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 이강평목사.그는
찬양과 무용과 뮤지컬이 함께 어우러진 ‘문화 목회’로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한양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올해로 20년째 ‘교육’과 ‘목회’라는
두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교수와 목사직을 병행한다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한국교회 10만명의 교역자중 전문직을 가진
몇 명의 목회자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삶의 현장에서 얻어진 경험들이 목회에
도움을 주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목사는 체육학 박사 제1호다. 운동선수 출신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체육계에서 그는 ‘국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그러나 이목사가
‘눈물 젖은 빵’을 곱씹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목회를 펼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목사의 청소년기는 우울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1학년을 중퇴했다. 어느날 그는 대신중학교 배구선수들의
연습경기를 구경했다. 운동장 주변에서 공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우연히 연습경기의
세터로 기용됐다. 이강평은 주전세터보다 출중한 기량을 선보였다.감독은
소년에게 물었다.
“어느 중학교에 다니지”소년은 머리만 긁적였다.그리고
모기 울음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학생이 아니예요.중국집
배달원입니다” “그럼 당장 대신중학교에 들어와라.배구에 소질이
많구나”소년은 그 날부터 다시 교복을 입었다. 그는 ‘컴퓨터 세터’란
칭찬을 들으며 배구선수로 한양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신장의 열세로 항상
국가대표에서 밀렸다.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소년은 그때 두 가지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그것은 한국 최초의 ‘체육학 박사’와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시험에 응시했다.
그러나 낙방, 낙방….무려 여섯 번이나 낙방했다. 낙방할 때마다
더욱 강하게 일어나는 유학의 열정. 그는 일곱번째 시험에 합격해 꿈에도
그리던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1969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공항. 비행기가 도착한
시각은 새벽 3시. 승객들은 마중 나온 친지들의 환영을 받으며 썰물처럼
공항을 빠져나갔다. 정적이 감도는 공항에서 소년은 주머니에든 지폐를 만지작거렸다.
성경 책과 7달러…. 그가 가진 전재산이었다. 공항 경비원이 눈을 부라리며
소년을 내쫓았다.
이튿날 아침, 이강평은 1달러 10센트를 주고
햄버거를 사먹었다. 그리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유태인이 운영하는 뷰티
살롱에 붙은 ‘원티드’(Wanted·구인)라는 글씨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하루에 전단지 2천장을 뿌리면 20달러의 급여가 주어졌다. 닷새동안
일해 번 돈 1백달러, 자신감이 생겼다. 그가 용기를 내어 찾아간 곳은
UCLA대학교. 먼저 체육관에 들어섰다. 그는 장신의 미국선수들 앞에서
환상적인 A퀵과 B퀵을 선보였다.
엘스케이츠감독은 즉석에서 이강평을 헤드코치로
기용했다. UCLA대학은 이듬해 대학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그는 운동을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성경을 읽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은 그를 지탱해준 영적인 자양분이었다.
그후 이강평은 밴더빌트 대학교에 입학했다.
미국인 친구들은 하루에 20시간씩 공부하는 그를 ‘지독한 공부벌레’라고
불렀다. 낮에는 체육학을 공부하고 밤에는 테네시컨퍼런스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때 마침 올림픽 국가대표 여자 배구팀의 감독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지원서를 제출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지원자들을 물리치고 이강평은 한국인으로서는 전무후무한 ‘미국
대표팀 감독’에 발탁돼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6위를 차지했다.
1978년. 그는 꿈에도 그리던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목사’와 ‘박사’라는 두 가지 선물을 안고 조국을
찾았다. 모교인 한양대 교수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목회를
포기하는 것이 일종의 직무유기로 느껴져 괴로웠다. 그래서 이듬해 3월
셋째 주일, 그의 집에서 일곱 가정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바로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의 탄생이었다.
영동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금 1천여명이 모이는
전형적인 중형교회다. 양들도 목자를 닮아서 독특한 달란트를 갖고 있다.
배구인 송만덕 송만기 박미희씨, 연예인 현미 조정희씨, 예술인 조승미
이진경 서차영 한진섭씨 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유명인들이 많다.
“지금까지는 신자들의 달란트를 개발시키지
못했어요. 지난 8월부터 예술을 예배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는 ‘열린
문화예배’를 시작했습니다.이때부터 인근의 불신자들이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21세기는 평신도들의 역할이 점점 커질 것입니다. 결국 목회자와 신자들이
공동목회를 하는 셈이지요”
이강평목사의 설교는 물기가 배어 있다. 신자들은
그의 설교에서 ‘땀’과 ‘눈물’을 읽는다. 암울한 청소년기를 ‘신앙’과
‘용기’로 극복해낸 목회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강한 흡인력이
있다.이목사는 점점 나약해져만 가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짤막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운외창천(雲外蒼天·구름 너머 맑은 하늘)’. |