이학재 등이 왔다. 좀더
이야기를 하자면, 설교를 듣다가 너무나 기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찬송이 나오고,
결국에는 설교자나 듣는 이가 자연히 합창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성령이 강하게 역사 하시면 무릎을 꿇은채로 30-40㎝까지 뛰기도 하였다. 얼마나
뛰었는지 결국 마루 장까지 꺼졌다 한다. 그러다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면 부강 장날
거리를 급히 오고 가면서 외치기를 이 썩은 보리찬밥 덩어리들아 회개하고 돌아와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 생명 떡으로 배불림을 받고 쉼을 받으라. 그리하면 영생을
얻으리라 라고 외쳤다.
고 김은석 목사님의 설교는 대략 열변이 아니고 조용한 강의식이었다. 신구약 성경을
오가면서 구약에서 물으면 신약에서 답을 하고 신약에서 물으면 구약에서 답이 나오는데
정확하고 일반적으로 아는 답보다 훨씬 새로웠다. 그래서 듣는 이가 무릎을 치며
기뻐하고 감사하곤 했다. 내가 보기로는 어느 성경학자보다도 더 성경을 많이 알고
성경을 통달한 분이었다.
어느 산이든 풀밭이든 앉으면 그 자리에서 밤새워 기도하고 쉬고 먹는 시간외에는
성경을 보고 찾는데, 성경이 걸래 쪽같이 낡고 찢어진 것을 보았다. 그래서 많은
목사들이나 성도들이 존경하고 그에게 모인 것 같다. 그 당시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가장 엄격히 가르친 것은 동참 죄를 가르친 것 같다. 그리고 우상타파와 그리고 기성교회
목사들은 바리새인들이다. 그리고 세례 성찬을 왜곡함으로 구원받는 문제도 그들은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일반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단이라고 했을
것이다.
3. 내가 전하여 들은 김동열 목사님
어느 때였는지 또 어느 교단 목사들었는지
또 어느 역에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사들이 많이 탄 기차객실에서 김동열 목사님이
노방 전도를 하였는데, 때는 한여름인 지라 모두다 시원한 여름 옷차림을 하였는데,
김동열 목사님은 겨울 가죽잠바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여러분들이여 주 예수님을
믿고 나같이 큰 복을 받고 영생하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큰소리로 외치자 객차 안에
손님들이 듣고 코웃음치며 폭소가 터져 나왔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차안에 있던 여러
목사들이 비웃고 무시하면서 던지는 말이 영생은 이생에 있는 거요? 내세에 있는
거요? 묻는 말에 대답은 그들이 두 번 다시 묻지 못하도록 하는 답을 하였고, 오히려
목사님의 설교에 숙연하였고 나중에는 은혜를 받고 더 많은 설교를 들었으면 하고
아쉬워 하였다고 한다.
새벽이면 광주시내 모 공원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하였는데
전도하는 설교의 말씀에 매료되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듣곤 하였고도 전한다.
한번은 헌병 백차가 앞에서 가고 군대가 행군을 하는데 군대 행렬을 멈추게 하고서
군인들도 예수를 믿고 천당에 가야 한다고 전도를 하였는데, 지휘관이 왔다가 오히려
은혜를 받고 군 작전을 방해한 죄를 용서받았다고 한다. (군 작전을 개인이 방해하면
즉시 총살형을 받았다고 한다.)
남편이 보따리를 가지고 큰 장사를 하였는데, 부인에게 이 날도 일찍이 장사하러
가야겠으니 새벽 아침을 하여 달라고 하는 남편 말에 쌀 바가지를 들고 집 앞 우물가에
쌀을 씻으러 나왔다. 마침 전도를 하러 가는 중에 목사님은 이 여자를 만나서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하였는데,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고 남편이 부탁한 말도 잊고 목사님의
설교말씀 속에 끌려 들어갔다. 남편은 이 때나 밥상이 들어올까 저 때나 밥상이 들어올까
기다리다가 아무 인척이 없어서 우물가를 나와 보니 아직도 쌀바가지를 들고 얼굴이
상기된 채 설교를 듣고 있더라고 하였다. 그 일로 후에 남편도 결국 예수를 믿었다고
한다.
김동열 목사님에게 은혜를 받은 군의관(당시 중위)이 있었다. 이분은 김동열 목사님이
직접 데리고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 있는 소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왔을 때 나도 직접
본 사람이다. 전방 모 부대에 근무하는 장교였지만 주일 날이면 어떠한 댓가를 지불하고라도
반듯이 전남 광주시 금동 1번지에 소재 한 그리스도님의 교회에 와서 목사님의 설교을
들어야 한다고 하는 분이었다
전남 함평군 존불면 신흥리에 신흥교회가 있다. 그 당시 박모 전도사가 담임하였고,
김동열 목사님에게 은혜 받고 그의 심복이 되었다. (이 교회는 나 지철희 목사의
처 고모님이 나가는 교회다.) 어느 날 박 전도사의 아들인지 딸인지가 병이 들어
죽었다. 그런데 시체를 안고 집집마다 거리마다 다니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라, 부활한다고 했다고 한다.
처 고모님에게 직접 들었는데, 그리스도의 교회 목사님들을 포함한 모든 목사님들은
목사로 인정하지를 않고 교인들도 더욱 그러하였으며 오직 당신이 보고 아는 성경말씀대로
알고 믿으면 형제요 자매이고 당신이 가르친대로 믿어야 된다는 편이 강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든 아니든 교제를 단절하고 오직 나, 여기, 여기라고
하는 편이 강하였다.
하나님의 종이 또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을 안 믿는 자는 마귀의 종인데, 하나님을
안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찌 절을 하며, 어찌 인사를 하겠느냐? 또는 찾아가겠느냐?라는
식의 사상이 강하였다. 내가 본 견해로서는 그렇다. 그래서 처 고모님은 친정에를
못 오고 간혹 와도 마음이 괴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카사위 된 나와 토론을 많이
한 적이 있다. 그때 나의 대답은 사람 속에는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의를 쫓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이요 악이 함께 하도다" 하신 말씀처럼 악은 죄이다.
그러나 주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셨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동열 목사님은 특히 로마서 강해의 권위자로서 다른 복음서도 외우지만, 로마서는
아침 밥상을 받아놓고 꼭 1장 1절부터 끝장 끝 절까지 다 외운 후에 밥을 드셨다는
말도 있다.
지금까지 쓴 글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김정만 목사와 미국에 가 있는
양정식 목사에게 들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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