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10가지 이유
10 Reasons to Believe in a God Who Allows Suffering

출저 http://www.gospelcom.net/rbc/rtb/4rsn/
번역 조동호 목사


1. 고난은 선택의 자유와 함께 온다.

사랑이 많은 부모들은 불필요한 고통으로부터 그들의 자녀들을 애타게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부모들은 과잉보호의 위험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택의 자유가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는 핵심이라는 것과 선택이 없는 세계는 고통이 없는 세계보다 더 나쁠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더욱이 나쁜 것은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그릇된 선택들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로 채워진 세계일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악을 느끼지 못하는 거짓말쟁이와 도둑 또는 살인자(창 2:15-17)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2. 고통은 우리들에게 위험을 경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싫어합니다.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몹시 싫어합니다. 그러나 아픈 데가 없다면, 환자는 의사에게 가지 않을 것입니다. 수명이 다된 육체들은 어떠한 휴식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범죄자들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꾸지람을 비웃을 것입니다. 양심의 고통과 불만스런 매일의 권태 또는 의미에 대한 공허한 갈망이 없이는, 영원한 아버지한테서 만족을 찾도록 만들어진 사람들이 그보다 훨씬 못한 것에 안주할 것입니다. 쾌락에 빠져 고통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던 솔로몬의 경우를 보면, 우리들 가운데 가장 현명한 이들조차도 그들 자신의 단견(短見)적인 선택들로 기인된 고통에 사로잡히기까지 좋은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전 1-12; 시 78:34-35; 롬 3:10-18).

3. 고난은 우리들의 마음에 있는 것을 밝혀냅니다.

고난은 종종 다른 사람들의 손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자신의 마음들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는 일종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 자비, 분노, 질투, 그리고 자만에 대한 능력들은 환경에 의해서 일깨워질 때까지 동면(冬眠) 상태일 수 있습니다. 마음의 강약은 모든 것이 우리들 뜻대로 이루어질 때가 아니라 고난과 유혹의 불꽃들이 우리들 성격의 근성을 시험할 때 발견됩니다. 금은(金銀)이 불로 연단 되듯이, 그리고 탄소가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압력이 필요하듯이, 인간의 마음은 시간과 환경의 압력과 열을 견딜 때에 드러나고 개발됩니다. 성격의 강점은 우리 주변세계와 더불어 모든 것이 태평할 때에 보여지지 않고, 인간에게 고통과 고난이 있는 곳에서 보여집니다(욥 42:1-17; 롬 5:3-5; 약 1:2-5; 벧전 1:6-8).

4. 고난은 우리들에게 영원의 문턱으로 데려갑니다

만약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고난으로 가득한 삶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생의 마지막이 우리들을 영원의 문턱으로 데려간다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서 이생이 우리가 살아야만 하는 모든 삶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자들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그들 자신들과 그들의 영원하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을 헛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가난과 슬픔과 배고픔이 그들을 영원하신 주님께로 몰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1-12; 롬 8:18-19)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끝없는 기쁨을 발견할 자들입니다.

5. 고통은 이생의 애착을 느슨하게 합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리들의 업적과 견해들은 점차 잊혀지게 됩니다. 우리의 육체들은 지탱하기에 점차 거추장스러워집니다. 점차적으로 그들은 피할 수 없는 노쇠에 굴복 당합니다. 관절들이 굳어지고 염증이 생깁니다. 눈들은 희미해집니다. 소화는 더딥니다. 잠들기가 어려워집니다. 문제들은 점점 크게 보이고, 선택의 여지는 좁아집니다. 그러나, 만약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날의 시작이라면, 노년의 저주는 또한 축복입니다. 각각의 새로운 고통은 이생에 대한 집착을 끊고 내생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게 합니다. 그 자체의 방법으로 고통은 우아한 출발을 위한 길을 닦습니다(전 12:1-14).

6. 고난은 하나님을 신뢰할 기회를 줍니다.

모든 시대를 걸쳐 가장 이름 난 고난자는 욥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욥은 "대풍(大風)"에 그의 가족을 잃었고, 전쟁과 불에 그의 재산을 잃었으며, 고통스런 악창에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은 왜 그것이 일어나고 있었는가를 욥에게 결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욥이 자기 친구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동안에도 하늘은 침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대적 사탄이 하나님을 섬기는 욥의 진심을 파악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결코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에 대한 욥의 믿음을 시험해보도록 사탄에게 허락하신 것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출산하는 산양들과 사냥에 관한 젊은 사자들 그리고 둥지의 까마귀들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타조의 습성과 황소의 힘 그리고 말의 큰 걸음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경이로움과 바다의 놀라움 그리고 계절의 주기를 언급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천체를 지을만한 능력과 지혜를 갖고 계신다면, 고난의 때에도 동일한 하나님을 신뢰할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욥 1-42장)고 결론짓는 일은 욥의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7. 하나님은 우리들의 고난 가운데서 우리와 더불어 고난을 겪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보다 더 많이 고난받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세상에 죄가 유입된 대가를 더 값비싸게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타락한 인류의 고통에 대해서 그렇게 지속적으로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분 자신의 아들의 십자가에 처형된 몸을 통해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신 분처럼 고난받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양팔을 뻗은 채 죽음으로써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그분보다 더 고난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고 있을 때와 우리 자신의 사랑하는 이들이 우리 앞에서 울부짖을 때에 우리들을 그분 자신께로 이끌면서 그분을 신뢰하도록 요청하시는 분은 이 하나님이십니다(벧전 2:21; 3:18; 4:1).

8.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가 겪는 고난보다 더 큽니다.

사도 바울은 확인되지 아니한 고난의 근원을 제거해 달라고 주님께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고 말씀하시면서 거절하셨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바울은 그리스도 없이 좋은 건강과 즐거운 환경에서 살기보다는 오히려 고난 중에 그리스도와 함께 지내는 것을 배웠습니다.

9. 위기의 때에 우리는 서로를 발견합니다.

어느 누구도 고통과 고난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위안이 될만한 것이 조금은 있습니다. 자연재해들을 만나거나 위기의 때에 우리들은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태풍들, 화재들, 지진들, 폭동들, 질병들 그리고 사고들 등을 통해서 우리들은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갑자기 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과 인명이 재물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서로 필요하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생각해냅니다. 매번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발견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우리의 능력이 증가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다음의 글을 기록할 때에 마음에 두었던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

10. 하나님은 우리들의 유익을 위해서 고난을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이 진실은 성경의 많은 예문들에서 가장 잘 보여집니다. 욥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또한 뒤따라오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자료가 되었던 한 사람을 봅니다. 요셉이라고 불린 한 사람의 거절, 배신, 노예상태 그리고 부당한 투옥을 통해서, 우리들은 그에게 상처를 입혔던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창 50:20)고 결국 말할 수 있었던 어떤 사람을 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이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향해서 울부짖을 때, 우리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고난 중에서 사형집행인의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외쳤던 그분의 영원한 결과와 기쁨을 바라볼 이유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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