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평 목사
 


 

배구인 송만덕, 송만기, 박미희 성도, 연예인 현미, 조정희, 하청일, 김학준 성도, 예술인 조승미 교수, 이진경, 서차영, 한진섭 성도, 탤런트 김수미 성도,발레리나 서채영 교수,소프라노 강미자 교수 등, 성도 1천여명이 출석하는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

 

 

영동그리스도의교회 이강평 목사

 

 

□약력

△1944년 서울 출생
△한양대 체육대학 교수
△대한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
△운동선수 출신 국내1호 체육학박사

 


말씀+예술… 환상의 '문화목회'
 


[21세기를 여는 목회자]

운동선수 출신 국내1호 체육학 박사
평일엔 교단, 주일엔 설교 '두 토끼 몰이'
교인 재능계발 독특한 목회법 눈길

 


목회(牧會)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목회는 양들을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거룩한 생명여행이다. 목자(牧者)는 양의 마음을 읽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목장의 울타리를 활짝 열어놓고 풍성한 꼴과 시원한 생수를 제공하는 ‘열린 목회’를 지향하는 목회자가 있다. 이 목회자는 ‘문화를 통한 선교’라는 독특한 슬로건을 내걸고 21세기 지도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서울 대치동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 이강평목사.그는 찬양과 무용과 뮤지컬이 함께 어우러진 ‘문화 목회’로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한양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올해로 20년째 ‘교육’과 ‘목회’라는 두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교수와 목사직을 병행한다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한국교회 10만명의 교역자중 전문직을 가진 몇 명의 목회자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삶의 현장에서 얻어진 경험들이 목회에 도움을 주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목사는 체육학 박사 제1호다. 운동선수 출신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체육계에서 그는 ‘국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그러나 이목사가 ‘눈물 젖은 빵’을 곱씹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목회를 펼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목사의 청소년기는 우울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1학년을 중퇴했다. 어느날 그는 대신중학교 배구선수들의 연습경기를 구경했다. 운동장 주변에서 공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우연히 연습경기의 세터로 기용됐다. 이강평은 주전세터보다 출중한 기량을 선보였다.감독은 소년에게 물었다.

“어느 중학교에 다니지”소년은 머리만 긁적였다.그리고 모기 울음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학생이 아니예요.중국집 배달원입니다” “그럼 당장 대신중학교에 들어와라.배구에 소질이 많구나”소년은 그 날부터 다시 교복을 입었다. 그는 ‘컴퓨터 세터’란 칭찬을 들으며 배구선수로 한양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신장의 열세로 항상 국가대표에서 밀렸다.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소년은 그때 두 가지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그것은 한국 최초의 ‘체육학 박사’와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시험에 응시했다. 그러나 낙방, 낙방….무려 여섯 번이나 낙방했다. 낙방할 때마다 더욱 강하게 일어나는 유학의 열정. 그는 일곱번째 시험에 합격해 꿈에도 그리던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1969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공항. 비행기가 도착한 시각은 새벽 3시. 승객들은 마중 나온 친지들의 환영을 받으며 썰물처럼 공항을 빠져나갔다. 정적이 감도는 공항에서 소년은 주머니에든 지폐를 만지작거렸다. 성경 책과 7달러…. 그가 가진 전재산이었다. 공항 경비원이 눈을 부라리며 소년을 내쫓았다.

이튿날 아침, 이강평은 1달러 10센트를 주고 햄버거를 사먹었다. 그리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유태인이 운영하는 뷰티 살롱에 붙은 ‘원티드’(Wanted·구인)라는 글씨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하루에 전단지 2천장을 뿌리면 20달러의 급여가 주어졌다. 닷새동안 일해 번 돈 1백달러, 자신감이 생겼다. 그가 용기를 내어 찾아간 곳은 UCLA대학교. 먼저 체육관에 들어섰다. 그는 장신의 미국선수들 앞에서 환상적인 A퀵과 B퀵을 선보였다.

엘스케이츠감독은 즉석에서 이강평을 헤드코치로 기용했다. UCLA대학은 이듬해 대학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그는 운동을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성경을 읽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은 그를 지탱해준 영적인 자양분이었다.

그후 이강평은 밴더빌트 대학교에 입학했다. 미국인 친구들은 하루에 20시간씩 공부하는 그를 ‘지독한 공부벌레’라고 불렀다. 낮에는 체육학을 공부하고 밤에는 테네시컨퍼런스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때 마침 올림픽 국가대표 여자 배구팀의 감독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지원서를 제출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지원자들을 물리치고 이강평은 한국인으로서는 전무후무한 ‘미국 대표팀 감독’에 발탁돼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6위를 차지했다.

1978년. 그는 꿈에도 그리던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목사’와 ‘박사’라는 두 가지 선물을 안고 조국을 찾았다. 모교인 한양대 교수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목회를 포기하는 것이 일종의 직무유기로 느껴져 괴로웠다. 그래서 이듬해 3월 셋째 주일, 그의 집에서 일곱 가정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바로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의 탄생이었다.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금 1천여명이 모이는 전형적인 중형교회다. 양들도 목자를 닮아서 독특한 달란트를 갖고 있다. 배구인 송만덕 송만기 박미희씨, 연예인 현미 조정희씨, 예술인 조승미 이진경 서차영 한진섭씨 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유명인들이 많다.

“지금까지는 신자들의 달란트를 개발시키지 못했어요. 지난 8월부터 예술을 예배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는 ‘열린 문화예배’를 시작했습니다.이때부터 인근의 불신자들이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21세기는 평신도들의 역할이 점점 커질 것입니다. 결국 목회자와 신자들이 공동목회를 하는 셈이지요”

이강평목사의 설교는 물기가 배어 있다. 신자들은 그의 설교에서 ‘땀’과 ‘눈물’을 읽는다. 암울한 청소년기를 ‘신앙’과 ‘용기’로 극복해낸 목회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강한 흡인력이 있다.이목사는 점점 나약해져만 가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짤막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운외창천(雲外蒼天·구름 너머 맑은 하늘)’.


<취재수첩>

이강평목사는 전문인 목회자다. ‘대학’과 ‘교회’는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두개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는 두 가지 일을 하다보면 어느 것 하나도 충실할 수 없다는 핀잔을 듣지 않으려고 가혹할 정도로 부지런한 삶을 산다.

그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1440분이다, 그는 시간의 디자이너다.하루를 시간이 아닌 분으로  세분한다. 새벽기도회로 하루를 열어 기도로 마감한다.그러나 한번도 일에 짓눌려 짜증을 낸 적이 없다.

그는 교육과 목회를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한양대 설립자 김연준박사에게 항상 감사한다.또한 자신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던 신앙심 좋은 크리스천들에게 감사한다.

이목사는 최근 ‘열린예배’로 목회의 제2 출발을 선언했다. 또한 미국교회와 공동으로 중국에 탈북동포훈련 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목회는 유무상통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가꾸는 것이다.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많이 배운 사람과 덜 배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주일예배가 끝나면 온 교인이 함께 식사한다.그는 이런 작은 모임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고 믿는다.이 토양 위에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섬기는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다.
<임한창/hclim.kukminilbo.co.kr/국민일보/1999년 09월 07일 17시 59분>


`열린목회'로 북한선교 청사진 마련


서울 강남구 대치동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이강평목사)가 최근 교회창립 20주년을 맞아 `열린 목회'를 지향하고 나섰다.

지난 79년 설립된 영동교회는 신자들중에 체육인 연예인 교수등이 유난히 많아 뮤지컬 예배를 드리는 등 다양한 예배유형을 선보이고 있다.배구인 송만덕 송만기 박미희씨,가수 현미 조정희씨,연예인 하청일 김학준씨,예술인 서차영 한진섭 이진경씨 등 독특한 달란트를 가진 신자들이 많아 다양한 예배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이강평목사는 한양대학교 교수로서 `목회'와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이목사는 배구선수 출신으로서 혈혈단신 미국에 유학해 운동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국가대표 여자 배구팀의 감독을 맡을 정도로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현재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목사는 `영성'과 `기도'를 강조하고 있다.그는 `초대교회로의 회귀'와 `복음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20년동안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았다.

출석교인 5백여명의 중형교회로 성장한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는 올해부터 `열린 목회'를 지향하고 있다.무용 선교팀은 중국에서 선교집회를 인도했으며 탄자니아에 선교사를 파송했다.최근에는 탈북자들을 돕기 위해 중국에 `탈북동포 훈련센터'를 건립하기로 하고 미국교회와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훈련센터는 북한선교에 앞장설 선교사들을 훈련하고 탈북동포를 돕는 사업을 하게 된다.또한 신자들의 달란트를 총동원해 뮤지컬 예배를 준비하고 있다.

이강평목사는 “목회를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대학에 감사한다”면서 “초대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열린 목회를 하는 교회로의 체질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한창/hclim@kukminilbo.co.kr/국민일보/99-03-26>


“초대교회로 돌아가자”/영동그리스도의 교회 「회귀운동」 활발

◎'특수선교회' 설립, '고통 나누기'등 조직적 전개. 소년소녀가장, 영세민 무료진료 활동도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서울 대치동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이강평목사)는 '초대교회 회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한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대한배구협회 부회장,한양대 국제협력실장등을 겸임하고 있는 이강평 목사는 신자들에게 유무상통의 신앙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찾아오는 곳인 만큼 신자들간의 친교를 통해 서로 위로받을 수 있도록 코이노니아의 기회를 자주 만들고 있다.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웃을 위한 구제 및 봉사에도 주력한다.교인들이 정기적으로 노인정,고아원 등을 방문하며 사랑을 나눈다.특히 {의료선교회}는 '초대교회 회귀운동'의 선두에 서서 활동하고 있다.소년·소녀가장들과 영세민들을 위해 오래 전부터 무료진료와 투약활동을 해왔다.

출석인원 3백여명의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신자들이 많다.

'선교발레'라는 독특한 예술 장르를 개척한 한양대학교 무용과 조승미 교수,가수 하청일, 현미씨,탤런트 김수미씨,발레리나 서채영 교수,소프라노 강미자 교수 등이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는 '초대교회 회귀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사단법인 '기독교 특수선교회'를 설립했다.예술·체육·출판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자들의 달란트를 집결시켜 선교효과를 극대화할 예정이다.종합적인 선교조직으로 확장시켜 나간다는 것이 이목사의 계획이다.

AD 30년부터 4세기 초까지 기독교는 많은 박해를 받았지요.그러나 이 시기의 교회는 기독교의 원형으로 남아 있지요.우리 교회도 이 당시의 교회모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평양에서 열리는 동아시안게임 경기운영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바 있었던 이강평목사는 '초대교회 회귀운동'을 신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려움을 당하는 교인이 생기면 전 교인이 벌떼처럼 모여듭니다.고통이란 나눌수록 작아지는 법이지요.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이목사는 △위로와 평강을 주는 교회 △고통을 함께 나누는 교회 △유무상통하는 교회의 모습을 좀더 확연하게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임한창/국민일보/9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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